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뉴스

탈북자수기

상세
햇빛을 그리며 - 햇빛
Korea, Republic o 관리자 2 11284 2008-01-03 03:19:11
1999년 북한을 탈출해 여러 사람과 함께 우리는 중국에 들어섰다.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한 두만강 물살에 온몸을 가누며 그래도 죽지않겠다고 있는 힘을 다해서 드디어 중국에 왔던 것이다.

7명의 사람 중에 그중 내가 나이가 제일 어렸고 중국땅 도착해서부터는 각자 뿔뿔히 흩어졌다. 어디로 어떻게 팔아버리는지 조선에서 워낙 굶고 앙상한 몸을 이끌고 온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귀찮기만했고 눈앞에 보이는 건 오직 먹을 것 뿐이었다.

16살밖에 안된 나를 팔아먹으려던 사람들은 너무나 앙상하고 뼈밖에 없는 나를 보고서 혀를 찼고 그날부터 영양제며 맛있는 음식도 갖다주었다. 먹어도 먹어도 자꾸 먹고싶고 누가 빼앗을세라 뭐든지 눈치를 보면서 게 눈 감추듯 했다. 배가 부르면 잠을 자고 깨면 또 먹고...

몇 달이 지나 나의 몸과 건강상태는 몰라보게 달라져있었고 북한에서 올 때 나의 몸무게는 31키로밖에 안되였지만 그 후에 50키로를 흘쩍 뛰어넘었다. 얼굴색도 이제는 어엿한 여자로 보였다.

나의 갑작스런 변화에 사람들은 많이 놀라워했고 나를 보살펴주던 그 집 아줌마도 나에게 잘해주었다. 하지만 그 아줌마의 남편은 인신매매군으로써 이런 식으로 해서 어느 정도 몸이 제 상태로 유지되면 한족들에게 팔아버린다. 마치도 새끼돼지를 데려다 키워서 살 많이 찌게하고 팔아먹는 격이였다.

어느날 한 남자가 와서 나를 데리고 갔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 집에서 나는 첫 생리도 하게 되였고 임신도 하게 되었다.

그 동네에 북한여자들 몇 명 홀아비들과 살고 있었지만 그들을 만나는 일은 절대 금지시켰다. 혹시나 우리끼리 도망을 칠까봐 그랬던 것이다.

임신 8개월 되던 날 우리동네 북한여자들이 다 잡혀갔다는 소문이 나의 온몸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아기도 낳고 사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기를 억지로 떼여놓고 엄마들만 잡아갔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날부터 나는 집안에 있는 감자움에서 잠자리를 펴고 잤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래도 잡혀가는 것보다 나아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랑 집에서는 나를 다른 데로 팔아버리려고 음모를 꾸몄다. 중국돈 9000원으로 친지들과 동네사람들한테 빌려서 샀는데 잡혀가면 끝장이라는 눈치였다.

다른 잘사는 부잣집 가서 살면 돈도 많고 내 호적도 만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인간의 탈을 쓰고 뱃속에 있는 자기 핏줄도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단돈 9000원에 목이 메여 이런 짓을 할 수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까지 하는 망할 놈의 집안에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봤자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하여 나는 또다시 다른 집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신랑 얼굴 한번도 보지 못하고 갔다. 그 집에 가니 대머리에 말조차도 못하는 벙어리 아들한테 내가 시집을 왔던것이다. 흑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갔다.

그 집에서 나는 얼마 안되여 아이를 낳게 되었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신랑은 나에게 뭐라고 자꾸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바보멍청이가 또 뭐라고 하나 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와 살면서 단 한번도 내가 이 남자의 마누라라는 생각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하면 여기를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나의 온몸을 놓아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냥 히히 웃어주었지만 속마음은 아예 딴방향으로 가 있었던 것이다.

어느날 기회를 타서 어린딸을 데리고 나는 탈출을 시도했다. 눈 안보이는 시어머니 보고 잠깐 동네 놀러 갔다 온다 하고 드디여 나는 버스에 탔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안가겠다고 우는 바람에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면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그 다음날 잠자고 있는 아이를 남겨두고 혼자 떠날수 밖에 없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아이가 아무리 안가겠다고 해도 나만큼은 여기를 꼭 떠나고 싶었다. 깨여나면 제일 먼저 나를 찾으며 울 어린아이를 남겨두고 나는 가고 싶은 내맘을 잡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그 후 나는 시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식당일도 해보고 고생이란 고생 다 겪으면서 살다가 몇 년 지난 지금 한국에 오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 아이가 보고싶어 미칠지경이다. 눈만 감으면 내 앞에서 재롱부리는 것만 같고 그리고 넘넘 보고싶다. 그 집과 연락도 안된다. 그 동네 전화 한통 밖에 없는데 그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동네이름밖에 모른다.

아 미칠것같다. 지금쯤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까? 불쌍한 우리애기 너무도 어린나이에 부모 없이 살아갈 아이가 불쌍하다. 그 아이는 죽어서도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생각이 나로 하여금 오늘도 눈시울을 적신다.

2008년 1월 2일 햇빛
좋아하는 회원 : 2
이쁜녀 고담녹월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새터민팬 2008-01-05 21:19:39
    힘내세요~!! 앞으로 좋은 일 많이 있을겁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별꽃 2008-01-05 22:52:31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그사실을 저도 리해할만합니다 제가 고향에 두세번 같다 오면서 수만은 여성들의 그와 같은 일을 당하는 것을 본적이 있거든요 힘내세요 여자라면 자식을 생각 안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는 자식을 찾으셔야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의지 하시면서 진심으로 기도드리세요 저도 동생과 어머니와 헤어졌었어요 하지만 신심을 잃치 않고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노력하던중 지금은 한가정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도 댁을 위해 기도 열심히 드릴께요 힘내세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고향의 코스모스 2008-01-08 17:42:44
    안뇽하세요,아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전 이런글을읽을때마다 고향이더그립고 부모형제가 그립습니다 우리 그어떤일이잇어도 구불지 않는 참대처럼 삽시다 저도 흔들릴때가 많은데요 이제부터 님하고 약속할게요 그리고 그아이도 님을 아니 자기어머니를 이해할수잇을거에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valenty79 2008-01-08 21:26:11
    괜히 짱개가 아니군... 중국인은 한국인에게 계속 무시당해야해~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서련 2008-01-13 19:22:41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중국인이 다 그런게 아닙니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지 말아주십시요, 인신매매를 하는 사람들과 그일에 협조하고 눈감아주는사람들은 모두 욕받아야 마땅합니다. 다만, 이런식의 감정적인 말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건승 2009-09-27 05:12:39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하의 취급에 대한 분노를 그저 "감정적"이라고 이야기 하십니까? 저들이 개돼지만도 못한 대우를 받을 때.. 서련님이 말씀하시는 그 선량하고 거룩한 성품의 중국인(조선족)들은 다 어디에 계셨나요?? 어디 함부로 감정적 운운하십니까 말씀 삼가하세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영철 2009-01-07 15:13:21
    가련한인생아 나라이꼴인데 뭐다른나라사람욕할기분잇어
    미친놈이지쪽발이미국놈한테는고양이앞에쥐면서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건승 2009-09-27 05:03:24
    조선족이면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조용히 돈 모아 가세요. 적어도 탈북자 앞에서 조선족이나 중국 두둔하는 발언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정말좋아요 2008-01-12 16:24:14
    고생하셨어요.
    이젠 행복하게 사세요 ^^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한마음 2008-01-13 12:56:29
    이글은 한마음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8-01-13 13:02:15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한마음 2008-01-13 13:00:54
    이글은 한마음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8-01-13 13:01:29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한마음 2008-01-13 13:05:46
    아무쪼록 이젠 행복하게 살고요 중국에 있는 자식도 꼭 찾아보기 바랍니다.아픈사연 고국에서 통탄하는 심정 이해하겠지만요 이곳 중국에서 보면 인신매매도 있겠지만 탈북자들의 야속한 사연도 없지는 않네요 동정이 죄가 되여 집을 털리고 속히는 일도 없지는 않답니다. 이곳에도 탈북자와 결혼하여 아이와 함꼐 살아가는 총각도 있답니다 미우면 그 사람이 미웠지 아이까지야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답변 2008-01-20 04:48:57
    햇빛님이 글을 읽으니 저를 보는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저도 97년에 탈북해서 그렇게 뻐저리게 가슴아픈 상처를 입고 지금은 한남자의 안해로 사랑을 받고 1남2녀를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지 마시고 용기를 내어 아이를 찿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아이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데리고 왔어요. 국적취득을 하고 지금은 초중3학년이고 태권도학원도 다니고 속썩이지 않고 잘자라고 있어요. 햇빛님도 용기를 가지시고 행복을 찿아서 열심히 노력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할께요.오늘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햇빛님 파이팅.....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대국 아저씨 2008-01-20 19:38:02
    아이가 보고싶다고 했죠?그동네 이름을 알면 114에다가 문의해보세요..전화번호를 방금 알수 잇을거예요.혹시 도와줄 일이 필요하시면 fenghuikim@hotmail.com에 연계하세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건승 2008-11-18 22:43:10
    위에 대국아저씨님... '대국'이라 함은 어디를 말하는지요..? 궁금하네요 혹시 대국이 아니라 태국 아닌가요. 만에 하나 중국을 두고 대국이라 하셨다면 북한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남한사회에서는 크게 조롱당합니다. 지금은 중세시대가 아닙니다. 21세기지요 한국인의 정신문화수준은 이제 개방경제를 시작한 중국 따위는 넘어선지 이미 오래며 세계 일류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답니다. 물론 땅덩이가 크니 대국이라할 수 있겠지만 19세기 사관으로 한국과 중국을 비교하시면 큰 착오십니다. 국민 개개인의 교육수준과 문화수준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중국은 이제 야만의 시대에서 겨우 깨어난 미개국이나 다름 없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해야할 필요는 없겠지요. 수기 올리신 분께서 경험한 중국 그리고 중국인들의 사고방식만 해도 거기가 어디 사람 살 곳인가요? 대국이라니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음을..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쭌쓰쭌쓰 2008-01-28 13:58:36
    .....
    사람이 모진게 아니라 세상이 모진거겠죠..

    ..
    아이가 걱정입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한옥정 2008-01-31 14:39:04
    달래음악단 한옥정씨네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한 성 부 2008-02-09 04:18:32
    이잰 살었으니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배우고 노력 해서 성고 ㅇ하세요
    먼저 배워 야 하고 그 배운 것이 힘이되여 살어가는 대 힘이 될것입니다,
    지나간것 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는 누구보다 더성공 해야 됩니다,
    그전 생각하여서 남은 잘때 일어나서 공부 하고 노력해서 꼭 성공 하세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kjs318 2008-02-11 17:27:17
    어떤 방법으로 한국에 오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kjs-318@sohu.com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빙천수 2008-02-17 09:03:26
    중국의 일부 낙후한 농촌들에선 같은 중국인 여자도 여자집에 돈을 내야 데려올수 있습니다.
    중국돈 5만원 ~ 7만원... 아주 보통현상입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경기도 ip1 2012-03-13 19:48:04
    지금이라도 중국의 그곳에 방문하여 아이를 데려오는게 어떨까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댓글입력
    
이전글
용서 - 예은
다음글
화약 놀이로 경비대까지 혼비백산 만든 내 친구들 - 김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