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농촌지원은 전투…중노동·배고픔·각종임무 3중고 - 박철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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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24시]농장원들은 평양 중앙대 학생 꺼려해 중학생 시절 농촌지원전투는 대학생 시절에 비하면 한참 쉬운 편이다. 대학기간 농촌지원전투는 생각만 해도 악몽이다. 대학생인 경우 봄철에는 40~60일, 가을철에는 30~40일간 농촌지원전투에 동원된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 김형직사범대학 등 중앙대학들은 봄철 30∼40일, 가을철 20∼30일간 농촌지원전투에 동원된다. 지방대학에 비해 평양 대학들이 농촌지원전투 동원기간이 짧다. 그 이유는 평양 대학들은 국가행사 훈련에 동원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농촌지원전투 기간이 확정되고 대학마다 배정지역이 발표되면 대학별로 '사회주의 경쟁요강'을 작성하고 군대 형식으로 대오를 편성한다. 즉 학생들을 연대부(대학)-대대부(학부)-중대부(학년)-소대(학급)로 나눈다. 그리고 각 단위별로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을 임명하고 정치부연대장, 후방부연대장, 정치부대대장, 정치부중대장, 초급단체비서, 세포비서등이 임명된다. 이외에 대학 총책임자(대학의 책임일꾼), 정치책임자(대학의 당일꾼), 청년비서(대학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일꾼)를 임명하고 대학 지휘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매 소대(학급)별로 지도 교원이 동참한다. 농촌지원 전투를 떠나기 전에 각 대학마다 궐기모임을 개최해 '사회주의 경쟁요강'을 발표한다. 사회주의 경쟁은 3단계, 혹은 4단계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사상 정치사업, 좋은 일 하기, 작업공수 벌기, 학습 등의 조항으로 되어 있다. 대학생들의 준비물도 중학생들과 똑같은데 더 첨가되는 것이 있다면 정성걸레, 빗자루, 장갑 등 정성도구(김일성, 김정일 우상화물을 청소하는 도구)들과 해당 농장에 건네줄 기증품 등이다. 해당 농장의 작업반에 나가 분조를 배정받고 식당을 정하고 나면 초급단체비서나 소대장, 정치부 중대장을 맡은 학생들은 해당지역 혁명사상연구실의 위치를 파악하고 가져온 정성도구를 기증한다. 또한 해당 농장에 6.25전쟁 전사자 가족, 피살자 가족 등을 파악해 준비해온 기증품을 전달한다. 사회주의 경쟁요강에서 첫 번째가 사상정치 사업이다. 여기서 많은 점수를 벌어보려고 정치책임자들이 아주 애쓴다. 조기작업에 야간작업까지 대학생이 농촌지원전투에서 하루 벌어야 할 정량 공수는 1.2공수다. 그런데 식당근무로 떨어진 학생과 지도교원, 대대장이나 정치대대장등의 몫까지 벌어야 한다. 이들 간부학생들은 노동은 하지 않고 회의를 핑계로 분조를 돌아다니기만 한다. 대학생들의 작업에는 ‘조기작업’과 ‘야간작업’이 있다. 즉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작업을 한다. 조기작업은 보통 모뜨기를 하고 야간작업은 그날 마치지 못한 일을 보충한다. 야간작업이 끝나는 시간은 저녘 10~11시 정도가 된다. 농촌지원전투에서 농사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순번이 되면 해당 지역의 혁명사상연구실 정성사업을 진행하여 한다. 또한 숙소의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뒷면에 종이를 새로 바르고 습기방지 주머니도 만들어 달아야 한다. 6월 1일이 되면 준비해가지고 나온 간식들의 일부를 모아 탁아소와 유치원에 보내는 일도 있다. 여기에 6.25전쟁 전사자, 피살자 가족을 도와 땔나무도 해줘야 하며, 필요한 경우 입던 옷이라도 안겨주어야 한다. 하루 일과 중 휴식시간에는 농장원들을 모아놓고 선전사업과 예술소품공연을 벌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항일유격대식 학습' 과제도 수행해야 한다. 대학생들은 성인으로 대우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후방사업을 하지 않는다. 처음 메고 나간 식량과 간식으로 40일 이상을 견뎌야 한다. 부식물이 부족하다보니 가끔 학생들이 가진 돈을 모아 돼지고기를 사서 먹기도 한다. 20명의 학생들이 돈을 모아 돼지고기 3~4kg을 사봐야 멀건 국물에 고기 몇 점 구경하기 힘들다. 없는 돈을 털어 돼지고기를 사와도 작업반장, 분조장, 지도교원, 대대장, 정치부대장 등을 데려다 대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공수를 벌기위한 사업을 치열하게 벌인다. 분조장네 아이들에게 간식을 모아서 가져다주기도 하고, 분조장에게 담배와 술을 바치면서 공수를 얻어내기도 한다. 단계별 사회주의 경쟁 총화에서 꼴등을 하게 되면 그 학급의 책임교원이나 정치, 행정 책임 학생들이 큰 제재를 받고 비판무대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대장이나 중대장을 맡은 학생들은 일은 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학생들이 쉬거나 노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다. 농촌은 대부분이 사람 손으로 농사를 짓는다. 어떤 논은 소로 써레질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논은 대학생들을 시켜 맨발로 흙을 밟아 써레질을 하도록 한다. 이 때 거머리의 성화가 만만치 않다. 거머리들이 다리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대는데 거머리를 떼버려도 피가 멈추지 않는다. 저녘에 숙소에 돌아와도 벼룩과 이의 성화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 농촌지원전투에서도 생활총화는 빠지지 않는다. 농촌지원전투에 나가면 10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를 해야하는데 식당집들마다 깃발을 꽂고 개인별 경쟁도표(정치, 학습, 공수)를 붙여야 하며 매일매일 속보도 갈아붙여야 한다. 농장원들은 중앙대학 학생들 싫어해 정말이지 대학시절 농촌지원전투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앞으로 00일 남았다”며 날짜를 세다가 결국 “앞으로 00끼 남았다”까지 세면서 철수 날짜를 기다린다. 철수 준비 역시 간단치 않다. 학부의 책임일꾼들과 학부교원들에게 나누어 줄 것들을 학생들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져간 돈을 모아서 작업반장이나 분조장에게 찔러주고 한창 자라고 있는 감자를 캐서 챙겨야 한다. 그래야 대학에 남아있던 교원들에게 몇 kg씩이라도 선물을 바칠 수 있다. 농촌의 농장들은 해마다 서로 다른 대학생들의 지원을 받지만 평양 중앙대학 학생들을 제일 꺼린다. 평양 중앙대학 학생들 중에는 높은 간부의 자식들이 많으니 함부로 학생들을 대우하거나 국가 사정에 대해 말실수를 했다가 큰 봉변을 당하는 농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오히려 지방대학생들이 일도 잘하고 함께 지내기에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농촌지원전투를 마칠 때가 오면 농장원들은 자기 집에 머물렀던 대학생들에게 입던 옷과 신발을 얻기 위해 무척 애쓴다. 어떤 집에서는 텃밭에서 한참 자라고 있는 마늘을 캐거나 완두콩을 모아서 대학생들이 쓰다 남긴 세숫비누나 빨래비누와 바꾸려고 노력한다. 필자는 대학시절 동안 해마다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의 여러 곳을 나가 보았지만 농촌의 실정은 어디 하나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게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강냉이 밥이라도 배불리 먹는 곳이 없었고, 변변한 옷 한 벌 없이 지내는 농민들이 부지기 수였다. 기와집 지붕은 마을에서 한 두 집뿐이고 대부분 초가집이다. 땔감도 부족해 볏짚, 강냉이 짚, 벼껍질, 잡초, 솔가지, 소똥을 이용하고 있었다. 농민들에게 곤란한 삶의 이유를 물어보면 애국미, 군량미를 비롯해서 국가에 바쳐야 할 것이 많고, 보리조차 맥주공장에 보낸다는 명목으로 빼앗기고 나면 농장원들이 먹을 것은 차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21세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현실이다. 2007년 6월 14일 박철용/평양 K대 출신 자료제공 :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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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저 생활속에서 벗어날수 잇으면 좋겟네요.
현실속에서..ㅋㅋㅋ사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