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도 못 피해가는 북한의 전압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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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북한에서 전기는 하루에 2시간도 보기 힘든 귀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북한에선 전기가 거의 공짜라는 점이다. 물론 사용료를 내긴 하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다.
집집마다 적산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전기 사용료는 사용량에 따라 내는 것이 아니다. 집에 들어와 전구는 몇 개 있는지, TV나 냉장고는 있는지 조사해보고 가전기구 수량에 따라 사용료를 징수해간다.
늘 정전으로 이런 가전기구가 무용지물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전기료를 내지 않을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량에 따라 내는 전기료가 아니다보니 전기가 왔을 때 남보다 많이 쓰지 않으면 바보다.
그래서 어쩌다 전기가 와도 사람들이 절약이란 것을 모른다.
혹 사용하지 않는 방의 전등을 끄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국가 전기가 아까워서 끄는 것이 아니고 전등은 돈 주고 산 내 것이기 때문에 전등 수명을 아끼느라 전등을 끄는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에선 형광등보다는 둥근 100W 전등이 일반적이다. 형광등은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불이 와도 전압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 가정들에는 대개 변압기라는 것을 갖추고 있다.
변압기 개념사진. 물론 북한 변압기는 이렇게 좋은 것이 거의 없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그림처럼 링코아 방식으로 직접 손으로 감아서 만든다.
이것도 비싸게 돈 주고 구입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변압기가 없으면 전등을 켜도 촛불보다 더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압기 없는 집의 전구는 벌건 수수떡이다. 사람을 겨우 가려볼 정도다.
일반적인 변압기는 1KW이지만, 500W, 2KW짜리도 팔린다. 용량이 클수록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사실 전압을 끌어오는 전쟁에선 1KW짜리도 부족하다. 100촉 전구를 제대로 제 밝기만큼 보자면 2KW 짜리는 돼야 한다.
이런 변압기는 공장제품은 매우 귀하고 비싸다. 대다수 변압기는 전기를 좀 아는 사람들이 집에서 구리선을 직접 수천 돌기를 감아서 만든다. 용량이 크게 만들려면 구리선도 많이 들고 아무튼 품이 많이 든다.
또 안전성이라는 것도 논할 여지가 못된다. 대충 나무 통에 넣어버려 짬으로 구리선들이 다 들여다보이고 누전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어쨌든 이런 조악한 변압기로 무장한 각 가정들이 어쩌다 불이 오면 변압기를 경쟁적으로 최대로 높여놓기 때문에 사실상 전압 전쟁이 벌어진다.
없는 살림에 저마다 경쟁적으로 퍼가니 결과는 뻔하다.
전쟁 결과 사방에서 TV나 냉장고 등 전기제품이 제 수명을 못 채우고 고장 난다. 100W에 써야 하는 전구가 불규칙한 전압 하에 벌겋게 됐다 밝게 됐다 변하니 전구도 너무 자주 끊어진다.
변압기는 각 마을에도 한두 개 씩 있다. 이건 대용량으로 냉장고만큼 크다. 그런데 이 안에 변압기유를 등잔용 기름을 하겠다고 몰래 빼가는 사례가 많다.
마을 입구에 있는 변압기 개념도. 이렇게 크게 생겼다. 물론 생김새는 이것과 조금 다르다.
한두 번 조금 빼가면 무난하지만 자꾸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변압기가 타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면 온 마을이 전기를 보지 못한다.
국가에서 대주는 것도 없고, 그러면 집집마다 갹출해서 변압기를 수리하거나 새 것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만 해도 북한에선 전기를 아끼고 밝기 효율을 높인다고 전구에 둥근 갓을 달게 했다.
그러면 쓸데없이 천정을 비추는 전등 빛이 갓에 반사돼 아래를 향하기 때문에 더 밝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 그렇게 하면 밝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것이 전등갓이다. 한국에선 대개 장식용으로 사용되지만 북에선 장식용이 아닌 전기 절약을 위해 종이로 대충 만들어서 볼품은 없다.
하지만 공짜 전기 전쟁이 벌어지는 판에 이제는 저렇게 알뜰하게 사는 사람은 없다.
전압 전쟁은 심지어 김정일도 피해가지 못한다.
김정일 정도면 안정적인 전압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발전소에서 직접 전기선을 따들어 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쓴 회고로 ‘피스메이커’에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실무접촉을 진행하던 2000년 5월에 있었던 회상대목이 나온다.
김정일이 기록영화를 함께 보자면서 “북쪽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전압이 고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보는 데도 지장이 될 때가 있어요.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요해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모습도 이 책에 보인다.
김정일도 영화 보는데 지장을 받는다면 다른 일반인들의 사정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글 서두에서 쓰다시피 북에서 전기는 공짜나 다름없다.
풍요한 한국에서조차 공짜로 뭘 준다면 사람들이 미여터지게 몰려드는데 하물며 북에서 공짜의 힘이야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공짜 전기로 하는 일은 전등을 켜고 가전제품을 가동시키는 것뿐만 아니다.
한 시간만 전기가 와도 히터로 밥을 해먹을 수 있다. 그러면 그만큼 석탄이나 나무를 아낄 수 있다. 한국에서 히터하면 온열이 목적인 제품을 의미하지만 북한에서는 히터란 말을 전기곤로의 개념으로 쓴다.
북한에서 쓰는 히터가 윗부분은 딱 이것처럼 생겼다.
북에서 연료는 식량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다. 그러니 연료 절약하기 위해 사람들은 공짜 전기를 취사를 위한 히터로 저저마다 써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전열기, 전기장판 등으로 방을 덥힌다.
전기장판 같은 것은 우리가 시중에서 보는 것과 같은 그런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다. 마분지 위에 열선을 늘여놓고 그 위에 다른 마분지를 풀로 붙인 ‘자력갱생’ 전기장판이 많다.
이런 것들은 화재에 취약하지만, 이상하게도 화재사고는 많지 않다. 다행히도 당국에서 화재가 날 만큼 전기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히터 열선은 장마당에서 파는데, 외제가 훨씬 비싸다. 전압이 불안정한 북한에서 그나마 외제 열선이 내구성이 좀 낫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전기가 모자라는데 매 가정에서 전등을 다 켜고, 가전제품을 다 돌리고, 거기에 저저마다 히터와 전기장판까지 써대니 어떻겠는가.
북한 당국이 아무리 히터와 장판을 쓰지 말라고 교육하고, 수시로 단속하고 통제하고 처벌까지 하는데도 도무지 말이 먹히지 않는다.
운이 나빠 단속되면 단속 반원에게 술이나 담배를 찔러주면 없었던 일이 된다. 좀 더 많이 찔러주면 남에게서 빼앗아 몰수했던 히터와 장판까지 가져다준다.
이래서 공산주의 구호인 “인민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는 말이 되지 않는 구호인 것이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은 주인이 없다는 소리나 같다. 주인이 없는 살림은 쉽게 거덜이 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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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사진중에 북한쪽에서 전기가 거의없길래 그 이유가 궁금했엇어요.
실험쪽으로 다 쓰나 싶엇구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