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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함박·절구·키, 이들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데일리NK 2009-10-08 13:31:01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643 2009-10-12 23:17:45
"밥 한술에 돌 한알이니 함박 없으면 먹기도 어려워"

북한을 떠나 한국에 와 살면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됐다. 모든 생활 조건이 다 보장돼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편하고 즐겁다.

쌀은 어디에서 사든 한결 같이 정미가 잘 돼있다. 티 한 점 없이 깨끗해서 물에 서 너 번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면 맛있는 밥이 된다.

분주한 출근길에 준비했던 도시락에 있는 국이나 반찬은 1분이면 전자렌지가 먹기 좋게 따끈히 덥혀준다. 빨래도 세탁기에 넣고 스위치만 누르면 세탁기가 알아서 물기까지 깨끗이 빼준다. 밀가루나 빵가루 등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으면 마트에서 포장된 가루를 적당한 양 만큼 사면 된다.

이처럼 편리한 생활조건이 보장된 한국에서 살면서 필자는 아직도 19세기를 방불케 하는 북한에서의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때는 북한이라는 생각 자체가 싫어질 때도 있지만 그곳에는 엄연히 내 부모와 자식, 친구, 선생님들이 살고 있다.

북한에서 생활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물건들이 있다. 쌀 함박, 절구, 키와 채, 국수분틀, 빨래망치 등이다. 여러 식솔이 함께 생활하는 가정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혼자 생활하려 해도 이런 물건들은 반드시 있어야 할 생활 필수품이다.

북한에서는 쌀 함박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다. 한국에는 함박을 찾아볼 수 없다. 함박은 바가지만한 그릇 내부에 나선형 홈이 있다. 쌀을 씻어 함박에 담궜다가 서서히 다른 그릇에 부으면 돌만 남는다. 돌을 분리해주는 그릇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 북한 식량 공급 상황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배급쌀은 탈곡과 정미 과정에서 선별 작업을 깨끗이 하지 않기 때문에 쌀과 볏짚, 돌이 많아 쌀을 다시 손질하고 쌀 함박으로 일지 않으면 그대로 먹을 수 없다.

'고난의 행군' 이후 국가에서 주는 식량 공급은 주로 간부들과 권력기관, 군부대들에 공급되는데 그 중 가장 한심한 쌀을 공급받는 곳이 군대다. 군인들에게 공급되는 쌀은 주로 현미인데 이 쌀은 저장을 목적으로 탈곡한 후 왕겨만 벗긴 상태므로 오분도(5회 쌀을 깎음)나 칠분도보다 먹기가 불편하다.

북한은 현미를 군수식량창고에 1년간 저장했다가 다음 해 가을걷이가 끝나면 새 쌀로 바꾼다. 저장했던 쌀은 군부대들에 공급하는데 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현미밥이 먹기 까다로워 아우성을 친다.

배급이란 것을 구경한지 까마득한 일반 주민들에 비하면 당연히 행복하겠지만 그들 나름에서는 배급된 쌀을 먹기 위해 '전투'를 치러야 한다.

최근 들어 군부대에 가보면 몇 가지 진풍경들이 있다. 이 중에는 군인들이 빙 둘러앉아 쌀을 펼쳐놓고 손질하는 모습도 있다. 벼인지 쌀인지 구분이 안되는 쌀을 펼쳐놓고 식사 후 30분씩 벼 알 고르기 작업을 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그러나 돌까지 골라내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때문에 대충 벼알이나 고른 다음 물에 씻어서 검부레기는 물에 흘러보내고 다음은 함박으로 쌀을 인다. 이 때에도 시간이 촉박하고 쌀량은 많으니 대충 함박으로 일어서 증기 가마에 넣어 익혀낸다.

그렇게 대충 이는데도 한번씩 쌀을 일고나서 함박을 들여다 보면 크고 작은 돌들이 함박 밑바닥에 두 숟가락 정도 깔린다. 그렇게 해낸 밥을 먹으려면 밥이 아니라 모래알을 씹는 것 같고 거기에 또 함박으로 쌀을 일었다고 하지만 돌이 많아 밥 한술에 돌 한 알이다.

그런대로 사관장의 구령에 따라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먹어야 하니 할 수 없이 돌이 있어도 그냥 우물 우물 삼켜 버리고 '식사 그만'하는 사관장의 구령에 따라 일어나야 한다.

같은 쌀을 배급받아 먹는 군인 가족들은 절구로 쌀 깎는 일을 대신한다. 일단 현미를 절구에 넣고 물을 조금 뿌린 다음 절구질 한다. 이때 쌀이 부서지기 쉬워 천으로 끝 부분을 을 뭉그러 넣고 15분가량 절구질 한 후 키에 담아 이물질을 털어 낸다. 하지만 아무리 절구질 하고 키와 채를 동원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돌이다.

북에서 군사 복무를 하다 지난 3월에 입국한 탈북자 김모 씨(남, 28세)는 "군복무 거의 전 기간 백미로는 현미만을 먹다싶이 했다"며 "제일 싫은 것이 식당근무를 서면서 쌀을 씻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돌이 너무 많아 함박으로 아무리 잘 인다 해도 돌이 없어지지 않는다. 까칠한 사관장은 밥먹을 때마다 돌이 씹힌다고 곱빼기 근무를 세우군 한다. 영양실조가 올 정도의 군인들에게 있어 현미밥이나마 실컷 먹을 수 있는 식당근무를 서는 시간은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일고 일어도 끝없이 나오는 돌 많은 쌀 때문에 당하;는 고통 또한 쉽지만은 않으니 차라리 해주는 밥 먹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 김 씨의 말이다.

군인가족들은 자기가 먹을 밥을 해야 하니 쌀을 함박으로 최대한 천천히 살살 인다. 한번 일고 돌을 버린 다음 다시 일면 또 돌이 나온다. 세 번 정도 일게 되면 그 때에야 돌이 없어진다.

전기가 없어 가정용품들이 있으나 마나한 북한에서는 무엇을 해도 불편하고 한국에서는 아득한 엣말로 되버린 절구나 키 등이 없으면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근 10년간 전기 사정으로 제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절구나 맷돌이 쌀가루를 본다든가 떡을 해먹든가 할 때 쓰인다. 더구나 일년 내내 모내기철과 가을걷이 시기를 제외하고 전기라고는 구경할 수 조차 없는 시골 사람들은 절구와 맷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쌀가루를 내는 것도 절구에 쌀을 찧거나 맷돌로 갈아서 채로 치는 방법으로 한다. 또 절구질이나 맷돌로 빻은 가루를 반죽해 국수분틀로 국수를 눌러 먹기도 한다.

돈이 없어 비싼 백미를 사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옥수수를 사서 쌀로 내어 먹는데 전기가 없으니 집에서 맷돌질이나 절구질로 옥수수 쌀을 내어 채로 쳐서 밥도 지어 먹고 가루로는 꼬장떡을 해먹기도 한다.

지금도 북한에 가면 한국에서 60, 70년대 초까지나 볼 수 있었던 진풍경을 가는 곳마다 목격할 수 있다. 강가에 도란도란 앉아 빨래 망치를 두드리는 여성들, 목욕할 곳이 마땅치 않아 강가에 나와 목욕하는 남성들과 여성들, 절구질로 쌀을 찧고 키와 채로 손질하는 모습들, 물지게나 물동이로 물을 긷는 여성들을 볼 수 있다.

뒤떨어진 북한의 30년을 담고 있는 절구와 쌀 함박들이 북 주민들의 생활에서 사라질 날이 언제일지, 언제면 북한이 개방개혁의 문을 열어 뒤떨어진 30년을 회복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남북 간의 차이가 줄어들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대한다.

유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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