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열린북한방송이 분석한 北 후계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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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띄우기’ 갑자기 속도 김정일 건강 다시 악화? 최근 북한의 후계자 관련 소식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북한의 후계자 문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김정일의 3남 김정운이 진짜 후계자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북한의 후계 구도가 의문투성이인 것은 북한이 후계 승계 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권력을 승계하는 과정에서도 상당 기간 비밀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북한이 김정일이 후계자임을 대외에 공식적으로 알린 것은 1980년 제6차 당대회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1972년 김일성 환갑 때부터 김정일 후계 문제가 제기돼 왔다. 1974년 2월 당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되었지만 북한은 6~8년 정도 김정일 후계 결정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1970년대와 달리 정보 통제 체제가 상당히 무너져 있다.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은 북한 국경 주민들과 수시로 통화를 한다. 또 북한 체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가면서 북한 고위 간부들 중에 외부로 정보를 흘리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정보 유출을 통해 외부 커넥션을 구축한 후 혹시라도 북한 체제가 위험해질 때 의지할 곳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김정운 영도 따라 강성대국 열어제끼자” 軍엔 찬양행진곡, 기업에선 김정운 학습 필자가 운영하는 북한 내부 소식지 ‘열린북한통신’은 이런 북한 내부 정보를 통해 김정운 후계에 대한 다양한 보도를 해왔다. 지금까지의 후계자 상황을 종합해 보면 올 1~4월에는 김정운이란 이름은 거명하지 않고 세습 방침에 대한 언급만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핵 실험이 있었던 5월 말 이후부터는 후계자 김정운 이름이 북한 일반 당원들에게까지 공식적으로 통보되고 있다. 김정운 후계자 통보는 6월 초 군대와 보위부를 시작으로 북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예컨대 함경북도 회령시의 국경 경비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6월 3일 회령의 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김정운이 후계자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그의 위대성과 혁명 업적에 대한 강연들도 진행되고 있다. 군 사병들 사이에서는 김정운에 대한 노래가 보급돼 대열을 지어 행진할 때마다 합창곡으로 부르고 있다. 때문에 회령 시내 주민들은 김정운의 후계 지정설을 확고한 것으로 믿고 있다고 한다. 양강도의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혜산시 주변에 주둔해 있는 북한군 병사들도 김정운의 후계자 지정과 관련한 상부의 강연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군 병사들은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사상과 영도를 온몸으로 구현하고 계시는 젊은 장군이신 김정운 동지가 우리 혁명무력을 이끌고 계시기에 우리는 백전백승한다”라는 식의 강연을 들었다. 6월 중순부터는 민간의 공장, 기업소 당원들을 상대로도 김정운의 위대성과 혁명 업적에 대한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함경북도 회령시 몇몇 공장과 기업소에서는 6월 11~13일 전체 당원들을 대상으로 김정운에 대한 위대성과 업적에 대한 학습이 진행되었다. 강연 제목은 ‘김정운 동지의 영도 따라 당의 유일사상 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강성대국 건설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제끼자’였다. 시당에서 강연 강사가 내려왔으며 그 다음날 종업원 조회 시에는 전체 종업원들에게 전날 강연 제목과 내용에 대해 통보가 있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도 6월 11일경 여러 공장, 기업소들에서 ‘김정운의 영도 따라 당의 유일사상 체계를 세우고 강성대국 대문을 활짝 열어 제끼자’라는 제목의 강연회가 있었다. 또 신의주의 한 동사무소에서는 당 생활을 하고 있는 인민반의 경로자(노인) 당원들을 위한 비슷한 당원 강연회가 동당위원회의 집행하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김정일 후계 작업 무려 16년 걸려 김정운은 초스피드 ‘졸속 후계자’ 이런 김정운 위대성 학습 강연은 지난 6월 11~13일 회령과 신의주 이외에도 평남 평성, 자강도 성간, 양강도 혜산 등에서 진행되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구체적인 학습 내용도 일부 확인되고 있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운이 김정일의 선군혁명사상을 가장 완벽하게 체현하고 이를 전당과 전군, 온 사회에 철저히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운은 김정일의 선군사상으로 북한을 정치강국에 이어 군사강국, 핵대국으로 지구 위에 우뚝 서게 하기 위해 불면불휴의 노고를 다 바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둘째, 김정운은 문학예술의 천재라는 것이다. 그가 직접 지도하여 창작 완성된 작품이 가극 ‘강선의 저녁노을’ ‘은하수’라는 것이다. 또한 동평양대극장, 평양대극장을 비롯한 예술의 전당들에 대한 개건확장공사를 발기하고 그 사업을 세심히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셋째, 김정운은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를 온 사회에 구현하기 위해 ‘150일전투’를 발기하고 그를 선두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김정운이 북한의 체육발전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월드컵축구 본선에 참가하게 된 것도 김정운의 체육부문에 대한 세심한 지도와 배려에 의해 이루어진 큰 성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보듯 현재 북한은 월드컵 진출도 김정운 덕분이고 북한 전역에서 진행되는 속도전 캠페인 ‘150일 전투’도 김정운이 주도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정운은 북한의 강성대국, 핵대국 실현을 위해서 불면불휴의 노고를 다하고 있음을 선전하고 있다. 결국 김정운 후계 문제는 올 1월에 나오기 시작해 아주 빠른 속도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6월 9일에는 김정일의 첫째 아들인 김정남도 일본 TV와 인터뷰에서 김정운 후계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김정운 후계 문제가 아직 대외적으로는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북한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공식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은 1964년 대학 졸업 후 당 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1974년(김정일 나이 33세) 후계자로 내정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이후 당 대회에서 공식화되기까지 다시 6년이 더 걸렸다. 그러나 김정운은 이제 26세에 불과한데도 벌써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초스피드로 후계 문제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엔 김정일의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김정일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이와 같은 졸속 후계 과정은 설명되기 어렵다. 북한에서 김정일의 건강 사항은 극비 중의 극비다. 그럼에도 김정일이 작년 8월 뇌졸중을 앓고 난 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김일성도 1994년 사망하기 2년 전부터 혼자서 지난날을 회고하며 베적삼을 입고 금수산의사당 앞뜰의 10여평의 농사시험 포전에서 농사를 지으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런데 김정일은 술을 마시며 김일성보다 훨씬 더 자주 눈물을 흘린다.”(열린북한통신 16호) 전문가들은 최근 김정일이 눈물을 자주 흘리는 증상을 PSD(Post Stroke Depression)로 분석하고 있다. PSD란 뇌졸중을 앓은 사람들이 겪는 일종의 우울증이다. 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눈물을 자주 흘리고 술과 담배를 몹시 찾는다고 한다. 뇌졸중 환자의 전형적 우울증세 올해 들어 담배·술도 다시 시작 실제로 김정일이 뇌졸중을 겪은 이후 올해부터 흡연과 음주를 다시 시작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2월 25일 담배를 물고 있는 김정일의 사진을 외부에 전송했다. 회령 담배공장을 방문한 길에 연기를 내뿜으며 담배를 피는 김정일의 사진이다. 지난 4월 14일 북한 평양 대동강 변에서 열린 고 김일성 주석 97회 생일기념 ‘축포야회’ 때도 김정일은 담배를 피웠다. 귀빈용 간이 관람석의 김 위원장 앞 탁자 위에 재떨이가 놓여 있는 장면이 4월 16일 오전 방송된 북한 조선중앙TV의 화면에 비치기도 했다. 젊을 때 김정일은 애연가였지만 2001년 중국 방문을 계기로 담배를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 끊은 후 “담배는 심장을 겨눈 총과 같다”며 북한 주민들에게도 금연 필요성을 강조해왔는데 뇌졸중 이후 다시 흡연을 시작한 것이다. 또 김정일은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다가 재기한 후 독한 술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지난 1월 방북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식사를 함께 하며 상당히 도수가 높은 북한산 술을 오랜 시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은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던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에게 “전에는 위스키며 코냑이며 술을 워낙 많이 마셨지만 요새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건강에 좋다는 붉은 포도주만 마시게 됐다”고 절주(節酒)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김정일은 뇌졸중 후 다시 음주와 흡연을 재개했으며 이는 그가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최근 김정일이 예년에 비해 훨씬 왕성한 현지 지도에 나서는 것도 우울증 증세와 연관지을 수 있다는 것이 신경과 전문의들의 분석이다. 뇌졸중 후 우울증 증상이 있을 경우 불면증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운동을 자주할 것을 권유한다고 한다. 때문에 김정일이 자주 지방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많이 움직이라는 의사의 권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때마침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도 지난 6월 18일 평양에 주재하는 한 대사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면서 북한 정세가 아주 복잡해졌으며 이에 따라 김정운에 대한 조기 권력 승계가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6월 29일 조선일보도 북한이 6월 14일 김정일의 7보병사단 시찰 장면이라며 공개한 사진이 4월 25일 851부대를 방문했을 당시의 사진을 ‘재탕’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하며 김정일의 건강이 다시 악화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인맥만들기 위해 당원 성분조사 착수 내년 당대회 열고 공식 추대할 가능성 북한은 과거 김정일 후계 과정에서도 권력 승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오랜 시간 김정일 경력 쌓기 이벤트를 전개해 왔다. 1968년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1969년 미 정찰기 격추사건을 모두 김정일이 승리로 이끌었다고 선전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또 김정일은 후계자로 확정된 직후인 1973년 10월부터 경제 분야 업적 쌓기 이벤트로 70일 전투를 이끌었다. 1973년부터 진행된 3대혁명소조운동 역시 김정일의 조직 만들기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이처럼 북한의 후계 승계 과정에는 후계자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방면에서 업적 만들기와 조직인맥 만들기 작업이 함께 수반된다. 만약 김정운이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면 김정운의 조직과 업적 만들기 과정도 병행될 것이다. 이와 관련, 열린북한통신이 입수한 북한 내부 정보에 따르면 김정운 후계 작업과 관련된 시사적인 내용이 있다. 이미 김정운 후계 작업을 위해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분야별로 실무팀이 조직되어 있고 이 실무팀에서 김정운 후계자 만들기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군사 분야에서는 핵 실험, 경제 분야에서는 150일 전투, 문화 분야에서는 5·1 노동절 평양의 폭죽 이벤트 등을 여기서 기획했다는 것이다. 김정운 후계 승계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김정운의 공식 등장은 2010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에서는 꺾이는 해인 지난 1970년(제5차 당대회)과 1980년(제6차 당대회)에 당대회가 열린 바 있다. 이후 개최된 적이 없는 당 대회를 2010년에 열어 김정운을 후계자로 공식 추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열린북한통신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서는 김정운 인맥 만들기 작업의 일환으로 당원들을 상대로 한 토대(성분을 말함) 조사 사업도 벌어지고 있으며 이 작업은 내년 10월까지 진행될 계획이라고 한다. /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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