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에 영어 가르치는 '파란 눈의 천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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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저녁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홍대 앞 한 카페에서 금발의 외국 여성이 앞에 앉은 젊은 여성에게 서투른 한국말로 영어 문장을 설명한다. 이 외국인의 이름은 브레다 런드(미국.27).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수업을 받는 사람은 탈북자인 김세현(가명.21) 씨다. 브레다 씨는 일주일에 한 번 김 씨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김 씨가 그동안 공부하면서 쌓였던 궁금증을 이것저것 풀어놓다보면 어느덧 두 시간의 수업시간이 훌쩍 지나고 만다. 탈북자들이 남한 정착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느끼는 것은 영어다.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외래어조차 그들에게는 낯설다.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낄 정도다. 남한에 정착한 지 몇 달 안 되는 한 탈북자가 '컴퓨터 클리닝'이라고 쓰여 있는 세탁소를 찾아가 컴퓨터 수리를 맡겼다는 웃지 못 할 일화도 있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탈북 학생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주로 영어 관련 업종 종사자나 영문과 학생 등이 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최근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또한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유치원생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고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브레다 씨도 그들 중 하나다. 한국에 있는 동안 계속 탈북자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브레다 씨는 "영어를 거의 모르는 분들을 가르칠 때면 의사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내가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능숙하게 한다면 수업의 질이 향상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늘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한국 생활 2년차인 조단 그로(미국·26) 씨는 "탈북자들에게 영문법과 회화수업을 하고 있지만, 미국 문화를 전하는 것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북한에서는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선전만 접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탈북자라고 해서 특이한 점은 없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가족을 사랑하는 아름답고 멋진 사람들"이라면서 "나도 한국어를 공부할 때 어려움에 부딪힐 때가 많다. 그래서 불평도 많이 하는데 탈북 학생들은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조단 씨는 안산초등학교에서 탈북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인종, 민족에 상관없이 어린이는 모두 똑같다"며 "탈북 어린이들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그래서 더욱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안드레아 메이플스(미국·30) 씨는 수업 도중 우연히 탈북 학생을 만났다. 그는 "강의 시간에 '역할 연기'라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학생이 스스로 북한 사람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알고 보니 그 학생은 탈북자였다"며 처음 탈북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메이플 씨는 그때부터 탈북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그 학생의 소개로 다른 탈북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틈틈이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탈북 학생들과 식사를 같이 한다. 인간적인 관계가 깊어질수록 수업의 능률도 올라가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덕분에 주변에서 "가족 같다"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그는 "내년 봄에 탈북 학생들과 자전거를 타고 소풍을 갈 계획이다"면서 "탈북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 이벤트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 젊은이들은 너무 자기 일에만 치중하는 것 같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탈북자와 북한 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나타냈다. 김윤실 인턴기자(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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