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수용소 벗어난 내 앞엔 암담한 운명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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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죄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14호 보위부 수용소로 건너가 이주민들의 집에서 강냉이를 훔친 것이다. 강냉이를 훔치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파 죽느니 차라리 강냉이라도 실컷 먹고 죽고 싶은 것이 이곳 이주민들의 처참한 현실이다." 28년간 북창 18호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탈북자 김혜숙씨의 수기 '눈물로 그린 수용소'(시대정신)에 나와있는 공개처형 장면에 대한 묘사다. 김 씨는 자신이 겪은 수용소 내의 끔찍한 인권유린 실상과 탈북, 북송 등의 경험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김 씨는 "하루라도 쉬는 날이면 온 집안 식구들이 산에 가서 먹을 수 있는 풀은 모조리 뜯어다가 식량으로 모아놓았다"며 "수용소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지 해야 하는 생활력을 길러야만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망태기 같은 주머니를 들고 다니면서 눈에 띄는 풀은 다 뜯어야만 했다"고 굶주림에 시달렸던 시절을 떠올린다. "두 번의 유산을 하고, 이유 없이 셋째 아이가 죽어 점쟁이에게 점을 본 동료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큰 나무 기둥 두 개를 벌려 세워놓고 쇳덩어리에 밧줄을 매어 놓은 다음 반대편 밧줄에는 사람 목을 맬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잠시 후 동료를 끌고 나와 목을 치며 입에 재갈을 물린 다음 밧줄로 목을 둘러맸다. 그러고는 기둥 옆의 쇠뭉치를 손으로 돌려 밧줄을 조였다. 그러자 동료가 바닥에서 붕 하고 뜨더니 곧 죽고 말았다." "두만강에 잠시 대기하고 있자 국경경비대 군인이 왔다. 그 군인은 메고 있던 총을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내 손을 잡아 주면서 두만강을 건넜다. 무릎도 안 차는 깊이였지만 누가 와서 뒷덜미를 잡을 것 같아 불안하고 손을 잡아준 경비대원의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거렸다. 하지만 이길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한 50m쯤 되는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북한 땅을 벗어났다고 해서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처럼 그 또한 인신매매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 그는 "중국 남자들은 북한 여자들이 오면 무조건 돈을 주고 사갔다. 나이가 많으면 값이 떨어지고 나이가 어릴수록 값이 비쌌다. 소위 말하는 인신매매이다. 여성들은 팔아넘기기 전에 몹쓸 짓을 당하고, 그 여성을 넘겨받은 남성들에게 또 몹쓸 짓을 당하는 등의 고통을 겪고 나서야 마지막에 자신이 살 남자에게로 간다"며 성적 학대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북한 여성들의 현실을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배고픔에 눈이 멀어 자식까지 잡아 먹은 사건 등 모성(母性)까지 앗아간 수용소의 잔인한 실상을 전한다. 저자는 수용소에 재수감된 후 탈출을 감행해 다시 중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 돈 2,500원에 팔려가야 하는 기막힌 운명이다. "한족은 자기가 돈을 주고 사왔기 때문에 나를 마음대로 다루려고 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사람에게 팔려가고 저 사람에게 팔려가는 탈북 여성들이 겪는 이 가슴 아픈 사연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대들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리거나 죽이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 땅에서 살 수가 없어 중국으로 건너왔지만 이런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밤새도록 여자를 재우지 않고 성적 욕구를 채우느라 여자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라오스와 태국 등 제3국을 통한 한국행도 목숨을 건 사투의 연속이었다. "라오스에서 고무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악어가 덮쳐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주머니가 악어에 물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해서 다시 목숨을 걸고 중국을 탈출해야하고, 날카로운 벼랑길, 시체도 찾기 힘든 험한 산길, 모래 속으로 깊숙이 빠지는 사막의 길, 악어가 득실거리는 메콩강, 이런 현실을 극복해야만 한국에 갈 수 있었다." 또한 북한 정권이 철저히 감추고 싶어하는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수면위로 꺼내 이슈화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과 같은 탈북자들의 수기는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 실태를 기록한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며, 북한 인권개선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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