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때 나를 잡아준 누나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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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9-01-30 02:55 “선생님, 엄마가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 지난해 6월. 성균관대 법학과 4학년 이은혜씨(26)는 현철(고1·가명·서울 중계동)이의 울먹이는 전화 목소리를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현철이가 중 3 때인 2007년 중계동 주민센터에서 1년간 무료로 영어 과외를 해준 뒤 소식이 뜸했던 아이였다. 이씨는 곧바로 현철이를 종로구 대학로 근처에서 만났다. “학교를 그만두고 엄마를 돌봐야 할 것 같아요.” 현철이는 이씨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류머티즘으로 몸져누운 어머니를 10년째 혼자 돌봐온 사실도 숨기고 구김살 없이 공부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어머니 건강이 물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악화됐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포기하면 얼마나 실망하시겠니. 나랑 같이 공부하자.” 이씨는 아이를 다독였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은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이씨는 금요일마다 대학로 근처에서 제자를 만나 두 시간씩 영어를 가르친다. 용돈을 털어 저녁도 사주고 가끔 영화도 같이 본다.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던 현철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현철이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 선생님이 잡아 주셨다”며 “열심히 공부해 남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며 웃었다. 이씨가 현철이의 멘토(조언자)가 된 것은 2007년 3월. 봉사활동을 하려고 대상자를 찾던 이씨에게 중계동 주민센터가 중 3인 현철이를 소개했다. 1년간 정이 들었지만 현철이가 고교생이 돼 과외를 중단했다. 구청에서 공부방과 보조금을 대주는 대학생 멘토링 사업은 초·중생만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철이는 1993년 돌 무렵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유일한 식구인 어머니가 아파 기초생활수급자 수당 5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집안일도 모두 그의 몫이다. 그런 아이에게 이씨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누나 같은 선생님이다. 이씨가 '공부 나눔' 천사가 된 것은 1학년 때인 2004년. 졸업 요건인 봉사활동 30시간을 채우려 시작했다가 아이들과의 만남이 일상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20여 명에게 영어와 수학 등을 가르쳤다. 결손가정 아이들이어서 끼니를 거르기도 해 밥을 사주기도 했다. 그는 “2006년에 중학생이던 새터민 은교(가명)가 굶고 있는 것을 보고 매일 밥을 사준 적도 있다”며 “2년 전 아빠와 미국에 간다는 말만 남기고 연락이 끊겼는데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씨도 가정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학비와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뛴다. 그러면서도 4년간 590시간이 넘는 봉사를 했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 종로구청으로부터 우수 봉사자 표창을 받았다. “고시에 매달리지 않고 왜 시간낭비 하느냐는 얘기도 들어요. 공부에 푹 빠지는 아이들을 보면 더 행복한 걸요.” 다음 달 졸업하는 이씨는 법학대학원에 진학해 형사정책을 연구할 계획이다. ◆아름다운 대학생 많다=경제난으로 아르바이트마저 구하기 어렵지만 '공부 나눔' 천사들도 많다. 새터민 강룡(32·연세대 교육학3)씨는 서울 마천동 '한빛 청소년 대안센터'에서 1년째 영어·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평양 '김형직 사범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강씨는 2006년 탈북해 남으로 내려왔다. 그가 맡은 아이들은 정규교육을 못 받고 피자 배달이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청소년들. 강씨는 “가난과 가정 해체의 아픔을 겪은 아이들은 탈북자처럼 사회에 대한 소외감을 느낀다”며 “나의 지식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행복해 봉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무료과외 봉사활동을 하는 정하윤(이화여대 법학4)씨는 “취업시험을 준비할 시간도 빠듯했지만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고 변화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안양보육원에서 무료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은하(한국외대 영어교육과 4)씨도 “교생실습 기간에도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보람을 느껴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장재성 서울대 학생처장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봉사와 리더십의 의미를 새기고, 교육격차 해소 역할을 하는 대학생 멘토링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찬·이승호 기자, 사진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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