‘푸른 눈의 평양시민’이 전해준 북한의 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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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방송 2008-02-11 설 연휴였던 지난 8일 케이블 방송 Q채널을 통해 방영된 프로그램 ‘푸른 눈의 평양시민’이 방영 이후 화제가 되고 있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62년 8월 15일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월북한 전 주한미군 병사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James J. Dresnok)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천리마 축구단’ ‘어떤 나라’ 등의 북한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는 영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대니얼 고든(Daniel Gordon)의 작품이다. 고든은 제3자의 시선에서 북한 문제를 다루기로 유명한 감독이며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국내에서 작년 8월에 이미 한 차례 선보인 바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드레스녹이 왜 월북할 수밖에 없었는지, 북한에서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가 66년 소련 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같은 월북 미군병사로서 2004년 납북자 출신인 부인을 따라 일본에 다시 망명하여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하고 있는 찰스 로버트 젠킨슨(Charles R. Jenkins)와 달리 그가 왜 아직도 거짓을 진실이라 주장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Virginia)주의 고아원에서 성장한 드레스녹은 수양부모로 부터 극심한 학대를 당하는 등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중학교만을 졸업한 후 17세의 어린 나이로 입대했으나 군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결혼 생활도 그가 독일 주둔 미군으로 떠난 사이 아내의 불륜으로 인해 결국 파탄 나고 만다. 주한미군에 배치된 뒤에도 삶의 방황을 끝내지 못했던 그는 62년 8월 술집에 가기 위해 통행증을 위조하고 부대를 무단이탈한 것이 적발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대낮에 DMZ를 걸어 월북하고 만다. 그 때 그의 나이 21세였다. 전문가들은 당시 그의 심리상태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불우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드레스녹에게는 북한이 좋고 나쁘고는 중요치 않았다. 그는 일탈을 원했고 고국만 아니라면 어디든 가고자했다. 다만 그는 그 때 한반도에 있었고 당시 유일한 탈출구는 철의 장막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북한이었을 따름이었다” 한 때의 젊은 혈기로 월북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서 ‘월북한 미군’이라는 희귀성 때문에 한낱 체제선전물로 전락해 농락당하던 그는 곧 인권과 자유의 철저한 말살 속에 오로지 수령절대주의만을 강요당하는 북한 사회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66년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에 망명을 시도한다. 하지만 망명을 거부당한 그는 곧장 북송되어 공개 처형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여느 정치범들처럼 체념 속에서 공개 처형만을 기다리던 그의 예상과는 달리 북한 정권은 그에게 ‘죽음’ 대신 ‘세뇌’를 하사한다. 드레스녹은 체제선전 영화 등에서 인민을 괴롭히는 악당 ‘미제’역할을 맡으며 서서히 북한 정권의 거짓 선전에 동화되고 환상이 어우러져 마침내 그것을 진실이라 믿게 된다. 당시 드레스녹과 함께 탈북을 시도한 월북 미군병사는 모두 4명이었다.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북한에 온 이후 모두가 북한 체제에 염증과 증오를 느꼈고 북한을 탈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개인의 자유를 허락지 않는 북한 체제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북한 정권에 의해 ‘사육’되어 마침내 선전도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마치 아프리카의 드넓은 사파리에서 자유를 영유하던 사자가 동물원으로 끌려와 당근과 채찍 속에 조련되어 결국 동물원의 돈벌이 수단과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듯. 그 후 44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 제작된 다큐멘터리에서도 드레스녹의 그런 자세는 변함이 없는 듯 했다. 급변하는 21세기의 국제무대 속에서도 60년대의 그 시절에 그대로 정지해 머물러 있는 듯 한 북한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지금껏 늘 그래왔듯 체제 선전에 기계적으로 열을 올린다. 북한 정권이 자신을 강제 납북당한 루마니아 여성과 결혼시켜 준 일, 자신의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 김정일 정권의 대외 공작수단으로 개조시켜 나간 일,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300만 인민들이 아사(餓死)하는 참사 속에서도 독재 정권이 ‘충성의 대가’로 자신에게 꼬박꼬박 배급을 타준 일, 김정일이 직접 제작한 20부작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 인민을 학살하는 ‘미제’역할로 출현해 노동당원 배지를 달게 된 일 등. 최대한 객관적 입장을 취하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 다큐멘터리는 하지만 40년의 오랜 세월 동안 지치고 변화되어 온 드레스녹의 심정까지도 고스란히 전달한다. 다큐멘터리 내내 기계적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정작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이름은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던 그는 마지막에서야 “위대한 수령께선 늘 우리를 각별히 염려해주셨어. 죽는 날까지 나라에서 지켜줄 거야”라고 독백하며 텅 빈 광장을 홀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동시에 광장의 확성기에서는 지친 듯 쓸쓸히 돌아서는 드레스녹의 등을 떠밀듯 수령 우상화를 강요하기라도 하듯 “북한은 지상 낙원입니다”라는 공허한 선전문구가 메아리친다. 러닝 타임동안 보여주고 들려준 드레스녹의 행동과 발언들이 결국에는 결코 자의(自意)에 의해서가 아니었음을 이 다큐멘터리는 무언(無言)속에서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또 다른 월북 미군병사 찰스 로버트 젠킨슨은 드레스녹이 침묵 속에 남긴 북한 체제의 허상과 실체를 보다 직접적으로 폭로했다. 78년 8월 강제 납북된 부인 소가 히토미(曾我瞳)를 따라 40년 넘게 살아온 북한을 탈출해 지난 2004년 일본으로 망명한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의 삶을 “개처럼 살아온 인생”이라는 한마디로 압축 표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월북 후 다른 월북 미군들과 함께 침대와 수도도 없는 방에 갇혀 저항하면 폭행당했다. 월북은 최악의 실수였다”고 회고하며 “북한 체제는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또한 2005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자신의 부인과 마찬가지로 드레스녹의 부인 역시 78년 루마니아에서 강제 납북되었다고, 동년에 실종된 태국의 아노차 판조이(Anocha Panjoy)를 북한에서 만났다고 폭로하여 북한 정권의 납치 범죄가 국경을 가리지 않고 도를 넘어섰음도 증언했다. 북한 정권에 대한 그의 입장은 작년 프랑스의 유력 방송사인 M6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인도적 의료지원단을 따라 북한에 입국하여 인민들의 일상생활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는 “평양 외곽의 병원에는 이렇다 할 의료기구가 전무했으며 식량난이 심각해 인민의 3분의 1이 외부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하며 북한을 “일상화 된 지옥”으로 묘사했다. 현재 북한에서 행해지는 인권 탄압과 반인륜적 범죄들을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숱한 목소리들과 이를 증명하는 젠킨슨의 폭로에서도 알 수 있듯 북한 사회가 독재 체제에 의해 인간이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는 ‘일상화된 지옥’으로 변모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드레스녹 또한 다큐멘터리에서 “인민들이 굶어죽는 동안 내게는 배급이 단 한 차례도 끊기지 않았다”고 밝혀 북한 체제가 평범한 인민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시키고 있는가를 우회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진실을 진실이라 똑바로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회. 젠킨슨은 이미 다큐멘터리에서 그 스스로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실상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북한에서 살아온 오랜 세월이 인생의 황혼을 넘어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드레스녹에게 남겨준 것은 오직 자유를 억압하는 쇠사슬뿐이라는 것을.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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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