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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침침하신 분, 안경하나 맞춰 드릴까요? - 황 영
동지회 17 4367 2004-11-19 04:03:26
희망의 땅 대한민국에 온 지도 어느새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즐거운 일도 겪고 힘든 일에도 부딪치면서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생각해보면 아직도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 듯 싶다. 오늘도 꾸준히 무엇이든 배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미약하나마 나의 3년간의 정착생활은 이렇게 글로 표현하려니,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만한 좋은 경험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쑥스럽기만 하다. 북한을 벗어나 내가 겪었던 일들을 회상해보고 현재의 내 모습을 반성하는 기회로 정착과정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외국에서의 생활

난 한국에 오기 전 태국에서 잠시 생활했다. 태국에서는 그리 훌륭하진 못하지만 그림 그리는 재주 덕분에 생계를 근근히 유지할 수 있었다. 3일정도 공을 들여 그림 한장을 그려내면 태국돈 2500바트, 한국돈으로 8만원 정도되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태국의 한인촌 식당가를 전전하며 한국에서 오신 스님이나 관광객들에게 그림을 팔았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접하면서 이들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대부분 보석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보석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의 여유가 있다는 증거일테다. 같은 동포이지만 나와는 처지가 사뭇 다른 그들을 보면서 기회가 되면 꼭 한국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한국에 가서 보석에 관해 공부하면 직장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느날 한국에서 안경장사를 하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의 안경테를 태국에 가지고 와서 파는 분이었다. 그 분은 내게 태국에서 안경을 팔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무작정 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림을 팔며 계속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품질 좋은 한국안경들을 보고 이 정도면 장사가 꽤 되겠구나하는 생각에서 덥석 약속을 한 것이다.

안경장사가 쉽지만은 않았다. 언어소통도 잘 안되고 어디에 가서 팔아야 할지도 난감했다. 아무 가게에 들어가서 안경테를 팔아보려다가 내쫓긴 경험이 수두룩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안경시장이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한국안경의 품질 경쟁력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통해서 한국의 경제발전과 기술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한국에 가게 된다면 안경에 대해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보석공부, 안경공부....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많아졌다. 하지만 내 현실은 마음 놓고 이런 공부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한국에 가면 꼭 도전해보리라 생각만 할 뿐, 어떤 것도 실천에 옮길 수 없었다.

땀흘려 일했던 건설현장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1999년 여름 한국에 도착했다. 들뜬 마음으로 한국에 왔지만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태국에서처럼 불안정한 생활은 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오자마자 안정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무턱대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하기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우선 건설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이 사회를 느껴보고자 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고된 일과가 계속되었다. 드릴으로 구멍을 뚫고, 문짝을 달고, 벽돌을 나르며 열심히 일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한 2개월 동안, 힘들지만 땀흘려 일하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달콤한 환상 속에만 빠져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멋진 미래를 꿈꾸면서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분명 외국생활을 하면서 공부해 보고자 결심한 것이 있었는데....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각오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하고 싶었던 보석 공부

2개월간 노동일을 하다보니 이젠 뭔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 다니면 자격증을 딸 수 있을거란 주위의 조언도 있고 해서 우선 태국에서부터 하고 싶었던 보석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보석감정학원에 가서 상담을 했는데, 학원에서는 내가 탈북자라서 공부하기 힘들거라며 만류하는 것이었다. 탈북자라서 공부를 못한다고? 자존심도 상하고 오기도 발동해서 6개월 코스 자격증반에 등록했다. 막노동을 하며 열심히 하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막 깨달았던 나였기에 의욕적으로 학원생활을 시작했다. 같이 학원에서 수강하는 동료들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들보다 여러 면에서 뒤쳐져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6개월 동안 묵묵히 공부한 결과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하는 보석감정사 시험에 합격했다. 6개월간의 노력이 자격증 취득이라는 열매를 맺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내 꿈은 안경사

현재 난 서울보건대 안경광학과에 다니고 있다. 하고 싶었던 안경공부를 대학에 와서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학교생활이 무척 즐겁다. 태국에서 안경장사를 하며 주어들은 안경에 대한 상식들을 이론적으로 배우고, 실습도 하게 되니까 금새라도 안경사가 될 것만 같다. 하지만 세상에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있겠는가? 앞으로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좀더 열심히 해서 안경점을 차리고 싶다. 보석공부도 했으니 이 일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 난 역시 욕심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탐욕스럽지 않은 적당한 욕심은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에 와서 배운 기술로 눈이 침침한 사람들에게 세상을 밝고 깨끗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정착생활 3년 동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만 했는데, 작지만 나도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안경사로서 자신의 일에 충실한다면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나름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되지 않을까? 공부를 마치고 안경점을 차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난 열심히 공부한다.

2002.8 황 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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