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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철호 중대장 동지께(고향에 보내는 편지 1) - 김철민
동지회 14 5551 2004-11-19 20:12:15
중대장 동지 안녕하십니까. 저, 한때 중대장동지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8포 조준수 김철민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요. 중대장동지를 마지막으로 만나본 것이 1995년 10월이었으니까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갔네요. 저 지금 남조선에 와 있습니다. 서울 거리의 한 아파트 창가에서 쓰고 있는 이 편지가 중대장동지의 손에 닿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쓰는 것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키보다 큰 82미리 박격포의 포신을 메고 100리 행군에 나서던 날, 중대장동지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지요. "철민아,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 군사복무라는게 힘은 좀 들어도 보람있고 영예로운 것이 아니겠냐?" 요란한 수식사는 없었어도 그때의 그 이야기는 10년 3개월 간의 군사복무기간 동안 늘 나의 귓전에서 맴돌던 인생의 좌우명이 되어버렸습니다. 보람과 영예, 참으로 한 생을 통하여 얻고 싶던 저의 모든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만져지지도 않는 것, 그러면서도 나를 포함한 내 고향의 젊은이들이 청춘을 다 바쳐 얻으려 하던 명예의식이라고나 할까요...

중대장동지도 아시다시피 그 하나의 소원을 안고 청춘을 고스란히 전호에 바친 저는 훗날 당원이 됐고 중대 사로청위원장이 되었으며 아홉 개나 되는 훈장과 메달을 가슴에 달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던 지요. 제대되어 앞가슴에 주런한 약장을 달고 고향으로 가던 길을 지금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영예를 혼자서 누리는 듯 싶었습니다. 적어도 풀죽으로 끼니를 에워야만 했던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인제는 흔한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저는 94년 4월에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옆집 살던 소꿉 친구였을 때의 감정을 느껴 보셨습니까?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악몽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 버렸습니다. 제가 생활하던 황해북도 땅은 곡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역전에 나가면 밥 빌어먹는 애들이 부지기수고 집 떠나 사는 아이, 버려진 아이, 거기다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노인네들까지...말 그대로 거리면 거리, 역전이면 역전이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95년 봄, 사리원 역전에서 죽어 가는 열일곱살짜리 처녀애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저를 보고 하는 소리가 자기를 좀 업어서 사람들이 안 보는 곳에 눕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죽으면 몸 안에 있던 이들이 밖으로 모두 나온다는데 창피해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겨우 겨우 입술을 놀리던 처녀애였습니다. 굶어서 다 죽게된 판에 창피는 무슨 놈의 창피냐고 한 마디 하면서도 처녀애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던 자신이 미치도록 저주스럽던 순간이었습니다. 역사가 거꾸로 도는 듯 싶고 인류문명이 후퇴하는 것 같던 그 순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중대장님이 나에게 가르쳤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 사회의 영예와 보람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몸뚱이에 기생하는 "이" 와 같아서 오히려 불필요! 그 자체가 아닌 가고 말입니다. 물론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사람들에게 추앙 받는 일을 한다는 것은 보람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회에서 말하는 명예란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인 김정일에게 충성하라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내가 굶주리고 내 형제가 굶어죽는데는 도저히 도움이 아니 되더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죽어 가는 고향사람들을 위해서 한술 밥이 된다면 훈장과 당증, 그 모두와 맞바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군복무 10년에 대학까지 졸업한 제가 배가 고파 서울에 왔다면 거짓으로 들릴지 몰라도 굶어죽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이곳으로 왔다면 어느 정도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저 정말 굶어죽고 얼어죽는 사람들을 더 이상 곁에서 지켜볼 수가 없어 이곳 남한 행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든 사람들, 그리운 고향을 떠난 회한이 큰 만큼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땀흘려 통일된 그날 고향 사람들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있도록 뼈저린 하루하루를 살아가렵니다. 다음 기회엔 이곳에서 살아가는 저의 생활을 자자구구 적어보내렵니다. 그럼 다시 만날 그날까지 부디 몸 건강히 계십시오.

옛 8포 조준수 김철민 올립니다

탈북자동지회 소식지 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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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포포반장 2010-04-27 23:50:52
    국방군출신 남한군대 둘포 반장이었죠..^^

    열심히 사세요 저도 그럴께요.. 많은 부분은 우리도 다 겪는 겁니다.

    흔히들 하시는 말씀 그 막막함이란거...

    그게 곧 자유거든요... ^^ 노예는 그런게 없죠..저도 절망 그만하고..

    다시 달릴께요... 저희들도 많이 절망했다가 일어나고 또 절망하고 또 일어나고 그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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