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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사장은 아무나 한다
Korea, Republic of 관리자 930 2014-02-18 21:31:42

오늘은 2007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어엿한 사장이 된 한 탈북민을 소개합니다.
흰 쌀밥 한번 실컷 먹고 싶은 소원을 안고 탈북한 19살 남양에게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인정받는 대한민국은 천국입니다.

 

그녀는 탈북하여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민들의 장사를 단속하는 보안원(경찰)들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뛰던 메뚜기 시장에서처럼 고달프지 않아도 어딜 가나 흰쌀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애초 돈을 벌어 돌아가려던 고향은 날마다 더해지는 북한 당국의 탈북자처형 소식과 중국공안의 대대적인 북송정책에 죽어서도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공포의 땅입니다.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360여만명의 대량아사와 탈북사태는 사상 최악의 인권유린의 원흉 김일성 세습독재의 산물이며 그녀를 비롯한 2만7천여명에 달하는 남한 행은 북한당국의 인권유린과 세습무능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2년에 걸치는 난민생활을 마치고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하였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진로의 첫 발을 내딛습니다.

 

마트개업식에 온 동창생들과 주변 분들의 축하와 격려에 감사하고 그녀는 탈북도중 숨진 탈북자들을 기억하며 대한민국에서 잘 살아야 될 의욕을 다짐합니다.

 

면접에는 어머니 나이대의 아주머니로부터 삼촌 나이대와 비슷한 장년, 한 부모가정의 검정고시생들, 고려대 졸업생들과 부사관시험 응시생들 등 다양합니다.

 

마트를 개업하고 운영하며 20대 중반의 여 사장은 대한민국을 알아가게 됩니다.

 

처음 마트를 개업할 때 주변 사람들은 어린 점주에게 우려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마트의 매출도 오르고 점주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도도 오르게 됩니다. 점주에겐 돈도 벌고 칭찬도 받는 일석이조의 이득인 셈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어린 점주는 자신의 즐겁고 행복한 사업의 노하우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 사업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후회되는 점은 없었습니까?
B: 하고 싶은 일을 도전했지만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고객과 본사와의 관계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상품을 발주하는데서 시스템 이해와 문서처리가 원만하지 않아 적응하기까지 시일이 필요했습니다. 고객의 호응을 받기까지는 6개월 정도의 시일이 필요했습니다.

 

A: 고객을 대하는 업종이여서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경쟁력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해결하였는지요.
B: 고객과 직원 모두를 한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고객층도 나이와 성별, 성격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직원 채용시에도 어머니 나이대와 삼촌의 나이대를 비롯해 동갑내기와 갓 검정고시를 치른 한부모 가정의 가장들도 만나게 됩니다.

마트를 운영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면접 대상은 고려대를 갓 졸업하고 취업준비 단계에 있던 생물학 학사학위를 받은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사회의 첫 발을 마트에서 고객과 함께 떼였고 좋은 기회였다고 하였지만 저 역시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어 좋았다고 동갑내기의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A: 검정고시 준비생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B: 검정고시 준비생들은 이혼 가정의 자녀들로 부모님의 병환으로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는 가장들입니다.
한창 남들처럼 누리고 투정도 부릴 나이지만 그들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한편으로는 생계에 필요한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근면 성실한 그들에게 일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였습니다.

 

A: 사업을 하면서 감동적인 사실이 있으면 몇 가지 부탁합니다.
B: 저의 사업에서 성공은 매출을 좌우지하는 고객서비스와 청결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하는 것과 직원과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저의 집으로 초청하여 제가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는 시간을 통해 직원들의 감동은 백배가 됩니다.

그들은 직원이기 전에 형제들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제가 아플 때면 약을 사오고 어려울 때에 힘을 내라며 솔선 나서 자신들이 사업주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사업을 통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보았습니다. 저의 직원들은 보너스에 대하여 조금도 응당히 여기지 않습니다.

고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던 길에 짐을 맡겨두거나 현금이 모자랄 때면 외상으로 내어주기도 합니다.
작은 옷가지들과 과일이나 간식, 야채, 명절선물까지 챙겨 주는 고객도 있습니다.
고객 중에는 저를 "가시나"라며 딸처럼 부르는 분들도 있고 "언니"라 칭하는 고객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가끔 힘든 가정사를 터놓는 분도 있어 상담을 하다보면 건강상, 감정상, 직업상의 문제를 듣게 됩니다.
상담을 통해 저의 탈북이 일생일대의 최고의 행운이며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A: 언론 방송을 보면 최근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릴레이 대자보가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탈북민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B: 저는 반대로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안녕치 못합니까?"
밥 한술 때문에 어두운 강에 몸을 던져 목숨 걸고 탈북한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십 년의 청춘을 김씨 일가에 다 빼앗긴 탈북민들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맨손으로 시작하여 사업장을 내고 사장이 되어 마음껏 돈을 벌고 누리며 사는데 이곳에서 안녕치 않으면 어데서 안녕하단 말입니까?
배고픈 것도, 헐벗은 것도 아니요, 말할 자유, 들을 자유, 다닐 자유, 꿈꿀 자유, 온갖 자유를 다 가지고도 안녕하지 못하다면 도대체 무엇이 안녕이란 말입니까?

북한에서 모든 걸 다 빼앗긴 우리에게는 무엇이든지 도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가 너무 좋습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누구나 누려야 할 행복이 /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의 이상이 / 끝없이 펼쳐지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던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부르네
     아-우리 대한민국 아-우리 조국
     아-영원토록 사랑하리라

 

그렇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누리는 행복보다 더 값진 것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누리는 행복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20대 청년사장이 되어 행복바이러스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 탈북사장(마트점주)의 인터뷰 내용 이였습니다. 탈북민들의 성공 정착담은 계속됩니다.

 

다음에 이음

 

2014.2.17 김정금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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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단하네 ip1 2014-02-19 03:41:09
    젊은 여자분이 대단하네~~ 마트가 번창하고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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