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線 넘어온 각오면 南서 당당한 일원될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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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하나원에서 퇴소한 황순희(가명·사진) 씨는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황 씨가 그렇게 찾아간 곳은 수원시 고용지원센터였다. ○○병원의 환경 미화원을 추천했는데 북한에서 20여 년간 읍사무소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관내 책임자 일을 맡아왔던 그녀기에 처음 해보는 병원 미화원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먼저 한국에 정착해 건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자녀들도 나이 많은 어머니가 경험 없는 궂은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며, 다른 일을 알아보거나 집에서 쉴 것을 권했다. 그러나 황 씨의 생각은 달랐다. 어렵게 사선(死線)을 넘어왔기에 한국에서 당당히 직업을 갖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든 생활이 시작됐다. 아침 7시에 출근하면 병원 건물 전체 청소를 바로 시작하고, 청소를 다 마치고나면 병실 커튼, 환자복, 침대 시트 등 세탁일도 해야 했다. 손에 익숙하지 않은 일을 의지만 가지고 묵묵히 버티기에는 너무도 지치고 고단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씻지도 못하고 바로 쓰러져 잠드는 날들이 부지기수고,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는 곳이 없었다. 몸에 익숙하지 않은 일을 처음 하는 것이다 보니 몸이 힘든 것이야 당연했지만, 그보다도 출근 후 말동무 없이 병원 건물 전체를 혼자 청소하면서 일에 대해 물어보거나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더 컸다. 아침에 출근한 후 환자들이 방문하기 전 두세 시간 만에 복도며 화장실 같은 공용 공간을 말끔히 청소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도저히 그 시간 안에는 다할 수 없었다. 환자들이 병원에 방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청소 작업은 더욱 힘들어졌다. 고민 끝에 황 씨는 출근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겼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자 두 시간, 세 시간씩 출근 시간을 조금씩 앞당기다가 보니 결국 나중에는 새벽 3시에 출근하게 됐다. 그렇게 석 달을 일하고 나니 더는 견딜 수 없어 결국 병원 원장을 찾아가 그만 두겠다고 말하게 됐다. "'여사님은 누구보다 우리 병원에 꼭 필요한 분입니다'는 말이 큰 힘이 됐어요." 일을 그만 두겠다고 말했을 때 황 씨의 두 손을 꼭 잡고 병원 원장이 했던 말은 지금도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원장은 그에게 "부디 그만두지 말아요. 여사님은 누구보다 우리 병원에서 꼭 필요한 분이십니다"고 말했다. 그 순간 황 씨의 눈언저리에서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포기하려고 단단히 결심했었지만 원장의 그 말은 그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큰 힘이 됐다. 탈북 후 한국사회에 정착하면서 힘든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그의 노력과 능력을 인정받게 되니 가슴이 벅차고 지나온 힘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황 씨는 "차라리 방안에 들어앉아 귀여운 손주나 돌보며 살 걸, 몇 푼 번다고 매일 같이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일을 하러 나와야 하나 후회도 많이 했었어요.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지요. 사회의 한 성원으로 떳떳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나 역시 이 사회 어느 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원장의 말 속에서 그는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인정과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후 황 씨는 봉급도 인상되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됐다. 이후 7년 동안 지금도 새벽 3시 출근, 오후 2시 퇴근을 이어오고 있다. 매일 새벽 함께 출근길에 나서는 소중한 동반자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개인택시를 모는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황 씨. "아들딸의 성화 때문에 결혼하게 됐다"며 빙긋 웃었다. 그의 성실하고 다정한 남편은 매일 새벽마다 직접 택시에 태워 출근길을 도와준다. 이처럼 남편은 그가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곁에서 함께 하는 소중한 동반자다. 묵묵히 힘을 보태주는 남편과 든든하게 자신을 응원해주는 자녀가 있어 행복하다는 황 씨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소녀처럼 늘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당당하게 일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과 보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남북하나재단에서 주최한 '북한이탈주민 장기근속자 수기 공모전'에 응모해 수상을 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보여준 그의 높은 책임감과 성실한 모습이 심사위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황 씨는 "그 상을 받았을 때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노력했던 것을 모두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어요. 이제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원이 됐다고 생각하니 정말 행복합니다"고 말했다. 북한 말에 '돌 꼭대기에 올려놔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생활력이 강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지만, 어찌 보면 황 씨처럼 인생의 목표를 멈춤 없이 성실하게, 열심히 이어 가는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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