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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10명 중 4명이 우리 방송 들었대요"
Korea Republic of 관리자 1326 2009-04-21 20:51:57
조선일보 사람과이야기 2009-04-21 02:55

북녘땅에 희망 전파 자유북한방송 5주년

직원 10명 모두 탈북자 사연 소개하다 펑펑 울음

'피묻은 도끼' 협박 3차례 국경없는기자회 상(賞) 받아

"오늘 '탈북자 수기' 코너에서는 김춘란(가명)씨의 사연을 소개해드립니다. '그날 저녁 길바닥에 쓰러졌다가 집에 실려온 동생은 밀빵 하나 먹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새벽에 눈을 감았다….'"

20일 오전 10시 서울 양천구 신정동 주택가 상가건물 5층에 자리잡은 132㎡(40평)짜리 '자유북한방송' 스튜디오에서 이 방송국 기자 김영일(가명·27)씨가 사연을 읽어 나갔다.

스튜디오 유리벽 바깥에서 방송을 점검하던 자유북한방송 김대성(가명·34) 국장이 "우리 방송국이 첫 방송을 내보낸 지 오늘로 꼭 5년"이라고 했다.

"방송의 '방' 자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고생 끝에 첫 방송하던 날을 생각하면 이만큼 온 게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엔 부천 집에서 신정동 회사까지 나는 듯이 왔어요."

자유북한방송은 아나운서 2명, 엔지니어 1명, 기자 7명 등 직원 10명이 모두 20~50대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이다. 북한에서 직장 방송국 아나운서를 했던 이경희(가명·여·42)씨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마이크를 어떻게 만지는지, 대본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던 문외한이었다.

북한에서 골방에 틀어박힌 채 남몰래 한국 라디오를 들은 것이 방송 경험 전부였다. 이들이 힘을 합쳐서 북한 동포들을 향해 바깥세상 소식을 쏜 지 5년이 된 것이다.

개국 초기엔 직원 3명이 월급 30만원으로 생계를 꾸리며 하루 30분씩 방송했다.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요즘은 미국 시민단체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후원을 받아 직원 월급도 100만원으로 오르고, 라디오 방송극을 내보낼 만큼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방송시간도 늘었다.

밤 8~9시반, 밤 11시~새벽 1시, 새벽 4~5시반까지 주파수를 바꿔가며 하루 세 차례씩 5시간 방송한다. 전파 송출은 영국 민간 기업에 위탁해 몽골·베트남·캄보디아 기지국에서 한다. 우리 정부가 남북한 간의 '비방 방송 금지' 합의에 따라 직접 송출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돼지 피를 묻힌 손도끼가 세 차례 방송국에 소포로 배달되기도 했다. 수취인 이름은 '황장엽'. 경찰 수사결과 황장엽(86)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출연에 불만을 품은 국내 좌파단체 회원이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김대성 국장은 "처음엔 등골이 서늘했지만 자꾸 받으니까 '뭘 이렇게 자꾸 보내나' 싶더라"며 웃었다.

자유북한방송의 주된 청취자는 북한 주민들이다. 청취층은 꽤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민주주의진흥재단이 탈북자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8%가 "북한에서 이 방송을 들었다"고 답했다.

방송하는 사람도 탈북자, 사연을 보내는 사람도 탈북자이다 보니 방송 도중 스튜디오가 눈물바다가 되는 '방송사고'도 수시로 발생한다.

아나운서 김춘애(가명·여·55)씨는 인민군 중대장으로 복무하다 굶주림에 못 이겨 탈북했다. 김씨는 지난 1월 한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사연을 읽다가 방송 중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목을 놓아 울었다. 사연에 등장한 '평안남도 증산군 노동교양소'가 김씨의 남편이 아사(餓死)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유리벽 너머에 앉아 있던 남자 엔지니어도 대본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늘 슬픈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방송국에서는 탈북자 수기를 드라마로 각색해 방송한다. 한 편당 등장인물은 15명 정도다. 이 방송국 직원은 대표까지 합쳐도 10명이라서 엔지니어·아나운서·기자 할 것 없이 전원이 나서서 1인2역을 소화한다.

문 여닫는 소리, 노크 소리 같은 효과음은 현장에서 해결한다. 대사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문 옆에 서 있다가 얼른 효과음을 만들고 마이크 앞으로 뛰어오는 식이다. 갑자기 결원이 생기는 바람에 남자 직원이 여자 역을 맡은 적도 있다.

김대성 국장은 "그때 너무 웃겨서 다들 배를 잡고 웃다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서 녹음했다"며 "굶주림, 목숨을 건 탈출, 가족과의 생이별 등을 다룬 내용인데 그 목소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겼다"고 했다.

이들의 긍지는 '휴전선 너머에서 방송을 듣는 동포들이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김춘애씨는 "나도 북한에 있을 때 밤 11시만 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유북한방송을 들었다"며 "그때 한국 소식을 들으면서 '아, 이런 세계가 다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일한 '방송 유(有)경험자'인 아나운서 이경희(가명·여·42)씨는 2006년 9월 입국했다. 이씨는 "이곳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방송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며 "북한에 남아있는 부모·형제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고 했다.

자유북한방송은 작년 12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다국적 시민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주는 '올해의 매체상'을 받았다. 이들은 다음달 8일 목동에 지금보다 두 배 넓은 사무실을 마련해 이사를 간다. 김대성 국장은 "서울에서 직접 북한으로 전파를 쏘는 날이 오면 좋겠다"며 "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열심히 방송을 할 것"이라고 했다.

윤주헌 기자 calli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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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두나두 2009-05-06 02:02:17
    힘내세요!! 당신들이야 말로 북한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는 용기있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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