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이라는 깊은 수렁에서 나를 건진 평양각시 - 이영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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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9년 3월 함경북도 회령시 대덕리라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후 하루도 빠짐없이 국가에 대한 숭배교육을 통해 맹목적인 충성심을 키웠으며 군 생활을 하면서도 수십개의 훈장과 메달을 받고 조선노동당원이라는 영예까지 안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6월에 10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할 즈음 김책제철 연합기업소의 노동자로 배치되었다. 그림 그리기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미술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것이 좌절된 것이다. 배치받은 김책 제철연합기업소에서는 안전관리 허술로 인해 하루에도 수십건의 사고가 발생하여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또한 기업소 주변에는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식량난으로부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사람들의 수도 점차 늘어갔다. 나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유달리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당에 의지하기 보다 스스로 살길을 찾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1997년 3월 대한민국으로 귀순하게 되었다. 한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자본주의 나라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이 땅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회사에 입사하였다. 열심히 일했으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게다가 난생 처음보는 유혹의 세계 앞에 호기심부터 앞세우다 보니 손에 쥐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몇 배로 많았다. 결국에는 생존마저 위협받을 만큼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다른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곧바로 간판업을 하는 회사에 취직하였다. 아찔한 고층건물 중간에서 밧줄하나에 몸을 맡긴 채 대롱대롱 매달려 무거운 간판을 고정하는가 하면 쇠사다리를 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로 한복판을 헐떡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돈을 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 조금이라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박봉속에서도 35만원 이상은 무조건 저축했다. 그러다 보니 수중에 돈이 없어 때로는 마실 물마저 살 수 없었다. 오죽하면 집에 와본 친구들마다 "도무지 사람 사는 집같지 않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스럽게 사느냐"며 야유를 보냈겠는가? 그러나 그 회사마저 6개월정도 다녔을 즈음 난데없는 IMF체제가 시작되면서부터 운영이 어려워져 봉급을 받기가 힘들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궁핍한 살림인데 봉급까지 받지 못하게 되었으니 저축은 고사하고 당장 먹을 것도 해결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후 닥치는 대로 고생하면서 모은돈과 가지고 있던 정부지원금을 합치니 3,000만원 정도 되었다. 그 어디에도 의지할 친척하나 없는 이땅에서 힘들게 벌어놓은 그 돈은 어찌보면 내 생명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그 돈을 모으고 난후 얼마되지 않아 나는 헛된 욕망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보다 앞서 귀순한 김용씨 같은 사람들이 식당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고 나도 음식점을 차려 순식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 빠져 수중에 있던 자금을 모두 털어 음식점을 개업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험없이 욕심하나로 시작한 식당업은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빚더미에 올랐다.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차는 노릇이었다. 내 딴에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만 했다. 나는 이 와중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따뜻한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찾아 다니며 그분들에게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털어 놓으면서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내게 도움을 주었다. 결국 작년 10월 MBC-TV의 일요일 일요일밤에 인기코너였던 신동엽의 신장개업프로에 출연하게 되어 평양각시라는 이름으로 다시 음식적음 개업하는데 성공했다. 성황리에 개업식을 마친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별 어려움 없이 평양각시는 잘 운영되어 나가고 있다. MBC-TV의 프로는 좌절이라는 깊은 수렁에서 헤매이던 나를 건져낸 셈이다 지난 시기를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수많은 일들은 나를 이 사회에 적응시켜 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평양각시를 통해 겨우 정착의 토대를 마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완전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꿈에도 그리운 부모형제들과의 상봉을 이룩한 그 날을 위해 계속 노력해나갈 뿐이다. 2000년 3월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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