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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에게 직접 들은 김정은에 대한 북한 여론
주성하기자 2010-11-12 07:27:17 원문보기 관리자 2284 2010-11-15 17:55:15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린 9월 28일,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의 얼굴은 매우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10월 10일 열린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장 주석단에 나타난 김정은의 모습엔 여유가 있었다.

외국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시종 의연한 태도를 짓고 있었고 옆에 서있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도 즐거운 표정으로 귓속말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표정이 굳어져 있던 이는 김정일이었다.

다음날 한국 언론이 일제히 실었던 사진은 김정일이 주석단에서 얼굴을 옆으로 돌려 김정은을 바라보는 사진이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주석단에 아들을 내세운 김정일의 얼굴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근심이 가득 실려 있었다.

김정은에게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이는 김정일 뿐만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김정은을 주시하고 있다.

북한 주민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 역시 새로운 지도자라며 불쑥 튀어나온 김정은에 대해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김정은이 당 대표자회를 통해 커밍아웃을 한 이후 북한에 살고 있는 정보원들과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북한의 여론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남한과 전화통화가 되는 북중 국경연선의 주민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이를테면 북한에서 ‘깨어있는’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김정은 후계세습에 대해 일말의 기대도 없다. 김정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들의 반응은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외부와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 다른 마을 사람들 속에선 김정은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국경연선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 A 씨는 “스무 몇 살짜리가 후계자가 됐다니까 우리 동네 사람들도 다 기가 막혀 하는 눈치지만 공개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런데(후계문제) 신경 쓰기도 귀찮을 뿐더러 당 대표자회가 끝난 뒤 요즘처럼 보위부에서 감시가 심해진 때에 함부로 말을 잘못했다가 본보기로 온 가족이 멸족될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북한 보안당국은 김정은이 등장한 뒤 주민여론을 면밀히 살피면서 비판여론을 강하게 옥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에선 주민 강연회만큼 선전에 유용한 수단은 없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발행부수가 20만부 가량으로 지방에서는 마을의 간부 몇 명밖에 볼 수 없다.

내각이 발행하는 ‘민주조선’이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 발행하는 ‘청년전위’, 각 지방당이 발행하는 도일보도 있지만 이 역시 발행부수가 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신문을 통한 선전은 대민용으로는 시원치 않다.

북한 전국에 방영되는 TV 방송도 조선중앙방송 1개 채널에 불과하고 그것도 방영시간이 평일에는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같은 가을에는 탈곡에 전기를 집중하느라 일반 가정집에는 보통 밤에 정전이 되기 일쑤다. 그러니 TV를 통한 선전도 별 효력이 없다.

하지만 주민 강연회는 출석을 불러가면서 소집하기 때문에 참여율이 높고 참가자들의 집중도도 높은 편이다.

북한은 이런 강연회를 통해 “남조선 안기부(국정원)의 사칭을 받은 반당반혁명분자들과 간첩들이 우리 내부에 혁명의 수뇌부를 헐뜯는 거짓과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는 결국 김정은에 대해 이러저런 말을 하면 간첩의 사주를 받은 반혁명분자로 간주해 엄격히 처벌하겠다는 위협이다.

채찍과 함께 당근도 내밀고 있다. 유언비어를 신고하면 고발자의 신변을 철저히 비밀에 붙일뿐더러 상금까지 준다면서 최근 상금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사례까지 언급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이럴 때 잘못 걸리면 자신 뿐 아니라 가족친척 모두 시범 케이스로 걸려 사형이나 정치범수용소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요즘엔 모두가 말을 부쩍 조심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후계세습이 진행되는 요즘 북한의 인권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주민들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 공개총살이 빈번히 벌어지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에 공포분위기가 가득하다.

북한과 무역을 하고 있는 조선족 B 씨도 “거래 대방들과 요즘 전화도 자주하지만 후계자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사람들이 ‘그 얘긴 그만 합시다’면서 대답을 피한다”면서 “속이 불편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쓴 웃음만 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후계체제에 대한 조롱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통화했다는 남한 거주 탈북자 C 씨는 “북에 있는 우리 집에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자주 오는데 요새는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데 난 부모 잘못 만나서 한창 젊은 나이에 배나 채우려고 다닌다’며 푸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누구는 김정은을 의미한다.

북한 주민들의 내밀한 비웃음은 최근 김정은을 위대한 지도자로 내세우기 위해 벌이고 있는 ‘우상화’ 과정에서 극에 달하고 있다.

요즘 북한이 벌이고 있는 우상화 내용은 선전 간부들이 일부러 김정은을 욕 먹이기 위해 허황되게 작성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터무니없다.

김정은이 3살 때 붓글씨로 복잡한 한문을 척척 썼다거나 역시 3살 때 권총으로 명중사격을 했다는 식의 황당한 선전이 대표적이다. 북한 선전 간부들이라고 후계 세습의 들러리를 서는 것이 기쁜 일은 아닐 것이다.

북한에선 김정은을 천재로 묘사하기 위해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꾸며내더라도 충성심이 높다고 칭찬받으면 받았지 절대 처벌받지는 않는다. 그러니 마음 놓고 믿거나 말거나 식의 거짓말을 늘여놓는다. 물론 당연히 주민들도 이를 믿지 않는다.

폐쇄사회에서 북한 주민은 세습을 포기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에 대한 상상은 잘 할 수 없지만 적어도 3대 세습이 나쁘다는 정도는 다 알고 있다.

주민뿐 아니라 노동당 간부들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오히려 북한 간부의 불만이 주민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북한 사회에서 엘리트층에 속하는데다, 해외 정보도 훨씬 더 많이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열병식장에 나타나 군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 때 갑자기 대장 칭호를 받고 나타난 27세짜리 새파란 젊은 애송이에게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생각한 장교도 없었을 것이다.

노동당 창건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평양에 들어간 외국 취재진은 마이크를 들이댄 평양 시민에게서 앵무새 같은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이 평양의 진짜 민심은 아니다.

평양에서는 외국인이 대거 오는 큰 행사를 준비하면 시민에게 예상 질문과 이에 대한 대답을 학습시키고 시험까지 받아낸다. 시민의 대답이 한결같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 문이다.

집에선 3대 세습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외국 기자들 앞에선 “청년대장 동지를 모시어 우리 민족의 미래가 밝습니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불만이 아무리 팽배하다고 해도 그것이 폭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북한 체제가 서로를 감시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사회이기 때문에 모종의 집단행동을 벌이기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또 반정부 활동을 계획하다 적발되면 자신뿐 아니라 온 일족이 멸족된다는 것도 선뜻 행동에 나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의 불만은 곧바로 체념으로 이어진다. 눈여겨 볼 것은 이러한 체념이 ‘혹시나’하는 희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이 지금 가장 고대하는 것은 변화이다. 1990년대 중반 경제가 파탄 나고 대량 아사가 발생한 이래 북한의 형편은 15년째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은 김정은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변화만 만든다면 찬성할 수 있다는 심리로 이어지기 쉽다. 한마디로 3대 세습은 못마땅하지만 혹시 지도자가 바뀌면 김정일이 계속하기보단 크게 변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과 아주 흡사하게 가꿔진 김정은의 외모는 주민들의 이러한 기대감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부의 시각에서 볼 때는 어떨지 몰라도 북한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김일성을 빼닮은 김정은의 외모는 꽤 ‘먹힐’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먹히는 얼굴이라 해서 김정은이 세습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지금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주민 여론이 아니다.

북한의 주민감시 시스템은 그 어려운 경제난 속에서도 끄떡없이 작용하고 있다. 설령 누군가가 동지들을 규합해 봉기를 일으키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주변 군부대를 출동시켜 그 자리에서 모조리 사살하면 그만이다.

김정은의 진짜 위기는 김정일이 사망한 다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지금 김정은을 보좌하기 위해 매제인 장성택과 누이동생 김경희를 중심으로 하는 후견그룹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장성택이 북한의 2인자로 큰 권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그의 권세가 김정일 사후에도 지속된다고 담보할 수는 없다. 장성택의 권력은 그가 김경희 남편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김경희의 권력도 그가 김정일의 동생이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김정일만 죽으면 김경희와 장성택의 힘은 급속히 빠질 수밖에 없고 이는 연쇄적으로 김정은의 권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권력을 차지하려는 흑심을 품은 자들이나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북한판 김재규가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김정일이 앞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김정은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하지만 10월 10일 열병식장에 나타난 김정일의 모습은 매우 병약해 보였다.

그가 김정은에게 권력을 빠른 속도로 넘겨주는 이유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김정일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해석할 지도 모르지만 김정일의 처지에서 볼 때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이란 것이 단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40년 넘게 권력의 최정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김정일이 모를 리가 없다.

군 열병식장 주석단에서 혈기방자한 아들을 바라보던 김정일의 눈빛엔 바로 그런 우려가 담겨 있었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 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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