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서방 상점 한번 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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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서방 상점 한번 봐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방세계를 방문해 한 번이라도 물건이 넘쳐나는 상점들을 둘러본다면 북한이 자유시장 경제를 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북한의 평양사범대학(김형직사범대학 전신) 교수로 40년 가까이 재직하다 지난 92년 남한에 망명한 김현식(73) 미국 예일대 초빙교수는 31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세계의 13년간 생활에서 가장 놀라웠고 지금도 여전히 부러운 것은 남한과 미국 상점 등 자유세계의 풍부한 물자”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는 “여기 상점에 들어가 보면 바로 이 곳이 지상낙원이다”고 강조하면서 “계획경제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유경제ㆍ자유시장경제를 해야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빨리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면서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상점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파 아내가 상점을 갈 때 더 이상 함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자신의 망명 경위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내가 50년 동안 노동당 당원이었기에 (여기에) 올 사람이 아니다”면서 “김일성 주석의 처갓집에서 20년 동안 가정교사를 했고 김형직 사범대학 1회 졸업생으로서 (대우가) 최고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러시아 교환교수로 갔는데 러시아 정부가 귀화할 것을 요청하고 동시에 남한의 정보기관도 남으로 오라고 했다”며 “그러나 6.25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머리와 옆구리 등에 파편상을 입은 상이군인으로서 상당히 좋은 예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둘 다 ‘노(No)’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때 전쟁 당시 서울에 갔다가 시카고로 이민 간 누나를 42년만에 러시아에서 만났으며 누나는 남한이나 미국으로 가자고 애절하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제안 또한 단호하게 거절했으나 북당국이 누나와의 접촉사실을 알아채는 바람에 생명에 위협을 느껴 뜻하지 않게 러시아 화물선의 짐에 싸여 남한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김 교수는 남한에 정착한 이후 활발한 출간 작업을 펼치고 있다. 김 교수는 남한 정착 7년째인 98년 ‘남북한 한자어 어떻게 다른가’라는 책자를 펴낸 것을 시작으로 ‘북한 주민이 알아야 할 남한 어휘 3300개’, ‘남한 주민이 알아야 할 북한 어휘 2000개’, ‘남과 북이 함께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 잇따라 발간했으며 최근에는 북한 학생들을 위한 영어교재를 집필 중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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