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숨기기에 바빴는데 나만의 강점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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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가 친구와 버스를 탑니다. 순이는 버스카드를 대면서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말합니다. ‘2인분요.’ 앗, 이런!”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동 여의도교회에서는 ‘순이의 한국 생활 적응기’라는 연극이 공연됐다. 벽산엔지니어링이 기획한 ‘탈북 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10명이 만든 연극이다. 대사를 잊어버리고 멋쩍은 웃음을 지을 때나 문화적 차이로 겪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소개될 때마다 객석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공연이 끝난 뒤 연극에 등장한 북한 어휘 하나하나를 뜻풀이해주는 탈북 대학생들의 표정에서는 쑥스러움이나 주눅 든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턴십 수료증을 받은 학생들은 “앞으로 훌륭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강원도 출신이라고 거짓말했다는 박지은(가명·29·여)씨는 “인턴십을 통해 탈북은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나라에서 겪은, 나만의 강점임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프로그램은 탈북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자유터학교’가 학교로 봉사활동을 오던 회사 측에 제안해 마련됐다. 탈북 청소년들의 가장 큰 문제인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회 경험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한다는 요청이었다. 2008년 7월부터 방학마다 매년 두 차례씩 인턴십이 진행됐다. 지난달 1∼26일에는 4기 탈북 대학생 10명이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부터 면접 요령,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 작성 방법, 직장생활 예절을 배웠다. 인턴십 프로그램을 기획한 최경일(44) 인사팀장은 “학생들은 인턴십 초기만 해도 소극적이고 어두웠다”고 전했다.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탈북 대학생은 제대로 공교육을 받지 못했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졸업을 해도 취직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들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그러던 학생들이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나눔 특강’이었다. 회사는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동료에게 가르치라는 과제를 내줬다. 스스로 강사가 돼 한 시간씩 특강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장점을 깨닫고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연애의 고수가 될 수 있다”며 화장법을 가르친 여학생도 있었고, 대학 동아리에서 배웠다는 수화를 가르친 학생도 있었다. 2005년 홀로 탈북했다는 성원준(28)씨는 “내게도 남에게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기뻤다”며 “기자의 꿈을 이뤄 통일의 순간을 취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 팀장은 “탈북 대학생들이 인턴십을 통해 자신감을 찾고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고 해 뿌듯했다”며 “탈북 대학생들이 계속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인턴십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회사는 지금까지 인턴십을 수료한 대학생 16명의 경험을 정리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책도 발간할 예정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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