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성실히 일했다고 2000만원 보너스 줘 눈물 펑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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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던 시절에 북한에서 여자축구 선수로 뛰었어요. 체력도 좋았고 자존감도 높았죠. 하지만 꿈을 펼치기에는 가난이 앞을 막고 있었고, 북한의 독재체제도 호락호락 하지 않았어요. 결국 중국으로 넘어왔지만 거의 밑바닥 인생이었죠. 강제북송의 두려움 속에서 첫 아들은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났고, 희망을 품기에는 도처에 절망스러운 상황뿐이었습니다. 어서 한국에 와야 한다는 일념에 기회가 닿게 돼서 입국했는데, 정착이란 쉽지 않더군요. 날마다 고향생각, 아들생각에 눈물만 흘렸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탈북자 김희정(사진) 씨에게 차츰 운명이 미소 짓기 시작했다. 성실하고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남편을 만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시부모는 무엇이든 그를 응원해줬다. 새로운 가족의 도움으로 중국에 있던 아들을 데려왔고 심장이식수술도 받을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더해져 직장생활도 순탄하게 할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만 4시간이 걸렸지만 3년 동안 한 번도 지각·결근 없이 근무하는 모습에 회사 사 장은 김 씨가 퇴직할 때 3년간 고용지원금인 2000여만 원을 봉투에 넣어줬다. 고용지원금은 탈북자들을 채용한 회사에 정부가 지원하는 돈이다. 감동과 기쁨의 눈물을 뒤로 하고 그렇게 돈을 모아 식당과 명태덕장을 시작했다. 김 씨는 “처음부터 원하는 만큼의 품질과 맛이 나오지 않는다면 팔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한 번은 3000만 원 어치, 또 한 번은 1000만 원 어치의 명태를 폐기처분하기도 했습니다. 달리 생각할 때 팔아버리면 그뿐이지만, 그럼 그 손님은 절대 다시 찾아오지 않겠죠. 양심상 그럴 수 없었고, 혹시나 그것이 탈북자들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주지 않을까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올바르게 고객을 대하고 지역 사회에 봉사활동도 열심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단골이 늘었고, 또 명태판매는 홈쇼핑에 진출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수출도 추진되고 있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또한 그는 반찬집도 병행할 생각을 갖고 있다. 이처럼 김 씨가 양꼬치·명태요리 전문점을 낸 것은 2011년으로, 4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맛을 아는 단골들이 즐겨 찾는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인근에 사는 탈북자나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고, 평소와 다른 매력적인 맛을 발견하게 된 한국 사람들도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그는 “명태덕장을 운영하면서 생기는 부산물로 명태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요. 양념과 식재료도 손수 구입하고 ‘내가 먹는 것을 내가 만들어 판다’는 생각으로 조리하고 있죠. 양꼬치도 최고급 육질의 고기만 팝니다. 진짜 양꼬치를 찾는 사람들은 그 맛을 알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김 씨가 만드는 명태탕은 북한식(式)과 한국식을 절충한 것으로, “북한식을 고집하기보다 남한 사람의 입맛도 고려해 요리한다”면서 “북한에서 살 때 바닷가가 고향이었어요. 생선의 수출 작업을 하시던 부모님을 봐 왔기 때문에 생선의 상태는 한 번 흘깃 봐도 알죠. 중국에서 장사를 할 때도 관련 업종을 했었기에 자신 있었습니다”고 말했다.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5명 가족의 생활비와 교육비 정도를 남기고 지역 내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도우며, 또 타향살이를 하는 탈북자들에게 북한식 음식을 나누는 데 애쓴다는 김 씨는 ‘그렇게 하면 무엇이 남느냐’는 말에 “나누고 베푸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살아야 한다는 각오로 시작한 사업인데 분에 넘치는 관심도 받고 우리 가족이 생활할 만큼은 된 것 같아요. 이제 도움을 받았던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값진 인생을 살고 싶어요. 작은 정성이나마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나눔을 전하겠습니다”고 포부를 전했다.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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