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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충격적인 '낙태방법'
북한RT 2011-11-30 07:33:26 원문보기 관리자 1503 2011-12-05 19:01:47

오늘은 북에서 경험했던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쓰고싶다. 무상치료제….그 취지는 정말 좋은거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밤이나 낮이나 열심히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울 동네 진료소에도 진료소장, 준의, 한의사, 조산원, 간호사 이렇게 5명이 근무한다.
북에서는 여기처럼 초음파, MRI, CT, 이런 현대적 장비들이 전혀 없다….하기에 모든 의사들의 실력이 여기의 의사들보다는 배는 높아야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모든 것을 청진기와 손으로 진단하고 얼굴과 맥을 보고 진단해야 하니 그 의사들도 오죽이나 힘이들까…..

 

거기다가 배급이라는건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밤에도 왕진을 나가야 하고,,,,,차가 있나, 자전거가 있는가….순전히 걸어서 십리면 십리 이십리면 이십리를 다녀야만 한다….

 

그나마 울 동네 진료소장은 환자들의 병을 제때에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니 병이 낳았지만 다른 리에 있는 진료소장은 매일 오진에 처방도 한심한지라 사람들로부터 소장이라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아무리 정성이 지극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청진기로만, 손으로만 병을 진단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김정일이 방문했고, 외국 의료진에게 참관시키는 치과 병원의 모습이다.

우리 아버지의 일이다. 오래전부터 신장염으로 앓아왔던 울아버지, 환갑이 지나고부터는 점점 더 심해졌다.오줌을 누울때에는 30분 정도 서있다가 겨우 한방울이나 떨어뜨리고….어떤 때는 피가 막 나오기도 하고…..

 

이렇게 병이 점점 깊어져가면서 이제는 밥도 제대로 드시지 못한다….어느날 읍 내에 있는 울 오빠가 집으로 왔다가 아버지의 상태를 보고는 그달음으로 올라가더니 한 의사를 데리고 왔다. 그 의사인즉 자칭 중앙당 간부들만 치료해왔다는 봉화진료소에서 근무한적이 있다는 실력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울 아버지 겨우 눈을 뜨시고 바라다보며 빙긋이 웃음을 지으신다….아마도 이 의사가 병을 고쳐줄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 의사 말도 청산류수다…우리 아버지의 병같은거는 자신있게 고칠수 있다고 장담한다…너무 기쁜 우리 오빠 어머니한데 부탁한다…이 의사가 갈 때 뭐든지 한짐 등에 지워주라고….

 

나는 곁에서 치료하는 모습을 보았다…..그런데 그 치료하는 모습이 차마 눈을 뜨고는 불수가 없었다.

기다란 쇠줄같은걸로 성기에 밀어넣기 시작하는데 1메터나 되는 길이를 다 집어넣는다. 울아버지 너무 아프니 소리도 못지르신다…하긴 밥도 몇일째 못드셨으니 소리지를 힘도 없다.한참을 그러다가 진찰이 끝났다고 하드니 고칠수 있다고 한다…

 

순간 집안식구들이 안도의 숨을 내쉰다.울 어머니 너무 기뻐 몇 마리밖에 안되는 닭을 잡아서 식탁에 올리고 온갖 정성을 다하신다….

 

그리고 나서 갈때에는 형부가 잡아들여온 바다 고기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다…북한에서는 일반인들이 바다 고기를 평생가야 한번도 못먹는 집들이 허다하다….하도 배를 타면서 고기를 잡는 사람이니 그런 고기도 구경할 수가 있다…. 그 의사 입이 귀밑까지 올라간다….울 오빠보고 같이 읍내에 가서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한다.

 

다음날 울 오빠가 약을 가지고 왔는데 약이랬자 링게르다….이걸 맞으면 낳는가?? 속으로 의문스러우면서도 링게르바늘을 꽃는다…..그런데 웬일일까…..한시간쯤 지났을까….아버지의 입술이 파래지신다….눈도 흰자위가 더 많아지신다…..

 

진료소 소장을 불렀다….진료소 소장 불같이 화가 나서 고아대셨다…..몇십년을 부대끼면서 살아온 한마을의 진료소장을 믿지 못해서 그런 의사 아닌 의사를 불러들여서 이렇게 만들어놓았냐고……

 

그때야 진료소장이 말해준다….아버지의 병이 신장암이라고……북한에서는 환자의 가족이 실망할까봐 죽는날까지 그런 말은 안해준다….진료소장도 자신을 알고있으면서 가족이 걱정할까봐 그저 잘해주라고만 했던것이다….

 

진료소장의 말이 그 무더운 복달더위에 링게르를 배낭에 지고 70리길을 덜컹덜컹 걸어왔으니 링게르가 변했다고 한다….또 그 링게르가 정품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몇일은 더 살수있었을 울 아버지 그 가짜 의사 때문에 그 다음날 아침 숨을 거두었다.
자기손으로 아버지의 병을 고쳐드리겠다고 뛰고 또 뛰던 울 오빠 너무나 통분한 나머지 그 의사를 죽이겠다고 실성한사람처럼 날구뛰고…..온 가족이 울음바다로 변해버린 그해 여름….날씨마저도 찌는듯한 더위에 숨이 막힐거 같다….

 

상가를 다 치르고 그 의사를 찾아가보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단다…결국은 사기꾼한데 속았던것이다…여기에 와서 보니 신장에 돌도 레이저로 파괴해서 고친단다…울 아버지 병도 초기에 그 돌이라는걸 제거했으면 다 낳았을건데……

 

쉽게 갈 수 없는 북한의 최고 대학을 나오고 젊었을때에는 한 개 도의 청년들을 책임진 간부로,,, 나이들어서는 당일군으로 한생을 살아온 울 아버지의 생이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지금 간부들은 자기 살 궁리부터 하는게 원칙이 되었지만 울 아버지 간부할때는 오직 당에만 충실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사치와 사리사욕은 금물이라고 생각해왔던 시절이다.

 

그러기에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면서부터 제일 먼저 타격받은사람들을 꼽으라면 말없이 수걱수걱 김일성, 김정일이를 위해서 살아온 북한의 간부들이다.

 

언변술이 좋아 청년들앞에 나가서 연설할때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흔들었다는 우리 아버지….한없이 착하고 부지런한 우리 아버지 다섯자식을 키우면서 욕 한번, 손찌검 안 하던 울아버지 이렇게 조용히 아무 말도 남기시지 못하시고 떠나셨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마음 고생을 하시던 우리 어머니 잘 잡숫지 못하고 일만 억척스레 하시니 병이 찾아들었다…..얼굴이 누래지고 눈도 누래지고……병원에서 보더니 황달이란다.

 

병원이래봤자 마땅한 약이 없다…지금은 유엔에서 들여오는 약이라고 조금 있지만 그 약도 비상용으로 쓰여진다. 병원에서 하는 말이 댕강쑥을 졸여서 하루 세 번 한사발씩 먹이라고 했다.

 

온 산과 들을 혜메면서 댕강쑥을 뜯어다가 정성껏 달여서 올렸다. 그 물이 얼마나 쓴지 한사발먹기가 정말 힘들다…..

 

그리고 옛날해오던 방식대로 나는 부뚜막에 앉고 어머니는 밑에 채를 머리에 이고 앉아있으면 그 채위로 오줌을 눈다…그러면 그 오줌이 온 몸으로 흘러내린다…원래는 남편이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그렇게 하면 황달이 벗겨진다고…….참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기도 하고….그리고 두부를 해서 그 순물로 미역을 감아야 한다고 한다.

 

또 한가지 비법을 동네어른께서 가르쳐주신다.
제일로 크고 싯누런 황뚜꺼비를 잡아서 뚝배기에다가 닭알 두알을 넣고 푹푹 삶은 다음 그뚜꺼비를 잘기잘기 찢어서 그늘에 바싹 말리워 가루를 내어서 하루 세 번 먹으면 효과 만점이라고 한다….어머니를 위한 일인데 뭔 일인들 못하랴…..늪에 나가서 징그럽고 무섭게 생긴 뚜꺼비를 겨우 한 마리 잡아서 닭알하고 같이 삶는데 웬 냄새가 그리도 지독한지……

 

다 삶아서 그걸 손으로 찢느라니 냄새 때문에 3살 때 먹은 젖까지 다 올라오는거 같았다. 그래도 이걸 먹어야 어머니의 병이 낳을거라 생각하면 입을 옥다물고 열심히 찢어서 말리우고 절구에 잘 빻아서 봉지봉지 담아서 어머니한데 드렸다.

 

그걸 먹어 낳았는지 시간이 지나니 절로 낳았는지 한 두달쯤 지나니 어머니의 병이 호전되었다.

우리 어머니 참 앓기도 많이 앓으셨다.한번은 또 갑자기 위가 부어올라서 매일 뜸을 천장씩 두달동안 뜨는데 정말 못봐주겠다…거기 뜸은 엄지손가락만하게 크게 약쑥을 빚어서 배 위에다가 직접 놓고 떠댄다…

 

여기 뜸을 보니 그걸 뜨면 간에 기별도 안갈거 같은 느낌이 든다……북에서는 뜸도 더 크게 …살도 더 많이 타들어가야 효력이 있다고 시뻘건 불티가 살을 다 지져내도 참고 견디어낸다….

 

병원에는 약이 별로 없고 지금은 약을 파는 개인집도 많이 늘었지만 그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수가 없어 이렇게 민간요법으로 하는게 훨씬 더 효과가 있다.

 

어떤 집에서 파는 약은 그냥 밀가루를 빚어서 둥그렇게 판다고도 하고 사람인체에 들어가서는 안될 약성분들을 섞어서 넣기 때문에 잘못먹으면 생명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페니실린 항생제도 중국에서 들여와 파는데 그걸 맞고서 죽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느 날….읍내에서 일을 하는 나한데 친구가 찾아왔다. 같은 동네 동창하고 결혼해서 사는 내 친구이다…..

 

아기를 하나 낳았는데 또 임신이 되어서 그걸 없애자고 왔더니 군병원에서는 수술을 안해준다고 한다…..지금은 북에서도 출산율이 낮다고 병원에서 낙태를 해주면 법에 걸리게 되어있다….많이 낳으라는건데 낳아서 생계를 이어갈 생각에 다들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낙태를 하려고들 노력한다.

북한의 한 소아병원 입원실 모습. 병에 걸려서라기보다는 단지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수용된 어린이가 태반이다.

그 친구 날보고 어느 동네 개인 집에서 낙태를 해준다는데 읍내길을 잘 모르니 같이 좀 가자고 한다….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어 같이 갔다….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북에서는 전혀 볼수 없는 피둥피둥 살찐 개 5마리가 우르르 몰려나온다….

 

사람먹고 살기도 힘든 판국에 개까지 먹을게 없어 북한에 개들은 똥만 주어먹고 크다니니 뼈만 앙상하다….속으로는 이 집이 잘사는가보다…생각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벌써 많은 여자들이 와 앉아있다.

 

참 신기한다. 집안 가운데 밥상 하나 달랑 펴놓고 그 밑에는 세면기를 하나 받쳐놓드니 시작하잔다…이 집주인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다가 연령이 되어 집에 들어와서 이런일을 시작했다고 한다…북에서도 개인이 집에서 이런 위험한 짖을 하면 엄격이 통제한다…하지만 할려고 하는 사람한데는 못견디는가보다…이런 데가 여러군데란다…

 

우리친구 밥상위에 올라가 눕는다…수술도구도 어쩌면 그리도 간단한지…자그마한 국자처럼 생긴 기구에다가 가위가 전부이다…잘보이게 하기 위해 앞에다 초불을 켜놓고 넒혀주는 기구를 꽂고는 단 5분새 해제낀다…..국자같은걸로 안을 막 헤집더니 자그마한 피덩이가 덜렁 세면기에 내려진다….우리 친구 내려와서는 별로 아프지도 않다고 한다.

 

웬만한 기구를 잘 갖춘 산부인과 수술보다도 휠씬 아프지도 않고 짦은 시간내에 해서 좋다고 한다….친구를 좀 안정시키느라고 조금 있다가 나가기로 하고는 뒤마당에 있는 변소칸으로 향했다….

 

그런데……순간 깜짝 놀랐다….방금 세면기에다 받아놓았던 그 피덩이를 주인이 개한데 먹이고 있는것이다….. 나를 보고는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아마도 하루에도 몇십명씩 낙태한 모든 피덩이를 이렇게 개한데 먹여서 저렇게 피둥피둥 살찌웠는가보다…..그 피덩이도 사람인데…어떻게 저런일이….

 

하지만 어디다 신고할데도 없다…그냥 보고 나혼자 놀라고 나혼자 중얼거리다가 끝이 난다.
친구보고 그 말을 하면 피덩이래도 제 자식인데 마음아파할까보아 말하지 않았다….우리 친구는 그 몸으로 이제 70리길을 다시 걸어서 집으로 가야 한다….낙태하는것도 출산하는거하고 비슷하다는데 어떻게 걸어내려갈까…..

 

하루밤 쉬고 내일가라고 하니 그 다음날 농장에 일을 나가야 하니 무조건 가야 한단다….몇일 쉬지도 못하고 또 일나가야 한다니…..몸이 다 망가질거야……하고 걱정해본다…..

 

그래도 친구가 갔던 집은 경험이 풍부하니 능숙하게 해내군 한단다….어중이 떠중이들도 그런일들을 많이 하는데 어떤 여자는 그런 집에 가서 낙태하고는 화열이 멈추지 않아서 죽었다고 한다…..

 

가짜약이 판을 쳐도 누구한데 신고할데도 없고….사기꾼한데 당해서 아버지의 목숨을 잃고도 법에 고소할데도 없는 세상…..

오직 봉건사회에서 우리 선조들이 써오던 방식 그대로 21세기에도 써먹어야 하는 나라…..

 

그래도 나는 북에 있는 의사들을 존경한다….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하루밤에 열 번이면 열 번, 스무번이면 스무번 왕진을 다니고 온 몸으로 정성으로 치료해주려고 애쓰는 의사들…

무상치료제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약이 없고 설비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필자 봉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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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t ip1 2011-12-08 09:24:37
    나두 예전에 했어요.95년도에 임신했는데 병원에서 안해줘서 의사를 조산원을 불러다가 집에서 밥상우에 올라가 했는데 유산이 안된거예요.저는 다 된줄 알고 안심하고 있다가 6개월되서 알고 철도병원에 있는 저희 학부형한테 가서 했어요. 다 큰걸 하려니까 안되서 사람형체가 다 된걸 각을 떠서 아래로 꺼냈어요. 저 그때 죽는 줄 알았어요. 마취도구도 없어서 그냥 했는데...참 옛말이네요.지금 다시 임신하구 싶어요. 임산부들 너무 잘 대해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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