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영어 낯선 탈북청년들… 바리스타로 키워 자립 도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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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나눔재단·봉사자 60명, 인테리어 등 자기특기 지원 커피 내리는 법 가르치고 경험쌓을 카페도 만들어줘 1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동의 한 카페에서 김미소(20·가명)씨가 주전자로 원을 그리듯 돌리며 깔때기 속 여과지에 물을 붓자, 연한 갈색의 커피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앳된 얼굴에 미소를 띤 김씨는 "이게 핸드 드립(hand drip)이라는 방법으로, 기계로 만드는 커피보다 맛이 좋은데 물 붓는 양이랑 시간 조절이 몹시 어렵다"고 말했다. 말투에서 전혀 티가 나지 않지만, 김씨는 지난 2007년 한국에 온 탈북자다. 먼저 북한을 탈출한 아버지 때문에 북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김씨도 어머니, 오빠와 함께 북을 떠났다. 한국에 온 뒤에는 봉제 공장에서 일했다. 틈틈이 잔업을 하며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벌었다. 그러던 김씨는 올 1월 '열매나눔재단'의 청년 탈북자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두 달 교육을 받고 올 3월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가 됐고, 재단이 만든 카페 '블리스앤블레스(Bliss & Bless)'에서 일하게 됐다. 그동안 중·장년 탈북자들의 자립을 위해 박스공장·블라인드공장·가방공장 등을 운영해온 재단은 지난해부터 청년 탈북자들에게 맞는 전문직을 제공하기 위해 카페를 만들었다. 열매나눔재단 채아람 팀장은 "청년 탈북자들은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도 제조업은 기피하기 때문에 전문직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직장인 카페를 만들어 청년 탈북자들을 지원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페 창업은 쉽지 않았다. '블리스앤블레스'처럼 41평(약 136㎡) 정도의 카페를 차리려면 약 3억원이 필요했지만, 재단이 가진 예산은 1억1000여만원뿐이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것은 재능을 기부한 수십 명의 봉사자였다. 인테리어 전문가부터 일반 대학생들까지 찾아와 발로 뛰며 카페 창업 비용을 줄인 것이다. 최준영(30·인테리어업)씨는 "동생뻘인 탈북자들의 '홀로 서기'를 돕는다는 말에 선뜻 나섰다"며 "퇴근하면 이곳에 와서 디자인 회의를 하고 최대한 저렴하게 자재를 사러 업체를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손수 테이블과 의자를 나르기도 했다. 경력 8년차의 명품 전시 전문가 문지은(34)씨도 인테리어 콘셉트를 잡고 소품을 구하려고 시장을 뒤졌다. 문씨는 결혼사진 촬영날도 이곳에서 밤을 새우고 나서 촬영장으로 뛰어갔다고 했다. 문씨는 "인테리어에 쓸 만한 책이나 소품을 집에서 갖고나오고, 교회 후배들을 불러다 장갑부터 끼워주고 일을 시킨 게 가장 큰 비책이었다"고 말했다. 블리스앤블레스 운영을 담당하는 '높은 뜻 푸른교회' 김일회 목사는 "청소라도 거든 사람들까지 합하면 족히 60여명은 이곳에 힘을 보탰다"며 "메뉴판 글씨, 카페에 전시된 사진·화분까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카페 이름 블리스앤블레스는 '행복과 축복'이라는 의미이다. 이 이름도 브랜드 이름을 지어주는 회사가 재능을 나눠준 것이다. '소외 계층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다시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축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는 뜻이다. 카페가 지난 3월 24일 문을 연 뒤에도 봉사는 이어졌다. 보석감정 전문가 조수연(33)씨는 일주일에 3~5번 들러 음료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허드렛일을 돕는다. 조씨는 "이곳이 사회적 기업이지만 이윤도 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탈북자 친구들이 영어 공부나 자기계발을 할 틈을 내기 어렵다"며 "친구들에게 잠시라도 공부할 시간을 주기 위해 와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 강사 서지혜(30)씨는 영어가 낯선 탈북자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를 가르친다. 카페를 만드는 일을 함께했던 자원봉사자들도 수시로 드나들며 김씨를 응원하고 있다. 김씨는 "나는 학교도 다니지 않아 친구도 없지만 전혀 외롭지 않다"며 "이렇게 많은 언니·오빠들이 있고, 아빠 같은 목사님도 있다"고 했다. 현재 '블리스앤블레스'는 다른 청년 탈북자들에게 카페 일자리를 마련해주며 제2, 제3의 김씨를 키우고 있다. 김씨도 또 다른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김씨는 "여기서 일하면서 버는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형편이 어려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카페 사장님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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