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는 김정일의 두 번째 여자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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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상 이 육성은 고영희의 50번째 생일 행사에서 스스로 낭독한 연설로 추정된다. 영화에서는 이 연설 시점을 고영희의 "탄생 50돐"이라고 밝혔다. 데일리NK 됴쿄지국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공식 출생문서에서는 고영희가 1952년 6월 26일 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연설 시점은 2002년으로 추정된다. 고영희는 우선 "장군님과 함께 기쁨도 영광, 슬픔도 영광, 시련도 영광으로 생각하며 보내온 30년 세월을 돌아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힘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고 운을 뗐다. 말 대로라면 1970년대 초반부터 김정일과 관계를 맺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영희의 장남 김정철이 태어난 해는 1979년~1980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맺어준 공식적인 본처 김영숙과 1974년 결혼해 이후 딸 김설송을 낳았다. 또 유부녀였던 유명 배우 성혜림과는 이미 1971년 장남 김정남을 낳았다. 따라서 고영희의 발언만 놓고 본다면 1970년대 초반 김정일의 여성관계는 순서를 파악하기도 힘들 만큼 복잡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고영희가 김정일의 '세번째 여자'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추측이었지만, 실제로는 '두번째 여자'였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녀는 "어느 날, 장군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 보라. 내가 얼마나 힘든 7년 세월을 보내왔는가를'"이라는 김정일의 발언을 소개하며, 당시상황을 "겹치는 자연재해, 어려워만 가는 경제사정 때문에 일꾼들이 아우성치고, 우리 인민들이 쌀문제, 전기문제, 그 모든 것이 장군님께만 떠맡겨지고 계실 때, 찢어지시던 가슴 아픔도, 여기저기서 가족이 흩어지고, 방랑아들이 생기고 있다는 보고로, 잠 못드시던 밤"이라고 회상했다. 고영희는 이어 "바로 적들이, 오늘의 원자탄보다 더 무서워하고, 도저히 해칠 수 없는 똘똘 뭉친 우리 강력한 힘의 근원과 시발점이 바로, 우리 장군님 추켜드시고, 앞으로도 계속 추켜드실 믿음의 검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했다. 그녀는 "우리 장군님께서 오늘처럼 내내 건강하실 것과 장군님 전사 우리들 모두가 맡겨진 본분을 잘할 것을 다짐하며 축배를 들 것을 제의한다"면서 연설을 마쳤다. 김소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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