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치적 구호' 주민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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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김정일 일가(一家)의 위대성과 체제결속을 유도하기 위한 구호 등을 비아냥거리는 풍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따른 불만을 '정치적 구호'에 빗대 조롱하거나, 때론 자신들의 국가에 반하는 행동 등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고, 조선노동당의 방침을 전달하기 위해 선전선동용 구호를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1980년대 중반 등장)가 있다. 김정일을 대변하는 당의 결심을 주민들은 무조건 관철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주민들 속에서 이 구호는 보통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 등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용된다.
군인들이 민간인들의 재산을 도둑질할 때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물건을 훔쳐 장마당에 내다 팔 때, 농장원들이 포전(圃田)에서 농작물을 무단으로 가져갈 때도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고 말한다. 주민들도 결심만 하면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속되는 경제난에 당국의 정책을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해지면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는 주민들에게 "하면 하는거지"라는 비아냥거림으로도 돌아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함경북도 출신 한 탈북자는 "말뿐인 구호에 대한 불만"이라며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고 사기를 쳐온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방하는 말로써 최근엔 세습왕자 김정은을 비웃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정치적 구호를 제각각 해석해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이다'(1987년)는 구호가 있다.
협동농장 포전을 자신의 포전과 같이 보살피고 가꿔야 한다는 구호다. 하지만 식량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주민들은 농장포전에 가서 곡식을 도둑질할 때 이 구호를 이용한다. 주민들은 "당연히 나의 포전인데 이건 도둑질이 아니지"라고 한다.
'고난의 천리가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1990년대 말)는 고난의 행군 시기 주민들의 동요를 차단하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구호였다. 하지만 지금은 "고난의 천리를 가고나면 그 뒤에 고난의 만리가 기다린다"로 해석, 지속되는 경제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데 쓰인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1998년)라는 구호는 "저희들이나 웃으며 가지 왜 우리까지 가자고 하나", "(생활난으로)웃음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웃어" 등 당국에 대한 불만으로 표현되고 있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만민의 위대한 태양'이라는 구호는 "태양이 맞다. 그래서 가까이 가면 타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고 한다"로 회자되고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이는 북한 간부들 속에서 유행된 말로 김정일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은 아첨하느라 속이 타서 죽고 김정일을 미워(반대)하면 감옥행(북한에선 감옥을 '선선한 방'이라고 표현한다)을 하기 때문에 얼어 죽는다는 뜻이다.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1998년)는 구호는 "당에서 뭐라고 해도 우리는 우리가 좋은 대로 살아가자"는 뜻으로 사용된다. 체제선전 구호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강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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