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남긴 가슴아픈 역사 보여주고 싶어(하) - 한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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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제비들 사이 여자 보호해주는 규칙 있어 그해 겨울 아빠와 엄마, 남동생이 차례로 죽었다. 관(棺) 조차 없이 소달구지에 실려 가는 아빠와 엄마, 남동생을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기력이 없어서 울지도 못했다. 바로 옆집에 살던 가족은 젖먹이 어린 아기까지 온 집식구들이 다 죽었다. 1995년 김정일의 생일이 며칠 지난 어느 날 아침, 리 당비서 아저씨가 옥수수 가루와 옥수수 10kg 정도 가지고 우리 집에 나타났다. 쓰러져 있는 우리 입에 따뜻한 미숫가루 물을 떠 넣어주며 우리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하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곳도 없는 이곳에 이대로 있다가는 너희들마저 다 죽는다. 그러니 동생을 데리고 풀이 날 때까지 만이라도 시내(혜산시)에 나가 보거라.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빌어먹기라도 할 수 있겠지….” 예순이 넘은 리 당비서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담뱃대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품속에서 비닐에 꽁꽁 싼 무엇인가를 내놓았다. 아편이었다. “혹시 너희들이 앓아도…. 그래, 지금은 약이 없으니 이것을 잘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쓰 거라.” 나는 지금도 리 당비서 아저씨가 약 대신에 아편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다. 당시에는 아편 거래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때여서 아편이 곧 돈이었다. 꽃제비 생활, 그리고 탈출 그렇게 우리는 마을을 떠나 혜산시까지 갔다. 나는 오빠와 함께 꽃제비들 무리에 들어가 혜산시 춘동에 위치한 통신기계공장이라는 버려진 건물에서 살았다. 1995년 4월, 오빠가 열이 몹시 나면서 앓다가 숨졌다. 나는 울지도 않았다. 슬프다는 생각보다 나의 보호자가 없어졌다는 공포감만 들었을 뿐이다. 남자 꽃제비 아이들이 오빠를 묻어주었는데 나는 무서워서 따라가지도 못했다. 여기에서 잠깐 꽃제비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는 오빠까지 모두 8명이었는데 그 중 여자는 나와 13살짜리 신경림이라는 애가 있었다. 비록 세수도 못하고, 다 해지고, 이가 득실거리는 옷을 입고 있어도 꽃제비들에게는 그들만의 엄격한 규율과 질서가 있다. 꽃제비들도 그 무리의 대장이 있고 자기들이 빌어먹는 구역이 있다. 또한 훔치거나 구걸하여 얻은 음식물을 절대로 혼자서 먹지 않고 함께 나누어 먹는다. 꽃제비들은 겨울에 잠을 잘 때도 제일 어린 아이들과 약한 자들, 그리고 여자들을 가운데 앉히고 좀 건강한 사람들이 바람을 막으며 주변에서 잔다. 많은 사람들이 꽃제비 무리 속에 있는 여자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여자 아이는 특별히 배려하고 보호하는 규칙이 있다. 이런 규칙을 무시한다면 무리에서 쫓겨나며 심한 경우에는 죽음까지 각오해야 한다. 1995년 가을, 양강도의 추운 겨울 때문에 함께 있던 여자애인 경림이와 다른 두 명은 함흥 쪽으로 떠났다. 나와 다른 세 명의 남자애들은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겨울이 오고 강이 얼어붙으면 중국으로 가자고 약속해 놓고 있었다. 1995년 12월, 설날을 며칠 앞두고 우리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 창바이(長白)현으로 탈출했다. 우리는 창바이에서 모두 헤어졌다. 봄이 되면 다시 압록강을 건너가 통신기계공장 건물에서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꽃제비들 중에서도 기적처럼 운수 좋은 꽃제비였다. 일행과 헤어진 뒤 내가 무작정 뛰어든 집은 50대 부부가 사는 집이었는데 자식들은 모두 돈을 벌려고 큰 도시로 떠나고 없었다. 그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목욕도 하고 며칠간 살았다. 마음이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공안의 검색 때문에 늘 불안해했고, 그것 때문에 나도 미안했다. 하루는 그들이 어느 곳인가에 전화를 하더니 나에게 좋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먼 친척집인데 그곳에 가면 마음 놓고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몹시 불안했으나 어쩔 수 없는 몸이었다. 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옌지(延吉)에 도착했고, 다시 기차를 타고 온 곳이 지금 살고 있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哈爾濱)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나를 얼마의 돈을 받고 팔아넘긴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진정으로 도와주었던 사람들이다. 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친척들에게 나를 맡겼기 때문이다. 내가 간 집은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시아버님, 시어머님들이 모두 아주 좋은 분들이다. 무엇보다 조선족이니 말이 잘 통했고 어머님이 나를 무척 귀여워했다. 밖에 나갈 때면 늘 나를 데리고 다녀야 마음을 놓인다고 하셨다. 나는 그곳에서 중국어 공부도 했고 1998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남편은 무척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어서 지금도 남편에게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한 해에 한 번씩은 압록강이나 두만강 쪽으로 여행을 한다. 그런 나의 심정을 남편도 잘 알고 이해해 준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녀시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이 엄마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압록강변에 서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와 동생이 그리워 목 놓아 운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 오빠가 묻힌 곳을 모른다. 나중에 통일이 되어도 나의 오빠가 묻힌 곳만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역사가 남긴 피눈물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통일이 되는 그 날에는 꼭 남편과 함께 고향에 갈 것이다. 나의 남편과 내 자식들에게 김정일 정권이 남긴 가슴 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가정을 지켜주려고 그렇게 애쓰시던 리 당비서 아저씨를 꼭 찾아 아버지로 모시고 싶다. 두고두고 은혜를 갚고 싶다. 2008년 4월 15일 한순희(양강도 보천군 청림리 1995년 탈북) 자료제공 :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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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뒤에는 반드시 기쁨이 찾아온답니다.
김일성,김정일우상화의 열광속에서 죄없는 북한 백성들만 소리없이
죽어야만 하는 세상이 야속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북한에서 태어난
죄이기에 더 슬픕니다.
슬퍼도 슬퍼를 말자, 기뻐도 기뻐를 말자, 통일의 그날 마음껏 울며
기뻐합시다...
항상 하순회씨의 글을 보며,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정일이 ....정일이
이 한을 어떻게 풀수 있을가요 ?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잊지 못합니다
순희 씨 힘내시고요 더많은 글을 써 주세요....정일이가 무서워 떨수 있도록 ^^^^^^^^ 하이팅 !!!
우리모두가싫어하는 김정일정권이 언젠가는 꼭망할것입니다..아니 꼭망해야하고 우리온민족앞에서 역사적심판을 받는날이 와야할것입니다 그날까지 건강하시고 열심히 사십시요...홧팅
그래도 이렇게 사는 님모습보니까~~ 장하고 기쁘고 올수만 잇다면 한국에 오셔서 진정한 대한민국국적까지 취득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제껏 고생햇던것만큼 남편분하고 재밋는 가정을 꾸려나갓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도 어릴적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생을 조금은 한지라 이북에서 오신분들의 사연을 들을때마다 남의일이 아니고 꼭 내일 처럼 느껴질때가 많습니다.
아무쪼록 힘내시고 마음에 평안이 있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김정일위원장이 체제유지보단 백성들에게 개인의 자유를 주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도 중국을 떠난지 8개월이 조금더 됩니다
중국에 있을때는 인터넷이 뭐인지도 몰랐는데 한국에와서 인터넷에가입하니 참 좋네요
북한탈북자들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게되여서 너무 좋아요
북한도 빨리 정보화시대가 되여서 고향에 부모님들과 메일 보내고 싶네요
이것이 한순희씨의 일이자 바로 우리들의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무 어려움없이 대한민국에 정착하게 된것이 나만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어려운 우리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눈물만 흐릅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였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한순희씨 힘을 내고 지금 살고있는 고마운분들과 또 고향을 생각하며 통일된 그날을 기다립시다
소백수 푸른물을 드럽게도 어지럽혀놓았네
도깨비가 까난지 어느덧65돌인가
살인폭정 일삼으니 모두가 침 밷네
만민이 절규하는 목소리 한결같아
우렁찬 격노의 함성 천지를 진동하네
통일을 위한 노력은 계속 되어야 겠지요
어떤 북측 아바이(59세)가 그러더군요
뭐라도 주려고 집을 한참을 뒤졌지만 줄만한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사람 사는거야 다 같지 않겠습니까..
어서 좋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림니다 모두들....
한국에 갈려면 언제든지 절 차어오세요 ...
양심껏 한국에까지 모셔다 드리겟슴니다
한국으로 오셈염 환영 (나만 그런가 ㄷㄷ)
나머지분들도 다 어디서든 잘살았으면 좋겠네요
님도 앞으로 더행복하시고 지난날보다 앞날을 바라보면서 더힘차게 살아가시기길 바랍니다
세게상에 이런나라는 더있을가요 한국에서 밥 3세끼 먹는것조차 체할만큼 배불리먹으면 너무나 죄인같아서 눈물이 흐를때까 더많죠
이를 악물고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할것입니다
김정일독재하에서피눈물의바다였던원한의90년대를우리어찌세월이흐른들잊을수있을가요?
90년대에탈북하신분들 다 가슴에슬픔과고톨의피눈물을안고압록강,두만강을건느지않으셨습니까?
저도그속에서저의부모님과오빠를묻어놓고탈북한사람중의한사람입니다.
우리가부모님산소에술한잔부어드릴날이과연그언제일까요?
그리운내고향,보고싶은나의소꿉시절친우들아.
내가다니던학동고등중학교,사회에진출하여첫걸음마떼던정다운직장,
가고싶어요,보고싶어요내가나서자란나의정다운고향으로.
탈북자여러분, 우리통일의그날까지힘차게화이팅!
더욱 슬펐던 것은 고향인 혜산에서 꽃제비생활을 했다는 필자의 눈물겨운 이야기와 장백에 가서 엉엉 울었다는 대목에서였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왔지만 장백을 보며 두고온 고향집과 부모형제가 그리워 눈물짓던 심정은 누구나 같을거라 생각됩니다.
굶어보진 못했어도 정든 집을 떠나 다 같이 받아안았던 그 설음을 씹어삼키며 헤쳐넘어온 시련의 나날들을 영원히 잊을수가 없을겁니다.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다니 그나마 다행스럽고 안전을 담보할수 없는 상황에 있는 필자가 많이 걱정되네요
아무쪼록 건강한 몸으로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한순희님의 글을 읽으니 착하고 참 똑똑한 분이란 느낌이 듭니다.
리당비서도 그렇고 시아버지,시어머니,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그렇고...
원망보다 현실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뛰여나군요
님은 어디에서 살던 성공할겁니다.
부디 오래토록 행복하세요
힘내세요 저도 같은 중국에 있습니다만 여자로서 정말로 살아가기 힘들잖아요
그래도 님은 좋은 집에 시집가셨군요
하여튼 우리 탈북여성들이 삻에 해뜰날가지 모두 앓지말고 건강해요
이제는 너무울어서 나올 눈물도 없답니다 한두사람도 아니고 거의
대부분 그런 가슴아픈 상처가있을것입니다 힘내세요 언젠가는 동이틀겁니다 그럼 행복하고 잘사세요....
가면 꽃제비들을 볼 수 있을까요?......정일이가 다 치웠을려나;...
저런 골빈소리하는걸보니 학교에서 선생들은 모하냐
인성교육안시키고 농담도 가려서 하는거지
지금 여기가 농담 할만한 곳으로 보이냐?
눈치없는거보니까 군대랑 사회나가서 엄청 고생하겠네
넌 인생이 힘들어 보인다
무슨 의도로 쓰셨는지?
너무감동이네요!!
그래요..거기도좋은사람들넘~많아요!
저두회령에서잡혔을때.....한.안전원아바이한테도움받았거든요~~
얘기하려니~~눈물이나네요
우리들이..탈북하려던..죄인임에두~~~우리들을바라보시며..한참동안~~한숨만쉬시더니...슬구머니밖으로나가셔서..길에서사탕파는장사군한테서...사탕두봉지를.빌어오셨더라구요
그러시곤,,,우리들보구하시는..말씀이..머리에..털나서..처음으로비락질해보셨다시더군요~~~생전..처음인분인데두~~~친아버지같은생각이들었어요
사탕.두봉지!!~~~한입에넣어두..배안부르거든요!!
독수리..병아리낚아채듯~~한입에먹어치우는..우릴,보시더니...다시나가시는거예요
한참있다,,들어오시는..그분의군복앞섶에는~~~옥수국수떡이숨겨져있었어요
그걸..우리에게주시며..그분이하시던..말씀!!~~기억에..생생하네요
어떻게하나,,아이들데리구~~꼭..살아라!!
이름도모르고..얼굴도인제는..잘생각이나지않는...참..고마운분이였는데~~~~제가...꼬옥..그분을..찾아뵙는..날이~~왔으면...좋겠내요!!
한순희씨!!
님도..중국에있구~~~~저는중국에있는이유는~~뭘가여~~~
두고온~~부모형제~~~조국산천이..그리워서가아닐까요
우리꼭...잘.살아서고마운.분들~~찾아가요!
그날까지..안녕하기를...마음속으로...빌어봐요!!
애기잘키우세요!
우리애기두...5살이애요
님은~~아마두이글을~~곡...보시리라...믿으면서~~~....!!!!!!
고마운정 가슴에 깊이 새기고
통일될 그 날을 기다리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사시길 바랍니다.
마치 농장처럼 농장에서 동물이 못도망가게끔 울타리를 치지요
동물들이 도망가면 자신이 손해를 입니까요
그리고 울타리를 넘어 도망치는 동물에게는 벌을 줍니다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농장주지요
써놓고 보니 탈복자님들은 기분나쁠수도있겠군요
하지만 김정일이 그만큼 정신병자라는데 동의합니다
저런 악질적인 인간은 응징을 받아야하는데
아쉽게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제명대로 살다가 죽을까봐
걱정이군요
앞으로도 열심히 사세요~ ^^ 옆에서 응원할께요~ ^^ - 평범한 중3 ... -
부모와 형제들을 잃은 그아픔.... 언젠가는 찾을 가망성이 높은 우리보다는 이젠 만나는 기약마저 없는 아니 그런 기회조차도 없는 한순희님!~
가슴이 터질듯하고 갈기갈기 찢어지는것만 같지만 그래도 굿굿이 이겨서 오늘날이 있어 이런 수기도 올리는 님의 모습이 더 성숙합니다.
처녀시절도 없이 인생 바쁘게, 힘들게 살아왔지만 이젠 그렇게만 생각마시고 내가 살았구나... 이세상에 내가 있구나..내가 살아있구나..이렇게 생각하시면 마음이 조금 편하실겁니다.
한이 맺혀 이세상 모든것이 용납이 안되여도 그래도 빛은 있기 마련인듯하네요...
힘들었던만큼 행복하게 잘사시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북한에있는 주민들은 독재에 한번쯤 항거를 했으면 좋겠다!
다행이 잘 살고 잇다니 멀리서 잘 살기만을 바라고 여기 한국으로 오세요...
연락처를 주세요
이 넓은 중국땅에서 어떻게 차겠습니까?
오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답을주십시오
모두가 우리부모님 형제들 목까지 두배 아니 열배이상 열심히 살아서 저악마를 지옥에 가느날까지 끝까지 보란듯이 살아야 해요
- 혜산이쁜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10-25 12:17:15
정말 동정하고 지금 잘살고 있다니 너무 반갑습니다,부디 행북하십시오 진심으로 빕니다,나는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정말 행북합니다,북쪽은 너무 끔찍합니다,
- 호길동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04-16 17:17:17
정말 행운이군요 배불리먹고 잘자고 잘입고 사람욕심이란게
참우스운것 같아집니다 더이상 무슨 행복을 바라겠다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꼭 행복한일만 생기실거예요
- 하랑인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7-24 09: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