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 소외받고 있는탈북자들의 서글픈 자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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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S 4월 초
STAFF 감독_박정범 촬영_김종선 조명_이종석 음악_문준영 CAST 승철_박정범 경철_진용욱 숙영_강은진 DETAIL 러닝타임_127분 <무산일기>의 가장 큰 장점은 극 중 주인공인 전승철을 실제로 잘 알고 있는 감독이 영화를 연출했기 때문에 인물을 바라보는 자세부터가 남다르다. 탈북자가 자본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보여주면서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그것은 카메라가 대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태도인데, 그 점에서 훌륭하다.부산국제영화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무산일기>의 미덕은 ‘감독의 시선’에 있다고 말한다. 인물이나 상황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고 단지 보여주는 과정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심리적 여파를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거다. <무산일기>는 감독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박정범 감독은 지인을 통해 탈북자였던 대학 후배 故 전승철을 알게 됐고, 그를 통해 탈북자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수개월간 전승철과 함께 동거한 박정범 감독은 탈북자들에게 애환을 느끼게 되고, 단편 <125 전승철>(2008)(125이라는 숫자는 일종의 주민등록번호처럼, 탈북자들에게 부여되는 고유 번호다)을 통해 취업난에 시달리는 탈북자들의 고충을 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승철은 영화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떴고, 감독은 그게 내내 한이 됐다.
박정범 감독은 “<시> 조감독을 할 때, 이창동 감독님이 연출자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꼭 승철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탈북자들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같은 민족이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탈북자들의 삶을 통해 이데올로기나 체제에 대한 고민보다는 처절한 생존 의지만으로 국경을 넘어온 그들이 남한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소외받는 현실을 묵묵히 담아낸다. 이 영화의 카메라가 응시하고 있는 것은 현실에서 내동댕이쳐진 탈북자들의 서글픈 표정이다.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가 빚은 비극
탈북자 승철은 취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다. 어렵사리 전단지 붙이는 일을 구하지만, 그마저도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해고될 판국이다. 그런 데다 동종 업계 덩치들의 간섭으로 승철의 삶은 험난하게 흘러간다. 결국 노래방 잡일을 얻은 그는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면서 현실을 버텨낸다. 종교에 기대 혹독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교회조차도 ‘탈북자’로 낙인찍힌 그에게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사람들은 그를 끊임없이 주변부로 밀쳐내려고 할 뿐이다. 사회에서든, 직장에서든, 심지어 동료에게조차 떠밀리는 그는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개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승철에게 유일한 낙이 길거리에서 데려운 떠돌이 개를 씻기고, 먹이는 일인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승철은 떠돌이 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무산일기>는 어떤 격정적인 드라마나 자극적인 상황 설정 없이도 한 남자의 일상의 질곡을 그려낸다. 이는 이창동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감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상이나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바라보기’. 이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인물과 감정적 교감을 이루는 체험을 하게 된다. 물론 폭력적 장면이 나오지만, 승철의 처참한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의미를 지녔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폭력’은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 승철의 상황, 더 나아가 탈북자들의 일상을 그린 극단적인 표현이다. <무산일기>는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의 암울한 단면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받고 있다. 승철의 고단한 삶은 남과 북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이 빚어낸 비극이다. 그러나 승철은 비단 탈북자의 얼굴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낙오된 극빈층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박정범 감독은 “승철은 탈북자이면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극빈층을 대변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의 서민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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