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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독 비어도 부모 생일만은 온 가족이 함께
데일리NK 2011-05-08 14:26:28 원문보기 관리자 626 2011-05-09 22:16:53

생일을 맞아 딸과 함께 즐겁게 저녁시간을 보냈다. 해마다 맞는 생일이지만 한국에 정착한 후 처음이라 생각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나와 집에 도착해 문을 열려는 순간 "어머니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하는 딸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왔지?' 그 생각도 잠시 "이젠 들어오세요"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문을 연 순간 눈 밑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전등이 꺼져있는 집안은 촛불이 밝히고 있었고 방안에는 하트모양으로 촛불이 늘어서 있었다. 순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렸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딸애가 "어머니 생일 축하합니다"라며 케이크와 생화를 안겨줬다.

북한에서도 몇 번은 딸애가 챙겨주는 생일상을 받아보았지만 이렇게 촛불이 켜지고 노래가 나오는 멋진 환경은 없었다. 케이크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딸애가 "어머니를 위해 제가 북한 음식을 만들어 봤어요"라고 하면서 상을 차렸다. 북한식 두부밥을 비롯해 감자전, 녹말국수, 콩나물·시금치·고사리무침, 오곡밥 등 여러 가지로 음식을 준비했다.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과 주변 탈북자들을 초청해 저녁을 함께 했다. 초대받은 이웃들은 "아니 16살인 애가 어쩌면 이리도 어른스러울까. 정말 효녀다 효녀야"라며 혀를 찼다. 딸애는 "제가 만든 북한 음식 맛보세요"라며 "우리 어머니도 북한에 계실 때 할아버지, 할머니께 이렇게 해 드렸어요. 저도 어머니에게서 배운 거예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생활에 애로(隘路)가 없는 한국에서는 생일 쇠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만 하루 먹고 살아가기도 힘든 북한에서는 생일을 한번 준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 생일만은 예전과 같이 잘 챙긴다.

김일성, 김정일 생일과 같은 정치성을 띠는 날들은 각종 행사에 동원되기 때문에 각자의 집에서 지내지만 부모님 생일에는 모두 한집에 모여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어 좋았고, 또 부모와 자식들 사이의 애정도 깊어져 추억에 남는다고 탈북자들은 말했다. 부모 생일 때는 회사에 연휴도 신청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부모를 찾는다. 

양강도 출신 이형석(41) 씨는 "부모님들의 생신날이 오면 자식들이 모두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와 생신축하 드렸다"며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생활이 어렵다고 부모님들의 생신을 거르고 지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부모 선물로는 의류와 신발 등을 준비한다. 전기가 귀한 북한의 실정에 따라 손전지도 주요 선물 품목이다. 요즘은 직접 현금을 챙겨주는 경향도 많이 늘어났다.

함경북도 출신 김혜영(46) 씨는 "우리 집은 형제들이 식량, 부식물, 의류, 신발 등을 한 가지씩 분담해서 부모님들의 생활을 돌봐드렸었다"며 "생신날 부모님 좋아하시는 음식들을 대접했고, 저녁에는 노래를 불러 부모님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다"고 회고했다.

부모의 생일엔 긴 면발이 만년장수를 의미한다고 해 국수는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이밖에 송편, 밀가루빵, 꽈배기, 지짐, 인조고기밥, 두부밥, 기장떡이나 수수떡도 오른다. 반찬으로는 콩나물이 대표적이고 두부국, 인조고기반찬, 고비, 고사리, 가지 등을 준비한다. 감자를 많이 심는 고장에서는 감자로 만든 떡, 전, 국수, 순대, 설기떡, 깍두기도 등장한다.

부모의 생일에는 모든 자식들이 차례로 술을 붓고 손자, 손녀들과 함께 절을 하며 "건강하세요" "오래 앉으세요" "앓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등 마음속의 진심을 표현한다.

인사가 끝나면 온 가족이 함께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들면서 가족사를 의논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와 오락(노래)도 하는 등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주로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담긴 노래들을 부른다. 보통 '우리엄마 기쁘게 한 번 웃으면' '자식의 효성' 등의 노래가 불려진다.

부모들도 자신의 생일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김 씨는 "연로한 부모님도 자신의 생일을 어린아이 심정으로 기다린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자식들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자 손녀들의 재롱도 한껏 받아볼 수 있는 연중 가장 기쁜 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모를 위해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는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음해 생일을 약속한다. 속담에 "인심은 쌀독에서 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쌀독이 비어있는 북한 땅에서도 부모를 위한 효심(孝心)만큼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강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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