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 그는 누구인가?(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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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간첩사건' 결심 공판 연기로 탈북자 사회가 한층 뜨겁다.
중국 화교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데 따른 반응이 아니다
그가 서울시 공무원임에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상을 핑계로 북한을 수차례 안전하게 세관을 통해 드나든 사실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여서 단 한 번의 용기도 낼 수 없는 북한으로 수차례 무사히 드나든 사실은 국경출입을 주관하고 있는 북한보위부의 비호가 개입됐다는 증거이다.
현재 탈북자들 속에서는 유우성과의 접촉 후 보위부의 검열 및 불의 단속에 걸려 잡혀가거나 조사를 받은 사실들이 속속 제보되고 있다.
- 민변은 대답해야 한다. 이것도 우연이라 우길 참인가?
간첩은 간첩이라고 이마에 쓰고 다니지 않는다.
탈북자도 아닌 중국 화교를, 360만의 북한 주민들의 인권참상에도 일언반구의 반응도 없던 민변이 갑자기 인권보호를 빙자한 변호에 우리는 얼마전 체포 된 대한민국 파괴범 이석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변의 탈을 쓰고 정의와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의 애국정서를 파괴해 국가 안보를 뿌리부터 흔들려는 이들에게 2만 7천명의 탈북민과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은 묻는다.
유우성의 간첩 판결에 그동안 그를 변호해온 자들 모두가 공범 및 사주로 같은 범주의 국가보안법에 처단돼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가.
얼마 전 있는 이석기 재판에도 변호인단으로 나섰던 것으로 전 국민의 지탄을 받아 온 민변은 오늘 애국 국민들의 예리한 시험대위에 올라있다.
유우성에 대해, 북한에 대해 민변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2004년 4월 대한민국 입국 절차를 마치고 하나원 57기로 퇴소한 유우성은 친절한 성품으로 담당형사의 양아들이 되었다. 그 후 서울의 모 명문사립대 중국어과에 입학하면서 서울 서대문구와 송파구에 거주하고 탈북자의 모범적인 정착 사례로 여러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유 씨는 자신을 함경북도 청진태생이며 청진의대를 졸업 후 외과 의사를 1년간 하다 탈북했다고 주장했지만 한 고향에서 살던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화교들은 대개 6.25전쟁 참가자 및 그 자손들이거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피해 북한으로 건너간 두 부류로서 북한은 화교에게 공민증을 주지 않는다.
원래 유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시 오봉이이며 1990년대 초반 회령시내의 성천동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족인 유우성의 할아버지의 이름은 류린당이며 부모도 한족이다.
청진시 포항구역 수북동 화교학교 6년을 마친 유우성은 중국 국적자인 화교는 일반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을 뿐 원칙적으로 대학도 다닐 수 없음에도 화교학교 옆에 위치한 청진의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한것은 중국 국적의 화교들이 잦은 중국왕래와 미공급에 의한 중국 공산품 무역의 활발한 주역이 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 주민보다 자유로운 중국왕래를 보장받는 그가 민주주의를 찾아 한국행을 택했다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자.
북한에서 누구보다 부유하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유우성이 민주주의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왔다? 중국에 고급 아파트를 마련하고 영국으로 난민신청? 위장탈북으로 서울시 공무원? 어머니 장례로 국적 취득 후 북한으로 수차례 드나들었다?
아래에 유우성(유가강)과 한 고향에서 중국과의 전화통화와 무역업으로 인연이 있는 탈북자 이주성씨의 글을 소개한다.
"[유지아장])은 누구인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당국이 유가강의 북한 행적을 알고 올바른 조사를 하기 바라서이다.
다만 유가강의 사건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신을 조장하고 어느 특정의 정치 장사꾼들이 불순한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나 구실로 이용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가강은 내가 탈북 하기 전 살던 북한 국경도시 회령시에서 유별난 인연으로 알게 된 화교(북한에서 살면서 중국 국적을 가진 한족)출신의 20대의 젊은 청년이었다. 말이 별로 없고 사람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유가강이 '간첩이다. 아니다.'를 떠나 북한에서 내가 그를 알게 되어 지낸 3년 남짓한 기간 보고, 듣고, 느낀 유가강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리는 것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그의 행적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째 끌어오는 서울시 공무원 사건을 빨리 마무리 하는 것이 유가강 본인에게도 좋고 사법기관과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저의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가 북한 보위부의 임무를 받고 탈북자로 가장하여 남파 된 간첩인지 아닌지를 알아서 판단하시기 바란다.
그 이유는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 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갈 때 북한 화교들은 중국 국적을 이용하여 중국으로 드나들면서 식량을 비롯한 식료품, 생활필수품, 가정용품, 전자기기들을 화물차로 가득 실어 북한으로 가져다 팔곤 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고장의 장사꾼들과 타지방(청진, 김책, 단천, 함흥 등) 앞쪽지방의 대도시들에서 온 장사꾼들에게 상품들을 시장 가격보다 조금 싸게 다량으로 넘겨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폭리를 얻곤 했었다.
유가강의 집은 회령에서 주로 TV, 녹화기등 가전제품을 중국에서 많이 가져다 팔곤 한 것으로 기억 된다. 유가강을 내가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알게 된 것은 친구를 통해 서이다. 그를 친구부터 소개 받기 전에도 나는 한 달에 1~2번 꼴로 그의 집에 찾아가 중국에서 가져온 TV와 녹화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들을 구입해 청진에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주거나 그들이 회령으로 들어오면 유가강의 집에 데려가 소개해 주곤 했다.
다음에 계속 2014년 4월 1일 김정금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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