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도 삼지연 산불로 백두밀영 김정일 生家 불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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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양강도 삼지연군에서 지난 14일 발생한 화재로 북한 당국이 김정일 생가(生家)라고 주장하는 '백두밀영 고향집'도 불탔다고 내부 소식통이 알려왔다. 양강도 소식통은 21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삼지연에서 발생한 화재가 백암군까지 확산되면서 국가적으로 비상으로 걸렸다"면서 "백두밀영 고향집을 비롯한 백두산지구 혁명사적지 대부분이 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양강도 10군단, 국가안전보위부, 도(道) 인민보안국 등에 비상이 걸렸다"면서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중앙당 간부들까지 파견나왔다"고 전했다. 백두산지구 혁명사적지는 김일성 생가로 알려진 평양 '만경대고향집'과 더불어 북한 당국의 우상화 사업이 집약되는 곳이다.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근교 브야츠크에서 태어났지만 북한은 김정일이 1942년 2월 16일 백두밀영의 한 '귀틀집'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 1970년대부터 혁명사적지로 조성했다. 김정은 3대 세습 이후에는 '백두혈통'의 근원지로 선전되고 있다. 북한 수뇌부가 지난 2012년 2월 김정일 출생 70회를 맞아 백두밀영에서 당·정·군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결의대회를 열고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백두산 지구에는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는 1930년대의 행적 들이 가득하다. 북한은 이 일대를 '혁명사적의 대(大)노천박물관'이라고 자평하면서 해마다 간부, 군인 주민들의 현지 답사 행군을 조직하고 있다. 이곳에는 청봉숙영지, 건창숙영지, 베개봉숙영지, 리명수숙영지, 무봉숙영지 등 7개 숙영지가 있다. 가장 유명한 백두산 밀영에는 김정일이 출생했다는 귀틀집이 있고,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사용했다는 '3호 밀영'도 이어진다. 이밖에 김일성이 사용했다는 '사령부 귀틀집', 경위대 대원들이 사용했던 '경위대병실', 작식(作食)대 시설 등도 혁명사적지로 관리되어 왔다. 198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등장한 '구호나무'(김일성 빨치산 대원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나타낸 구호를 새겼다는 나무)도 1000여 점이 자리하고 있다. 소식통은 "삼지연군에는 백두산 답사생들의 숙영소인 '근로자각', '소년단각', '대학생각'이 있는데, 불길이 여기까지 번졌다면 모두 타버렸을 것"이라면서 "혜산, 삼지연, 대홍단 등 양강도 지역은 모두 긴급한 상황으로, 기관 기업소별로 작업구간을 지정받아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북한 당국은 현지 주민들을 대거 동원해 이번 화재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은 "20일부터 혜산시내에 방송차 선전이 시작됐고, 3방송도 불끄기에 모든 사람들이 적극 참가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고 했다. 혜산시는 물론 보천군, 운흥군, 백암군, 신파군 등 인근 지역 주민들이 산불진화에 모두 동원되고 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가을이라 공기도 건조하며 낙엽도 말랐고, 바람까지 세차 (진화)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불이 난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불길이 수그러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벌써부터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화재가 고의든 실수든 누군가 줄줄이 죽어나갈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면서 "방화라면 국가적인 반동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고, 방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국가 중요 사적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역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식통은 "법 일꾼 사이에는 이번 일은 한두 사람이 책임질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면서 "도당 간부들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현장에서 숙식을 하면서 불끄기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화재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공식 반응 역시 주목되고 있다. 아직까지 북한 매체들은 이번 화재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이 이번 화재를 공개할 경우 스스로 '국가보위 체계' 책임를 떠 안아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없었던 일'로 묻고 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백두산 혁명사적지 답사'가 갑자기 중단되는 이유를 궁금해 할 주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강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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