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여정은 암행어사 역할…곧 실세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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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급사(急死)로 출발한 김정은 정권은 아직 권력기반이 취약하다는 평가다. 홀로서기가 어려운 조건에서 친인척, 즉 로얄패밀리에 대한 의존도가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모부 장성택이 그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대남사업 출신 한 탈북자는 15일 데일리NK에 "김여정이 김정일 생전에 현지지도를 답사하고 정책의 성공여부를 평가하는 암행어사 역할을 했다"면서 그녀가 실질적인 권력 실세로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김여정은 '김정일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나, 장례식에서 김정은 뒷편에 위치해 있는 모습이 포착돼 존재감이 부각됐다. 장례식 때 일본 마술사 프린세스 덴코를 초청한 것도 김여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장의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당시 특별한 직책이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김경희는 31살이던 1976년에 당 국제부 부부장(차관급)을 맡을 만큼 일찍부터 권력을 갖고 있었고, 이후 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로얄패밀리로서의 권위를 충분히 활용했다. 김여정의 경우 아직 20대의 어린 나이여서 내세울 만한 공식직책을 갖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공식 등장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고위 탈북자는 "김여정은 김정일이 쓰러지기 이전인 2008년 6월부터 아버지의 현지지도를 직접 챙겼다"면서 "김정일이 방문하기에 앞서 방문지를 살피는 등 현지지도가 가능할지 여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 둘러보는 형태가 아니라 '1호행사'(김정일 참석행사)가 가능한지를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1호행사는 호위사령부 제2호위국, 국가안전보위부 행사국 등이 관장하고 있다. 이 고위 탈북자는 "2008년 김정일이 함경북도 조선연합기업소(청진조선소)를 방문하는 1호행사가 있었는데, 전날 선글라스를 낀 긴 머리의 애젊은 외국풍 아가씨가 벤츠를 타고 나타나 공장을 휙 둘러보고 사라졌다. 그리고 난 후 다음날 1호행사가 중지됐던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간부들은 그 아가씨가 김정일의 자녀로 알고 있었고, 이름은 여정이 아닌 예정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열흘이 지나 김여정이 다시 나타나 기업소의 보안과 위생 상태를 재확인하고 나서야 다음날 김정일의 현지지도가 이뤄졌다고 한다. 2009년 함경남도 흥남 비료공장 방문 때에도 김여정이 하루 전에 공장을 방문해 간부들을 당혹해 했던 일이 었었다. 이 때문에 그녀를 '암행어사'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일도 철저히 김여정의 말을 따랐다"면서 "김여정의 결심이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결정지었다"고 덧붙였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이 여정이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했으며, 가족 식사 때도 옆에 앉혔다"고 회고한 바 있다. 김정일도 김경희를 정책 평가에 적극 활용한 바 있다. 김경희는 2009년 화폐개혁 이후 시장과 인민생활을 둘러보고 직접 그 결과를 김정일에게 보고해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시키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 그는 "오직 자기 혈육의 말을 절대시한 통치 방법"이라며 "김정은도 김여정을 자기의 눈과 귀가 되는 역할자로 곁에 두기를 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송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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