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들의 둥지 '경평 축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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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으로 건너온 탈북자, 새터민들은 남모를 설움과 핍박을 받고 산다. 어딜 가나 편견과 싸워야 한다.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외로움이 겹치는 상황에서 새터민들이 기댈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다. 복지관의 도움을 받아 선교활동을 하면서 한국에서의 삶을 배우고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놀이 문화를 배우려 하지만, 이마저도 부단한 인내와 노력 없이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축구공 하나가 던져졌다. 축구를 가까이서 접해보지 못했던 그들은 의아해했지만, 공을 한번 차고 나서 축구가 주는 매력에 빠져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비라고 해도 축구공과 축구화만 있으면 되고, 뛸 수 있는 무대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 운동장이면 족했다. 녹록지 않은 삶을 이어가는 그들에게 축구는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도 할 수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대표적인 새터민 축구팀이 있다기에 찾아갔다. 클럽명은 ‘경평 축구단’. 경성(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리던 ‘경평축구대회’의 이름을 본 땄다는 이 축구팀은 남한과 북한의 다리를 놓겠다는 ‘한민족 정신’을 바탕으로 노원구 일대의 새터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주로 모이는 장소는 노원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이들을 찾아갔을 대는 경평 회원들 대신 혈기 왕성한 대학생들이 팀을 나누어 공을 차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푸른 유니폼을 입은 회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추운데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담배를 태우며 걸어오는 총무 C씨는 기자를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새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더니 지각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늦는 건 다반사예요"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한 주에 한 번 공을 찬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경평은 기본 생활을 우선시한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주어진 일을 완수해야 하는 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도 어쩔 도리가 없다. C씨는 "말로는 질책을 하지만, 회원들의 사정을 감안해야죠. 특히 사십대가 넘는 회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가 쉽지 않아서 일일 업무를 맡곤 하는데, 그 시간이 주말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축구를 쉬어야죠. 어쩌겠어요"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일단 운동장에 모인 회원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신나게 땀을 뺀다. 운동장을 누비며 일주일 동안 쌓아 온 스트레스를 몸 밖으로 날려버린다. 2007년 11월 본격적으로 클럽 활동을 시작한 경평은 처음에는 두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마흔 일곱 명으로 늘었다. 여느 클럽 못지 않은 구색이다. 인터넷에 까페도 만들어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까페에는 경평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구직, 구인활동에 관한 사항이 주를 이루지만 북한 영화, 음악 등 어른들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폴더도 개설돼 있다. 또 회원들의 사진, 동영상도 게재해 추억을 공유한다. ‘화합’을 강조한 경평의 취지는 까페 안에 잘 녹아있다. 공릉 복지관과 노원 험멜의 전폭적인 지원은 경평이 발전할 수 있도록 절대적인 도움을 줬다. 공릉 복지관은 다른 클럽들과 경기를 잡아주며 경평 회원들이 좀 더 폭넓은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돕고 있고 험멜은 점퍼, 축구화 등 경평 회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공을 찰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감사를 맡고 있는 J씨는 "두 관계자 말고도 우리를 향해 지원해 준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클럽도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없었을 겁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경평’ 외에 새터민 축구단의 대명사로 통하던 ‘금강산 축구단’은 현재 간판만 내걸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어린 학생들 위주로 운영됐으나, 그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정기적으로 공을 찰 수 없게 됐다. 금강산 축구단에 대한 소식이 끊기자 새터민 축구단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끊겼다. 그러나 이런 무관심 속에서도 경평에는 ‘화합의 축구’를 배우려는 새터민들이 몰려들었고 매년 회원 수가 늘어만 갔다. 단장 겸 감독을 맡고 있는 L씨는 서울 전 지역에 걸쳐 새터민 축구단을 뿌리내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새터민은 서울 전 지역에 퍼져있습니다. 노원구 경평 축구단을 모체로 하는 다른 지역구 축구단 창단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염없이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경평을 향해 한 클럽에서 시합 제의를 해왔다. 경평 회원들은 남한 젊은이들의 도전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소 소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랐다.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시작한 그들은 운동장 가운데로 발걸음을 돌렸다. 멋진 한판을 예상하면서 양 팀은 악수를 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비장한 각오와 진지한 표정을 앞세워 파이팅을 외친 것과는 달리 경평의 플레이는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공을 다룬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지적이 오갔다. 이를 지켜보던 기자의 얼굴은 화끈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L씨는 "저게 본래 북한 사람들의 성격이에요. 그런데 지켜보던 사람들은 싸운다고 생각하죠. 사실은 저렇게 말하면서도 돌아서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훌훌 털어요. 정이 넘치는 좋은 분들이에요"라고 말했다. L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벤치로 돌아오는 그들의 얼굴에선 어느새 짜증 대신 웃음이 가득했다. 경기 도중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했던 얘기를 하면서 서로를 놀려대기도 했다. 후반전에 들어서도 경기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1-4로 패했다. 그러나 경평 회원들은 승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눈치였다. 땀을 한 번 닦더니 운동장에 나가 자체 게임을 준비했다. 그들은 축구의 주 목적이 ‘승부’가 아닌 ‘땀’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C씨는 앞으로도 경평이 소소한 목표를 이뤄가면서 무엇보다 꾸준히 공을 찰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서로 우애를 지키고, 편안한 축구단이 되는 게 꿈입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모인 만큼 공 한번 차고, 집 앞에서 맥주 한잔하고 그렇게 쭉 갈 생각이에요.” 글. 윤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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