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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광객에게 북한 어린이는 놀잇감?
북한RT 2011-12-05 01:46:43 원문보기 관리자 1560 2011-12-05 19:02:19

 

1 중국 훈춘과 북한 나진을 잇는 고속도로 입구. 2 지안 인근 북한 측 강변에서 소형 유람선을 탄 중국인 관광객들이 북한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를 던져주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 답사다. 2004년 첫 답사는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였고, 두 번째인 2008년 답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이번 답사의 목적은 북한과 중국 사이의 경제협력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압록강 하구인 단둥(丹東)에서 출발해 두만강 하구 훈춘(琿春)까지 북중 국경 전체를 따라가는 길. 지난 몇 년의 시간이 이 지역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음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단둥에 도착해 처음으로 한 일은 한국인 민박에서 하루를 묵으며 현지상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압록강변에 위치한 ‘단동민박’. 주인장은 서울 출신으로 북-중-한 사이에 구상무역을 하며 민박을 운영 중이다. 젊어서는 중동 등 해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주인은 한때 한국에 돌아가 적응해보려 했지만 여러모로 어려웠다고 했다.

 

북한 시장 중국 상품이 점유

 

민박에는 그가 거래하는 품목과 각종 정보지를 비치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거래품목 진열대에 북한 인공기와 중국 오성기를 Y자 모양으로 전시한 모습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북한에서 무역일꾼이 출장차 자주 들르는데 그들이 인공기를 보면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한국인 민박 역시 북한 사람이 투숙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 사람에게는 호텔보다 저렴하고 식사까지 제공하는 민박이 훨씬 좋은 숙소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민박은 대체로 중국 조선족 동포가 운영했지만, 이제는 한국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단둥 세관과 북한 상인이 들르는 강변의 상가 밀집지역에서 하루를 보냈다. 상점 주인들의 말을 빌면 최근에는 북한에서 오는 상인이나 친척 방문객이 상당히 줄어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내부 사정으로 북한이 중국 여행을 상당 부분 제한하는 것 같았다.

 

단둥의 중국 측 세관에서도 특이한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북한으로 가는 북한 측 화물차가 절대다수였던 이전과 달리 중국 측 화물차가 더 많았던 것. 신의주 황금평 개발을 시작한 이래 필요한 자재를 모두 중국에서 공급하다 보니 중국 측 화물차가 훨씬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세관에서 어렵사리 만나 대화를 나눈 북한 무역일꾼은 "신의주나 평양 같은 대도시 시장은 사실상 중국 상품이 점유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괜찮을 때는 북한 당국도 남쪽 상품이 암암리에 들어오는 것을 묵인했지만, 지금은 워낙 통제가 심해 양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상표를 제거해야 반입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이튿날 찾아가 본 압록강 하구에서는 북한이 건설하는 국경의 새 다리를 위한 공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틀간의 단둥 일정을 마치고 지안(集安)현으로 향했다. 강변도로는 아직 건설 중이라 외곽으로 돌아 지안으로 진입했다. 꼬박 여섯 시간을 차로 이동해 도착하자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현지 조선족 사업가가 숙소를 안내주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사업을 해온 지역 세력가인 그는 최근 사정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려줬다. 먼저 조선족 기업이나 식당은 종업원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졌으며 그도 사업 본거지를 한국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이라 했다.

 

젊은 사람은 대부분 중국 대도시로 갔고, 적지 않은 이가 한국으로 떠나버렸다고도 했다. 북한이 개방하면 북측 인력이라도 데려다 일을 시키고 싶지만 언제나 가능할지 알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나진항 향하는 중국 트럭 행렬

 

 린장 인근의 북한 측 압록강변에서 모래를 채취하는 중국 중장비

저녁 늦게 만난 또 다른 조선족 사업가도 입맛이 쓴 소리를 했다. 중국 정부가 변방이나 다름없는 지안에 예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고구려 유적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자극을 받아 이곳을 중국화하는 작업에 여념 없다는 것이다.

 

"여기는 한국 땅"이라고 큰 소리로 떠들고 태극기까지 꽂아두고 가는 일부 한국 관광객의 행동이 중국인을 자극한 셈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국경 정비를 서두르는 것 또한 지안현이 자기 영토임을 분명히 하려는 행동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튿날 둘러보기 시작한 지안의 모습은 전과 많이 달랐다. 압록강변에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가 잔뜩 들어섰고, 고구려 역사를 집대성한 역사박물관도 눈에 들어왔다. 중국과 북한 만포지역을 연결하는 왕복 4차선 규모의 대교도 건설 중이었다.       

 

원래 이곳에는 철교만 있었을 뿐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는 없었다. 최초 건설 계획 당시 북한 측은 왕복 2차선을 요구했지만, 중국이 미래를 위해 4차선으로 하자고 해 그렇게 결정됐다고 한다. 중국이 자본을, 북한이 인력과 자재를 공급해 건설하는 이 다리는 내년 봄 완공이 목표다. 강 건너에서는 북한 군인이 공사 현장에서 밤낮 없이 일했다.

 

운봉댐. 북한과 중국이 함께 운영하는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댐 입구 매표소에서 "한국인은 출입이 안 된다"고 말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려 했지만, 옛길을 아는 운전기사가 기지를 발휘해 운 좋게 댐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돌아 나오는 길에 목격한 볼썽사나운 광경 때문에 기분을 망쳤다. 지안의 압록강변에는 북한 측 강변까지 근접하는 소형 유람선을 운영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그 유람선에 탄 중국인 관광객이 사탕, 과자, 담배 등에 실로 돌을 매달아 강변에 나온 북한 아이들에게 던져줬다.

 

그런데 쪽배 같은 유람선이 거의 북측 강변에 닿을 만큼 접근했는데도 관광객은 일부러 물건을 강물에 던져 넣는 것이었다. 대여섯 명의 북한 아이 가운데 둘이 옷을 홀랑 벗고 강물에 뛰어들어 던져준 물건을 찾아 헤맸다. 차가운 물속을 더듬어 헤매는 서글픈 잠수질.

 

멀리 북측 군인 한 명이 달려와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고 무섭게 끌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날 북한의 처지와 중국의 태도를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광경이라 하면 논리적 비약일까.

 

다음 행선지는 린장(臨江)이었다. 북한의 자강도 증강군과 맞닿은 국경 도시다. 린장에서 살펴본 북중 간 경제교류는 분명 이전보다 상당히 진전된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작은 촌락에 불과하던 린장은 10여 년 사이 놀랄 만한 성장을 거듭해 고층건물이 적지 않은 현대적 도시로 변한 상태였다. 흔히 백두산으로 향하는 여정의 기착지로 이용하기 때문인지 호텔과 모텔도 다른 중소 도시에 비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린장지역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건물 공사에는 대부분 북한에서 가져온 건축자재를 쓴다는 사실이었다.

 

목재는 북한이 압록강 상류지역에서 벌채해 중국에 넘겨주는 형식이었고, 모래와 자갈은 린장 맞은편 북한지역에서 중국 덤프트럭과 중장비로 직접 채취해 가져왔다. 건설 관계자에게 물으니 북한 건축자재 값이 중국 것의 20~30%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경 너머에서 들여오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창바이(長白)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전과 달리 창바이에서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로 가는 길에는 쑹장허(松江河)를 지나는 옛 도로 대신 지름길을 완공해놓았다.

 

백두산에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순환도로를 새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중국 쪽에서 백두산 주위를 둘러보거나 산에 오를 수 있는 이 왕복 2차선 도로는 아스팔트를 새로 깔아 아주 깨끗했다.

 

최근에는 반대편의 북한 쪽 산허리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확장하려고 북한과 협의 중이라 했다. 이 도로가 완공되면 북한과 중국이 백두산 산허리에 놓인 길로 이어지는 셈이다.

단둥 세관 앞에 서 있는 북한 화물차.

얼다오바이허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두만강 기슭을 따라 북한 회령 맞은편의 싼허(三合)를 거쳐 강 중간 지점인 투먼(圖們)을 지나 북중 경제협력을 상징하는 도시로 떠오른 훈춘지역에 다다랐다.

 

북중 국경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이곳에서는 중국 측 취안허(圈河) 세관과 북한 원정리를 이어 나진항까지 연결하는 엄청난 규모의 다리와 도로가 이미 완공된 성태였다.

 

나진항을 이용해 각종 물품을 동북지역에서 남방으로 실어 나르는 중국 측 자동차가 세관 통과를 기다리느라 즐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영토에서 자신의 영토로 물건을 나르는 데 북한 항구를 이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중국이 나진항을 조차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중화경제권에 흡수 눈으로 확인

 

나진항으로 가려고 세관에서 대기하는 차 가운데 북한 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중국 사업가에게 "조선에서 사업하기가 어떤가" 물으니 "쉽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고방식의 차이가 자못 크고 인프라가 원만하지 않은 곳도 많다는 것. 그럼에도 "비용 측면에서 실익이 있고, 장기적으로 북한도 결국 개방화의 길을 갈 것이라 믿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사업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15일 남짓, 자동차 거리계로 1500km에 육박하는 답사 길의 끝에서 만난 인상적인 소감이었다.

 

그 길 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손에 잡힐 듯 분명했다. 먼저 북중 국경 전체에 콘크리트 철조망을 설치해 국경으로서의 면모를 거의 완성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8년만 해도 국경이 불분명한 지역이 많았지만 이제는 옛 이야기일 뿐이다.

 

더욱이 비포장 구간이 많았던 당시에 비해 지금은 압록강 서쪽 끝에서 훈춘에 이르기까지 전체 국경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를 대부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비했다.

 

돌이켜보면 2004년 첫 답사 때만 해도 강 사이로 북한과 중국의 차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았다. 양쪽 민가는 모두 허름하고 낡은 상태였고, 어떤 곳에서는 북한지역이 오히려 더 잘 정비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년 새 중국 쪽에는 상당한 숫자의 고층건물이 들어섰고, 농촌 마을에도 한국처럼 붉고 푸른 양철 지붕으로 단장한 주택이 크게 늘었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오지 중 오지인 이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일부 지역에서 약간 정비한 것을 빼면 별다른 변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북한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균형을 이루지 못한 두 나라의 국경 너머로 무섭게 급물살을 탄 경제교류는 유감스럽게도 중국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개방 수준과 경제발전의 차이가 이런 형태로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자원과 인프라는 중국이 전적으로 차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북한이 중화경제권으로 흡수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단초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서로의 이익을 균형 있게 키워나갈 수 있는 경제협력을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여행의 끝에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긴 고민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 www.cyworld.com/eagle0701

 

* 1993년 북한을 탈출한 김형덕 씨는 이듬해 9월 남한에 입국했다.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1년부터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고, 대성그룹기획팀을 거쳐 2008년 9월부터 2년간 미국에서 연수했다. 현재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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