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우리를 비사회주의로 내몰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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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정권은 최근 이러한 비사현상과 전면전을 치루고 있다. 그것도 후계자인 김정은이 직접 보위부 등 감시기관을 동원해 단속을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북한 당국은 지난해 당창건기념일(10월10일)을 전후해 발표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없앨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간부교양 문건을 통해 비사현상의 심각성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데일리NK가 입수한 이 문건에 따르면 북한은 '개인주의'와 '돈과 외화에 대한 환상',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대표적 비사현상으로 규정하면서 "이 같은 '자본주의적 독소'가 만연하면 종국에는 사회주의를 말아먹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국이 이 같은 내용의 간부 교양을 실시하는 것은 그만큼 최근의 비사현상이 김정일 체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실제 비사현상이 주민생활 깊숙이 자리 잡아 국가를 대신해 생활양식의 동력이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비사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된 배경에는 만성적인 경제난과 국가체제 시스템의 붕괴, 외부정보 유입 등에 따른 주민의식 성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비사현상, 1990년대 중·후반 급속 확산=최근 데일리NK가 취재한 북한 주민들과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비사회주의가 없었으면 고난의 행군 시기(1990년대 중반~2000년)는 물론이고 현재도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철저히 근절시키고자 하는 비사현상이 오히려 만성적인 경제난에도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지탱해 준 일등공신이었다는 인식이다. 배급을 비롯한 국가관리 기능의 마비가 장기화되며 이 같은 인식은 주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도미노 몰락 현상을 지켜본 김정일은 1992년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비사현상에 대한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뒤이어 곧바로 닥친 경제난으로 배급은 끊기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속 나오면서 주민들도 각기 살 길을 모색하게 됐다. 이때부터 주민들의 뇌리엔 먹고살기 위해선 김정일과 조선노동당이 아닌 '돈'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됐다. 생존의 기로엔 놓인 주민들은 공장·기업소, 협동농장이 아닌 시장으로 생활의 기반을 전환했다. 한 탈북자는 "국가에서 배급도 안주고 직장을 다녀도 월급조차 주지 않던 시기에 장사를 일찍 시작한 사람들은 모두 곤경을 피할 수 있었다"며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이 앞 다퉈 직장이 아닌 시장으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고, 똑같이 잘살자'는 생활양식을 요구했던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기반을 흔드는 가장 핵심적인 독소로 작용했다. 당국은 이 같은 현상이 확산되자 "돈의 노예가 돼선 안 된다"고 주민들을 교양하고 있지만 배급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의 선전은 전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당국의 바람과 달리 밀수를 통한 장사 등으로 부를 축적한 현상을 목도한 주민들은 국가가 아닌 '돈'에 기대기 시작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던 사람들은 '부의 축적'으로 활동범위를 넓혀 갔고, 장사 밑천이 없는 사람들은 자본가(돈주) 아래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가 주민들을 비사회주의로 내몰아"=비사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요인으로는 관료들의 기강해이도 꼽힌다. 주민들의 불법활동을 단속해야 할 정부 관리들이 오히려 뇌물 등을 받으며 비사현상 확산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데일리NK와 만난 함경북도 주민은 "(비사회주의) 검열을 계속 해봐야 없애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국가가 비사회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뇌물을 요구하고 돈이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처벌을 안 받으니 너도나도 돈을 벌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북한 내에는 피라미드 형식으로 뇌물을 바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중앙에서 당 자금 명목으로 지방 단체들에게 돈을 요구하면 지방 당(黨)·군(軍) 간부들은 밀수꾼들과 연계해 자금을 마련한다. 보안기관, 기업소, 군을 막론하고 말단부터 중앙 조직까지 뇌물형 자금을 상납해야 하다보니 비사현상에 눈을 감아주는 것은 일반화 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양강도 기관기업소 간부였던 한 탈북자는 "당에서 일정액을 분기마다 걷어갔는데, 공장의 설비들은 가동을 멈췄고 생산품도 없던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장사를 하게 해 한 달에 30%의 수익금을 바치게 했다"며 "결국 국가가 비사회주의를 장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경북도 출신 탈북자도 "도 경계마다 있는 보안소·보위부 초소도 (여행)증명서 없는 사람들을 단속했다가도 담배 몇 갑만 주면 보내준다"며 "어떤 초소에서는 손목에 있는 시계까지 벗어 달라고 한다. 주민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비사회주의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외부정보 유입, 新문화 호기심 부추겨=탈북자 등을 통해 유입되는 외부정보도 비사회주의 확산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보유통이 빠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가정주부들과 유행에 민감한 학생들에 있어서 이 같은 현상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미 DVD를 통해 한국과 서양 문화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고,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장사를 하고 있는 무역업자와 밀수꾼들을 통해 유입되는 정보와 물품들은 한류(韓流) 등의 새로운 유행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철저한 통제 속에 살아왔던 주민들에게 있어서 외부정보의 유입은 새로운 생활방식에 대한 동경을 부추겼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단속과 통제가 심해질수록 주민들의 호기심에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와 관련 비사 단속과 관련한 교양 문건을 통해 "중요한 것은 불순록화물과 출판물을 보고 듣거나 류포시키는 현상을 철저히 없애는 것"이라며 "특히 가두녀성들(가정주부)과 청소년학생들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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