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이 개그콘서트 보면 웃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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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6일 프레스센터에서 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아래는 세미나 개최를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입니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사단법인 `한반도 비전과 통일’(통일TV방송)은 오는 26일 오후 2시30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1차 정책세미나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덧붙인다면 이 단체의 홍보대사는 탤런트 전원주가 맡았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 몇 년전에 소개했던 ‘전원주 믹서기’ 때문입니다.
몇 달전에 열린 세미나이고 또 김정일 사망 이전이었지만, 민간주도의 통일방송에 대한 저의 견해가 반영돼 있습니다. 아래는 그때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먼저 사단법인 ‘한반도 비전과 통일’의 세미나에 초청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한반도 비전과 통일이 준비하고 있는 ‘통일방송’은 언젠가는 반드시 나와야 할 방송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시기가 지금이 적절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작한 콘텐츠를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방송은 방송이 시작된다면 당분간 한국의 시청자를 위주로 방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공중파 방송의 통일 관련 방송은 시청률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청자가 거의 없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하기 일쑤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정작 북한에 대해 궁금하고 통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자기가 보고 싶은 내용들을 시청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통일의 당위성’ ‘통일 정책’ ‘북한의 실상’ 등을 알려주는 방송이 나온다면 대국민 홍보와 계몽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도와 필요성은 상당히 긍정적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얼마 전 통일준비 공론화 사업본부가 2월부터 8월까지 총 6727명을 상대로 실시한 ‘통일준비 조성을 위한 통일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79.1%가 통일에 대한 관심도가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또한 국민 83.8%는 통일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는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은 16.2%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의 대다수는 통일을 위해서 세금도 기꺼이 바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조사 대상자 82.2%는 통일비용 준비가 필요하다고 답변했고. 통일비용 마련 방법에 대해선 예산의 일정부분을 적립할 필요가 있다는 답변이 61.4%로 나왔습니다.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기간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77.6%가 10년 이상의 기간이 지나야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또 북한정권 및 지도층에 대한 생각은 94.5%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에 반해 북한주민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긍정적(69.4%)이라고 답변해 대조를 이뤘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통일방송이 왜 필요한지 그대로 답이 나와 있습니다. 국민들이 통일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 북한 주민들에게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실례로 제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북한RT’만 사례 들어봐도 국민들이 북한과 통일이라는 주제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만들어진 지 3년 밖에 안됐지만 지금 하루 평균 5~6만 명이 방문하고 있고 벌써 누적 방문객 숫자가 3000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선 흔히 연예, 음식 관련처럼 가벼운 주제만 인기가 있고 무거운 글은 인기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북한 RT의 성장세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거운 주제도 어떻게 가공해 보여주는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는 통일방송도 무겁고 가벼운 콘텐츠를 적절하게 잘 배합하고, 전문성과 흥미를 잘 결합시킨다면 예상외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통일방송의 가장 큰 의의는 앞으로 남북을 아우를 수 있는 방송을 하는데 바탕이 될 경험의 축적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언제 올지 누구도 모르지만, 김정일의 건강이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은 분명한 일입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한반도에 어떤 일이 닥칠 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준비 없이 있다가 그럴 때 가서 갑자기 방송을 시작하려 하면 엄청난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방송사이 북한 주민들을 계몽한답시고 그들의 심리를 읽지 못하고 자기들 생각대로 제작해 방영한다면 오히려 방송 안 하기보다 못한 역효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격지심이 매우 강해 별치 않은 일에도 흥분해 반한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자존심밖에 남은 것이 없는데 남북 주민들이 직접 어울릴 때면 더욱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북한 주민들을 희화화 한다든가, 또는 그들이 민감해 하는 사항을 대수롭지 않게 다룬다면 큰 반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통일방송을 하게 되면 앞으로 탈북동포들이 제작에 많이 관여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렇게 공동으로 작업하는 과정을 거치면 방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분한 경험이 쌓일 수 있습니다. 흔히 남한 내 탈북자들의 정착을 두고 작은 통일이라고 하는 것처럼, 서울에서 남북의 제작자들이 참여해 만드는 방송 역시 작은 문화적 통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남북의 정세가 안정되면 평양에 가서 직접 방송관계자들과 만나 교류하고 토론하게 되면 성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북한에 남한 드라마가 널리 퍼져 있는 것처럼 북한 주민들 역시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동경합니다. 이제는 한국 드라마 보고 눈이 높아져 웬만한 자국 드라마는 성에 차하지 않습니다. 1박2일과 같은 오락 프로그램도 북한 주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이 북한 주민들에게 쉽게 접근해 문화적 동질감을 쉽게 이룰 수 있는 좋은 콘텐츠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로 요즘 한국에서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대로 보여주면 북한 주민들은 납득하지 못합니다. 요즘 북한에서 케이팝이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잘 납득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알건대 아직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아이돌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심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오락프로도 문화적 배경을 몰라도 쉽게 이해가 되는 프로가 좋습니다. 제 경우를 보면 처음에 한국에 와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웃는 것을 보고는 저것이 왜 재미가 있다고 하는지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헌데 요즘은 보고 웃고, 은근히 재미도 느낍니다. 제가 개그콘서트를 보고 대사에 따라 웃기 시작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특이한 경우는 아니고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영국 개그 프로를 보면 대다수 한국인들은 저게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가 되는 문화적 배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북과 남은 오랜 단절로 마치 다른 나라라고 할 정도로 간격이 큽니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개그 프로를 보면 전혀 웃기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의 개그 프로를 보면서 웃음이 나올 때가 되니 이제는 반대로 북한의 개그 프로를 보고 웃기지 않습니다. 어떤 문화 속에 있는가에 따라 이처럼 사람의 기호도 달라지는 입맛처럼 변합니다. 통일방송은 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남과 북의 문화적 코드를 다시 모으는 데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의 문화코드를 해석하는 것은 단시일 내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오랫동안 교류를 하면서 이질감을 서서히 줄여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대신 저는 처음에 왔을 때 심형래 씨의 1980년대 개그는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습니다. 통일방송이 자리 잡으면 오락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북한의 문화수준을 잘 감안해서 인기 있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을 탈북한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을 발굴해 통일방송 제작에 적극 참여시키는 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만 관심 있고, 우리만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안나올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콘텐츠들을 북한에 유통시키는 방법도 많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직접 북한에 방송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여러모로 힘들긴 합니다.
북한은 전쟁에 맞먹는 행위로 간주하고 강력히 반발할 것이고 북한 전역을 커버하려면 북한 주민들이 체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쉽게 눈에 띄는 수신안테나를 설치해야 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어렵습니다. 다만 휴전선 인근에 송신탑을 설치하고 북한의 PAL 방식으로 송출하면 개성이나 황해도 쪽은 한국 방송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 외에도 지금 대북방송이 10여개가 되는데, 대북방송들과 협력해 만들어진 문화 콘텐츠들을 라디오를 통해 북한에 송출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통일방송은 당분간 외롭고 인기도 없는 길을 갈지도 모르지만 지금 어려운 길을 간 것의 진짜 진가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국의 방송들이 북한에 진출하게 되는 그때에야 빛을 발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방송이 성공하려면 정부 당국의 지원이 결정적으로 필요합니다. 지금 국가 차원에서 통일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피부에 와 닫지 않습니다. 통일관련 방송도 기성의 언론사를 제외하고도 부처, 단체별로 인터넷 방송들도 시도하려는 곳이 여러 곳입니다. 통일부만 봐도 통일부에 인터넷 통일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통일부 산하의 북한이탈주민후원재단에서도 탈북자 대상 방송을 합니다. 지금 평양방송이라고 북한방송을 인터넷을 통해 방영하는 곳도 있고, 여러 북한 관련 단체들에서도 인터넷 방송 개국을 했거나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대다수가 영세하거나 시청률도 미미합니다. 이렇게 작은 인터넷 방송은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습니다.
정부 부처가 운영하는 통일방송은 예산은 몇 억씩 투자하지만 예산대비 시청률이 떨어지고 정권이 바뀌는 데 따라 주장이 오락가락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도 힘듭니다. 이 정도 비용을 민간에 후원한다면 물론 어디에 후원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긴 하겠지만 제대로 된 곳에 하기만 한다면 훨씬 효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에서 통일 담론을 공론화하기 위해 많이 애를 쓰는 것 같은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표적인 민간 통일방송을 하나 키워내는 것이 영세한 100개의 북한관련 방송이 있는 것보다 훨씬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사단법인 ‘한반도 비전과 통일’이 계획하는 통일방송이 대표적인 민간 통일방송으로 자리 잡아 앞으로 한국 사회의 통일여론을 선도하고, 나아가서 북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방송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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