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린 조국 - 전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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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탈북 동기는 배고픔도 아니였고 못 살아서도 아닙니다. 2만여 명 탈북자들이 각각의 가슴아픈 사연들이 있지만 저에게도 억울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내가 아닌 조국이 나를 버린 것입니다. 식량사정이 어려운 북한실정에서 더 잘 먹고 더 잘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어느 날 군 보위부장이 보위부로 오라는 호출을 받고 찾아갔습니다. 보위부장방에 들어서니 처음에 하는 말이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배려와 사랑을 듬뿍 받고 대학에 가서도 김일성장학금으로 공부했고 오늘까지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신임과 배려를 많이 받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세뇌교육으로 머리에는 온통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만 가득 차오르던 때라 안 그렇다고 하면 안 되고 해서 무작정 그렇다고 답변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종이를 한 장 내 놓으며 읽어보고 수표(싸인)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이에 적힌 글들은 역시 보위부장이 한 말과 똑 같은 내용이었고 마감에 이 종이에 적은 글들과 보위부에서 들은 말들과 앞으로 지시하는 내용에 대한 것들을 비밀로 하여야 하니 구체적으로 읽어보고 잘 알고 사인을 하라는 내용들이 더 포함 되었습니다. 더 무서운 글은 만약에 여기에 적힌 종목들에 대한 비밀이 새 나가면 정치범수용소로 가야한다는 내용 이였습니다. 가족 남편, 친척 친구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읽어보고 그대로 하겠다고 사인하고 밖으로 나오니 도살장에 들어갔다 나온 소보다 몸이 더 오싹 해지고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나 종이에 적힌 규정들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시키는 대로 무조건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충섬심이 불타올랐습니다. 며칠 뒤 담당보위부 지도원 정 아무개가 불러서 갔더니 이제부터 자기 지시를 잘 따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중강에는 중국 임강현 맞은 켠 도시로서 탈북자들이 북송 되여 안전부나 보위부로 많이 잡혀서 나오곤 하였습니다. 처음 내린 지시는 탈북자 할머니 한 분을 감시하는 일이였습니다. 할머니는 1996년 고난의행군 때 살기가 너무 힘들어져서 탈북했다가 아들딸을 중국에 두고 혼자서 북송된 것입니다. 67세 나이로 이빨이 하나도 없었고 남편은 자강도 어느 리 병원 진료소장을 하다가 간첩으로 처형당하고 혼자가 된 노인이였습니다. 그러니 혼자 몸으로 아들딸 같이 살다가 너무 생활이 어려워 중국 친척집에 갔다가 옆의 조선족들의 고발로 북송 당한 것입니다. 보위부에서는 이 할머니를 집으로 안 보내고 그냥 중강에서 제 옆에서 일부러 일시키고 심부름 시키면서 속내를 뽑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보위원이 “중국이 여기보다 더 잘 사는가? 나도 중국에 갈 수 있는가? 아들딸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이런 생활적인 질문에서부터 마감에는 “중국 가서 남조선방송을 들어보았는가? 방송 내용들은 재미있던가? 한국사람 만나 본 적 있는가? 성경책을 구경해 보았고 교회로 간 적이 있는가? 남조선이 우리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은가?” 등을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정말로 수령과 당의 배려에 충성으로 보답한다고 열심히 잘 하였습니다. 꼭꼭 보고하고 알아내고……. 그러다가 차츰 차츰 나의 행동을 돌이켜보니 보위부에서 시키는 대로 물어보고 들은 소리를 고발하다보니 내가 너무 하는 것 같았고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수하고 고지식한 한 여인에게 정치적 감투를 뒤집어 씌우려고 보위부 밀정 짓 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 보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혼자서 쓴 웃음이 나오고 아직도 그 짓거리들을 하는 북한 보위부가 생존한다고 생각하니 증오스럽고 죽도록 미워납니다. 하루는 할머니가 아프다기에 왜 아프냐고 물으니 아들과 딸이 보고프다 못해 가슴이 아파나더니 온 몸이 쑤셔나고 먹지도 못 하겠고 맥이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 날 보위원이 시킨 말은 중국에서 한국방송 “북조선 노동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내용을 들었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미음을 쑤어가지고 가서 입에 더 넣어 드리고 나서 약간은 기운이 난다기에 시키는 대로 물어 보았는데 대답을 통 안 하십니다. 더 물어도 못보고 그냥 돌아왔더니 고등농업학교 실습 사과나무 밭으로 오라고 하여 갔더니 정 아무개 보위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발길질 하고 왼쪽 뺨을 한 대 후려갈기더니 왜 시키는 대로 그 노친네 속 내막을 못 빼오냐고 합니다. 제가 그 할머니가 너무 아파해서 두 번 다시 못 물어 보았다고 하자 또 발길질 몇 번 하더니 누구에게도 자기가 때렸다는 말도 하지 말고 이번일이 새나갈 경우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위협을 합니다. 그렇게 남편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몰래 혼자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 못한 나를 책망하면서 속으로 운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하루는 그 할머니한테 위험이 닥쳐왔습니다. 보위부에서 하는 말이 이제는 그만한 증거면 얼마든지 처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의 처리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거나 민족반역자로서 처형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저의 마음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도 많이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5월 어느 날 보위부에서 중국 어디에 아들과 딸이 있는지 알아내라고 마지막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할머니를 처리하려면 아들과 딸도 중국공안과 협조해서 북한으로 데려와야 하기 때문이였다고 생각됩니다. 순간 저의 머릿속에는 내가 너무 어리석었고 이제라도 할머니를 탈출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중국에 밥 빌어먹으러 갔다가 재수가 없게 붙잡혀 북송 되였다는 것 밖에 없는데 보위부라는 어마어마한 권력 안에서 민족반역자라는 감투를 뒤집어쓰고 한 인간이 매장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그 할머니를 나한테로 부터 탈출시키고 중강땅을 벗어나 북한을 탈출해서 자식들이 있는 중국으로 가게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보위부에서는 그 할머니를 다그치며 내가 한 말들을 다시 확인해 보았는데 절반은 전달도 안 하고 절반은 거짓말 보고하고 보고내용과 들은 내용이 맞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아줌마에 임무를 주어 나를 감시하도록 하였습니다. 어쩐지 불안하고 말하고 싶지 않고 그냥 서먹서먹 시간을 보내던 중에 3일 뒤 그 할머니가 안 보이기에 물었더니 어제 밤에 도망을 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나 때문에 도망을 했고 내가 보위부 지시대로 안 움직이었기에 눈치 채고 달아난 것입니다. 며칠 동안 숙박검열과 인근 동네까지 뒤져도 못 찾았습니다. 나에게 붙인 감시는 내가 아침 사회활동을 시작 할 때부터입니다. 나도 위험을 피하려면 도망을 쳐야하는데 새벽시간이 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 수 없이 남편보고 자종지총 다 말하였는데 남편에게도 감시가 붙은 것입니다. 남편의 제일 친한 친구를 감시로 붙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이라는 지옥나라는 부부지간에도 말 못하는 비밀과 서로 감시하고 감시를 당하고 서로가 의심하고 살아야 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또 있습니까? 과연 사람이 살 곳입니까? 우리 부부가 감시에서 벗어나려면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당에 죽도록 충실해야 하고 당의 신임을 다시 회복하려면 죽기 살기로 아첨하고 뇌물작전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대학친구로부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나 때문에 아마 정치범 수용소로 가야할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내가 조국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조국이 나를 배신하고 버린다는 생각에 더는 충성 할 필요도 더는 이 나라에서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고파 탈북 했다가 북송된 힘없는 한 이름 없는 할머니한테 진 빚만 해도 죽을 때까지 못 갚을 정도인데 이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한 정치범수용소로 내가 왜 가야하는가? 내가 도대체 그만한 죄를 지었는가고 반성해 볼 때 죄란 이름 앞에 죄 지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렁이도 밝으면 꿈틀 댄다고 여태껏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다 했을 뿐이고 아픈 할머니를 보위부 감시망에서 도망치게 한 죄 아닌 죄밖에 없는데 내가 왜 정치범수용소로 가야하는지를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냥 괘씸하고 그냥 열 받고 그냥 그 땅에서 못 살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남편과 약속하고 먼저 약초 캐러간다고 하고는 새벽 4시에 산속에 들어가 숨고 오전 9시에 남편이 약초를 캐서 양강도 혜산에 가서 팔고 오면 보름이 걸릴 것이라 엄마한테 거짓말하고는 식량과 엄마가 구워준 두부반찬을 배낭에 넣어가지고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탈북이였습니다. 이 때는 그냥 목숨을 건지기 위한 단순한 고향 탈북이였습니다. 낮에 숲속에 숨어 있다가 어슬녘에 오수덕에 가면서 보위부한테 잡힐까봐 남편과의 거리는 항상 100m 사이에 두고 길옆으로만 걸었고 혹시 아는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볼까봐 땅만 보고 머리 숙여 걸었고 낮에 걸을 때에는 남들이 한 번도 걷지 않은 생소한 자갈밭과 숲속으로만 걸었습니다. 돈 있어도 눈앞에 기차를 보고도 탈 궁리를 못하고 그냥 밖에서 자고 먹으며 혜산까지 일주일 넘게 도보로 걷기만 하였습니다. 중강에서 혜산까지 걷다보면 국경경비초소가 3개가 있습니다. 처음 초소는 다리위에 있어서 아래모퉁이 강을 넘어서 길 위에 올라서 걸어서 통과 되였고 둘째 초소는 양강도 신파 쪽인데 맞은편이 압록강이라 산 귀퉁이에서 불숙 튕겨 나오는 국경 경비군인과 마주하였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러워 집으로 간다고 하니 집이 어데인가 묻기에 함흥인데 엄마가 갑자기 사망해서 증명서를 못하고 가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그 군인이 하는 말이 “우리 집이 성천구역 통남동인데 편지를 전해 줄 수 없냐?”고 하기에 나는 너무 반가운 김에 전해주겠다고 하자 몇 자 적은 종이를 접어서 주는 것을 가지고 벗어나니 온 몸에 식은땀이 쭉 났습니다. 그냥 숲속에 농사하는 막에 가서 배낭안 쌀로 밥을 지어달라고 해서 먹고 그냥 걷고 또 걷고 마감초소는 양강도 혜산시 광문초소였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앞에는 군대들이 짐을 뒤지고 호루라기 불어대고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땔 것이 없어서 나무뿌리를 파 가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구루마(손수레) 뒤에 붙어 섰습니다. 좀 밀어주겠다고 말하고 양 옆 모서리를 잡고 머리를 앞으로 수그리고 초소 앞을 지났습니다. 초소를 벗어나서 몇 걸음 걸었을까 갑자기 뒤에서 “서라!” 하는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저와 남편한테 전지불이 비쳤습니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억제하고 그냥 모른 체하고 구부리고 밀었더니 아마 해진 배낭을 등에다 걸치고 힘들게 미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한참 후엔 잠잠하였습니다. 이렇게 국경초소 3개 초소를 다 거치고 혜산 시내에 들어서니 안도의 숨이 나갔습니다. 이제부터는 고향탈출이 아니라 북한 탈출, “조국배신자, 민족반역자”에 해당하는 큰 죄를 짓는 탈출이 시작된 셈입니다. 혜산에 도착해서 혜산역 앞 콩밭에 숨어 있다가 날이 밝아서 위연으로 걸어서 압록강 바라보이는 작은 떨기나무 밑에서 꼬박 2일간 물 한 모금 못 먹고 숨어 있다가 남편의 손을 잡고 압록강을 넘어서 또 다시 탈북의 긴 노정이 시작 되였습니다. 압록강에서 그냥 걸어서 만강을 지나고 쑹장허, 이도백하. 안도를 거쳐 연길에 도착했고, 연길 과학기술대학에서 일하다가 또 자유를 향한 탈출이 시작 되였습니다. 중국에서 숨어살던 어느 날 문득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중국내 탈북자들은 중국을 벗어나 외국공관에 뛰어들면 한국에 올 수 있다.”는 신동철 목사님의 말을 듣고 3년간 우리를 보호해주고 잘 대해주던 연변과학기술대학을 떠나 천진, 상해, 곤명에 이르기까지의 어려운 노정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중국에서의 샤스병과 이라크의 전쟁으로 단속이 엄청 심하였기에 더욱 힘든 길이였고 어려운 길이였습니다. 곤명에서 손바닥만한 지도를 가지고 국경을 넘어 라오스 멍시에 도착하였지만 지갑을 그만 분실하였습니다. 돈 한 푼도 없어서 메콩강 물을 음료수로 마시고 갈대를 밥으로 삼아 씹어 삼키며 칡 줄기를 반찬으로 씹으며 라오스 국경까지 걸어오던 그 힘든 과정을 생각하면 한국 정착에서의 어려움도 두려움도 하나도 없습니다. 중국국경을 넘어서 라오스 군대에게 2번이나 잡혀 죽을둥살둥 도망쳐 신발마저 다 떨어졌었고 맨발에 칡줄기를 감고 메콩강 옆을 걸을 때면 열 발자국도 못 가 40도의 열대 고열에 칡줄기가 툭툭 끊어지고……. 메콩강 옆 길 아닌 길을 걸을 때면 목이 너무 말라 물소가 미역 감은 물을 마시고 나면 입안에서 모래가 버적버적 씹히고, 캄캄한 밤에 다리 밑 물이 달빛에 번들거리면 다리 밑에 기여 내려가서 물을 마시고, 그러고나면 입안에 무슨 찐득찐득한 물이끼가 씹혀서 아침에 보면 썩은 물 웅덩이였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나무 잎에 입을 대고 한 방울 한 방울 받아먹고, 논두렁길 옆을 지날 때 논에 고인 물을 마시면 화학비료 냄새가 물씬물씬 나고……. 라오스 사람들에게서 거지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걷던 그 힘든 길은 내 인생에서 가징 최악의 길이었고 아마 죽어서도 잊지 못할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17일간의 긴 노정을 걸어서 태국 국경도시인 라오스 후이산에 도착하니 도움 받을 곳도 주는 사람도 없어서 고기 잡는 배를 노도 없이 훔쳐 타고 손으로 노를 저어서 메콩강을 건너던 때를 생각하면 한국에서 나의 지금 생활은 너무나도 행복한 생활입니다. 남들은 몇 백만 원 돈을 주고 브로커의 도움으로 편히 왔지만 북한 중강에서 혜산, 중국 장백에서 쑹장허, 이도백화, 안도, 화룡, 연길, 연길에서 3년 일하고 조선족들의 고발이 무서워 또다시 천진, 상해. 곤명을 거쳐서 라오스, 태국으로 3만 리가 넘는 길을 내내 차 한번 못 타고 걷다보니 아직도 발바닥에는 역사의 굳은살이 배여서 한 달에 한 두 번씩 깎아내야 합니다. 너무나 힘들고 너무나 어렵고 너무나 배고프고 너무나 무시와 냉대를 받으며 찾아온 대한의 품이어서 나서 자란 북한보다 더 소중한 마음속의 조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한국에서의 성공적인 정착은 내 나름대로 내가 마음먹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살기에 있다는 진리를 가지고 힘과 지혜, 노력을 다 하였습니다. 대한의 품에 안겼어도 항상 그 때 그 힘들게 어렵게 오던 길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배부름과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에도 만족하면서 모든 일에서 더 열정을 다 하며 살았습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크게 성공한 삶은 아니라고 해도 성공해서 잘 정착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는 건 한국사회를 알고 북한에서의 모든 학력, 경력을 다 잊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초심의 마음을 간직하고 탈북 당시 가졌던 용기와 꿈, 희망을 잃지 않고 늘 열심히 살아온데 있다고 봅니다. 저의 탈북 행로는 아직 멀고도 멀었습니다. 한국에 왔다고 나의 어렵고 긴 탈북노정은 끝난 것은 아닙니다. 탈북의 색깔이 빨간색 이였고 과정은 검은색이 되였더라도 이제 마지막 남은 탈북 색갈을 투명하고 맑게 하기에는 너무나 해할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수많은 아리랑 고개를 노래를 부르며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도 더 헤치고 넘어야 할 산들이 더 많기에 더 많은 아리랑 노래 부르며 가야하기에 성공적인 정착이 완성되는 날에야 저의 긴 탈북노정은 맑게 끝이 나는 걸로 생각합니다. 북한에서의 폐쇄적인 낡은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성실함과 인내심으로 성공적인 한국사회 정착을 한다면 통일조국의 귀중한 사람으로 준비하는데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더 열심히 더 노력하며 살 겁니다. 지금 국내외 정세는 우리들에게 고향으로 빨리 돌아 갈 수 있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정착을 잘하여 고향으로 돌아 갈 때에는 너도 나도 모두가 성공한 사람들이 되어 돌아 갈수 있게, 그리고 북한에 두고 온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분발해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들이 직접 체험한 경험들을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전파하여 고향을 두고 올 때의 아픈 마음을 간직한 보람을 느끼는 우리들이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1년 5월 전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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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7-17 22:53:13
탈북자들이 배신자라구? 변절자라구?
그래 좋다 .. 아무렇게나 짖어라.
그러나 김정일의 졸개인 네놈들은 인민들에게...
<지주, 자본가는 노동자 농민을 착취하기 때문에
그들을 때려 엎고 투쟁하여 노동자 농민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라> 고 교양을 하지?
그 교양자료 대로라면 인민들에게는 먹을 것도 안주고 저놈들 혼자서만 계집들 끼고
호의호식하는 김정일 정권도 때려 엎고 인민들이 잘사는 남조선과 같은
민주 사회를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
난장이 김정일이는 너희 놈들이 말하는 지주, 자본가들보다도 더 욕심이 많고..
더 악독한 착취자이며 폭군인데...
굶주린 인민들이 그런 난쟁이 폭군을 반대하여 북조선 땅을 떠나가는 것이야
응당하지 않으냐?
너는 아직도 난쟁이 김정일이 무슨 대단한 구세주라도 되는 줄 알고 사냐?
하기야..<조국> 이라는 너같이 무지몽매한 똥개들은
자기 주인인 김정일이 얼마나 악독한 폭군이며 악날한 착취자인지를 모를 테니까.
너 같은 똥개들은 북조선이라는 집 마당에서 굶어 죽는 그 순간까지 바들바들 떨며
그 난쟁이 주인에게 아첨하고 꼬리만 치다가 죽을 것이니까.
그것이 바로 <조국>이라는 네놈의 무지몽매성이다.
김정일에게 충성?/?
그 난쟁이 김정일이 너희들에게 해준 것이 뭔데 그놈에게 충성을 한단 말이냐?
== 무료교육 때문에 충성을 해 ?
이 남한은 누구에게 충성을 안 해도 중학까지는 무료교육이야.
== 대학 보내주는 것 땜에 충성해 ?
이놈아 북조선은 중학 졸업 후 대학에 가는 학생이 겨우 5-8%이지만..
이 남한은 고등졸업 후 대학가는 학생이 85% 이상이야.
북조선은 대학졸업생이 인구의13%정도인 겨우 30만 명이지만
남조선은 대학졸업생이 인구의 60%인 무려 3000만 명이야.
==입당시키는 것 땜에 충성해?
이눔아 남한 사람들은 북한사람들처럼 입당을 시켜달라고 몸까지 팔며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대로 당을 창건할 권리가 있어.
===간부 시켜주는 것 땜에 충성을 해?
이눔아 남한 사람들은 그런 개 같은 충성을 안 해도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내일 아침에라도 영원한 <사장님>, <대표님> 이 될 자유가 있어.
=== 잡혀 갈가봐 김정일에게 충성을 해?
이눔아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대통령을 욕하고..
정부청사에 찾아가서 시위를 하고도 잡혀갈 근심이 전혀 없어.
==배급 타먹으려고 난쟁이 한데 충성을 해?
이눔아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에게 충성을 안 해도 쌀에서 쌀을 ..고기에서 고기를..
기름에서 기름을 마음대로 골라 먹으며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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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말을 말자.
너같이 무지몽매할 정도로 김정일에게 세뇌가 된
<김정일의 현대판 노예>가 21세기 인간들의 자유로움을 어찌 알 것이냐?
참으로 불쌍한 <노예>로구나.
김정일이 없어지고 네놈들이 가라앉는 배안의 쥐새끼들처럼
먼저 살겠다고 허우적거릴 그때에도 우리 탈북자들 보고 배신자라는
더러운 아가리질을 하는지를 두고두고 볼 것이며...
네놈이 후회할 날이 머지않아 꼭 올 것임을 명심하거라..
붉은기???/
그게 뭔지 아냐?
네놈들을 영원한 가난과 굶주림..정치범 수용소로 부르는 망령의 너울이니라.
우짜꼬........
붉은기 북조선 인민공화국기는 어따두고 대한민국 국기달고나와서.
남보고는 붉은 깃발을 높이들라하고는 니는 왜?
정신상태가 아직 멀었어.
교화소에 한번 갔다와야 쓰겄네.
다. 네놈이 캐캐묵은 만경대 가문소리했는데 네놈은 김정일과 그가문을 욕보인죄로 아마
도 북한에 송환되여 정치범관리소 갈것이다. 안갈려면 이제라도 학사대님이 너네 만경대
가문의 파렴치성을 폭로하였는데 어떻게 학사대님을 뒤집는논리적인글을 올려라! 이가련
하고 불상한놈아!
- ㅋㅋㅋ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8-03 00:46:30
- 신고에 의해 잠금처리 되었습니다. -
이 머절아!
어려서 강도일제는 보지도 못했고 고난의 행군이라는 머절싸한 시기에 굶어서 죽지 못해 살아왔다. 얼마나 너 새끼들이 설쳐대는지 오죽하면 산설고 물선 중국땅에까지 가서 개 천대를 받으며 먹을 것을 구해왔겠냐?
그 것도 죄가 되어 감옥으로 가야했고 그 곳에서 짐승이하의 취급으로 허구한 날을 피만 흘렸다. 결국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너 새끼들의 손에 굶어 돌아가셨지....
부모님들을 여이고 난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
왜냐구?
언제인가는 나의 부모님을 앗아간 너 새끼들과 계산자를 맞추기 위해서 이를 사려물며 분통을 억제했지...
하긴 너 말 맞다나 정든 고향을 등지고 오다나니 나도 바보는 바보야.
너 처럼 도둑질이나 강도질이라도 해서 그 땅에 발을 든든히 붙혀야 겠는데 속수무책으로 떠나 왔으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너 역시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들처럼 언제인가는 만경대가문을 등에지고 바람 난 숫컷처럼 남의 집 유부녀만 쳐다보다가 저승사자에게 물려 갈 수 있다는 것이지...
영화문학 작가 이진우와 이춘구의 운명이 말했줬잖아!!!!!
정신차려라. 이 등신아!!!!
임마!
고난의 행군이라는 무대 뒤에서 너희들이 김일성에게 충실했던 자들까지 모조리 숙청하지 않았더냐?
국가보위부장 김병하는 사무실에서 자살했고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최문덕은 간첩으로 몰렸고 농업비서 서관히 역시 간첩으로 체포되지 않았냐?
북한 땅에서는 너라고 그들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이 불쌍한 인간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벌써 오래전에 우리들은 김정일의 목에 현상금으로 10억불을 걸었어...
그러니 돈을 벌겠으면 그를 너도 죽이던지 아님 그와 끝까지 저승 길로 가겠으면 그를 잘 지키고 있어라...
3년안에 그의 대갈통에 복수의 총탄을 안겨줄 것이다. 내 말을 명심해 듣거라... 내가 쏜 총탄에 피투성이 된 김정일의 대갈통을 딛고 서 "조국통일 만세!"를 소리 높이 부를 때, 울며 겨자 먹기로 살려 달라고 애걸하지 말아라!
탈북자들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머절들이 하나도 없다....
- 등신아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9-22 01:40:45
- 신고에 의해 잠금처리 되었습니다. -
김정일의 밑구멍이나 핥아 주다가...
이제는 그 어린새끼 김정은의 밑구멍이나 핥아줄 운명의 똥개야...
너희들 김일성이 종합대학 나온애들 북한에서 제일 실력 미달자들
아첨이나 하고 사는 거지들아...
북한 대학생들 담배 안피우는 머저리도 있더냐?
김정은의 똥개야....일생 김가네 집안 보초로나 살다가 뒈져부려.
완전히 정신이 확 돌은 놈이거나
김정일이가 먹여 키우는 똥강아지
한마리가 들어와서 개소리를 치고 있구나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국정원은 저런놈 잡으라고 국민세금으로 봉급 주는데
뭐하냐 빨리 잡아 쳐 넣어 비오는날 먼지나도록 두들겨 패라
탈북자들 북에서 당한 수모를 탈북수기에서 읽었다면 그 반 만 두들겨도
저런 놈은 두손 닳아 떨어지도록 싹싹빌거다
그리고 국정원이나 사이버수사대 내에 탈북자로 구성된 빨갱이척결팀을 조직하라
뭐 충성 태양 위성 참 오랜만에 듣누나, 수고했다, 어디서 베끼느라고,
근데 넌 거짓말쟁이다. 김일성 김정일이도 믿지않는걸 네가 주절대냐?
넌 믿냐, 김정일이 죽으면 제일 좋아할분이 뭔소리?
그리고 보지못하고 듣지못한 북한사람들도 그렇게 안말해.
인터넷이랑 본다는사람이 그런말하면 웃는다, 세상이 웃는다.
정 쓰고싶으면 로그인하고 써라. 글이 너무작아서 보이지않는다, 와하하하,,,,,,,,,,,,,
이 어방새. 민주방망이맛 보지않겠으면 썩 숨어버려, 와하하하하하하,,,,,,,,,,,,
당신은 보자니 분명 북쪽사람인듯 한데 . 정말로 그리 생각하시는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한충성심은 의무이기전에 양심이여야하고 영예이기전에 행복이여야 한다는게 당신 자신의 진심인가요 아니면 .오래전부터 조선중앙 티브에서백성들을
기만우롱 하는 선전용으로 쓰던 문구를 그대로 옴기는 것인지 저는 그런생각이 드네 그려 당신도 자기목숨부지를 위해 속에없는 글을 남기는 것으로..........
그리고 당과 수령 조국과인민 이것을 한데묶어 충성을 부르짖으면 북한꼴이 돼는거야
개개인 각자가 할일이다르듯이 당은 옳은정책을펴고 수령은 인민의 노복이 돼고 그인민은 그사회에 충실할때 부강한조국으로 돼는거다 그 김 배뽈독이처럼 백성들이 굶어죽든상관없이 백성은 멸종하는 법이없다는식이 돼면 그백성들이 당신이말하는 그런충성심을
진짜 마음에 가지고 있을까 ..나도 북에있을때 그런 충성심 충성심 하는 말을 당신과 똑같이 들었어 그런데 그럴수록 비호감만 커지드라 그래서 내갈길을 왔고 .....
자네도 마찬가지라고 보네
그러니 속에없는 고집부리지 말고 슬그머니 자네 마음가는데로 갈길을 택하게나
때 누주면 후해해도 필요없네 ... 그럼 하루빨리 진실을 깨닽고 자기길을 택하길.......
그리고 여기서 머. 당 수령에 충성 이런문구는 좀 사용말게 참듣기가 뭐락할까...
이 지구상 단 북한에서만 쓰는 문구라 기형상태 문구라할가..
물론 차광수는 공부 깨나 한 놈으로 알고 있음니다만 그 말들은 차광수의 직접적인 글이 아니라 영화문학의 시나리오 작가 이종순이가 지어서 낸 글입니다. 참고로 이종순이도 이 영화를 10부까지 쓰고 뒈졌습니다.
이 놈이 그 글은 어떻게 통달해 가지고 오늘 여기서 설쳐대는 것이지요.
- 등신아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7-28 23:21:39
헌데 이 자식들, 세계 각국으로 돌아다니며 돈이 없으니 하지 말라는 아편만 가지고 공작자금을 마련하고 또, 그 것으로 노동당이 시키는 공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판이나 도박판에서 나 딩굴고 있으니 시키는 놈이나 집행하는 놈이나 다 도토리 키 재기가 아닌가?
자기들이 하는 더러운 짓들을 혁명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쓰레기들. 뭐 그리고 만경대 가문이라고 잘은 지껄여 댑니다..
사실, 만경대가문의 원조상인 김일성이는 소련군의 앞잡이로 조선민주당의 당수였던 조만식선생을 제거한 다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지라 자기 사무실 여비서로 있던 김성애와 눈이 맞아 돌아가면서 부화바탕한 생활을 일삼았습니다.
결국 남편인 김일성의 짓거리를 옆에서 보다 못해 악이 오를대로 오른 김정숙이는 너무도 화가 나 심화병에 걸려 임신 8개월 되었던 애기를 유산하면서 죽고 말았습니다. 김정숙이는 영하 4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김일성의 속 옷을 빨아 몸에서 발생하는 체온으로 말리는 투혼 정신을 가질 만큼 김일성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너무도 사랑한 인간에게 배반당한 한 여인의 설음, 김정숙의 억울한 죽음을 어린 김정일이 목격하였고 어머니의 원한을 되갚으려고 남북정상회담으로 줄달음치는 애비 김일성을 요때라고 생각하며 자기가 북한의 제1일인자가 되기 위해 제거하였던 것입니다.
만경대 가문의 역사는 이처럼 피의 역사, 바람난 숫컷들의 역사였으며 자기의 정치적 야욕과 성적 야욕을 위해서는 부모 자식간의 의리도 양심도 도덕도 모르는 참으로 가련하고 파렴치한 인간 말종들의 역사였습니다.
오늘 날, 만경대가문의 역사에 동조하는 인간들은 8천만 우리 민족의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응당한 징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며 마지막 씨종자까지 찾아내어 반드시 계산할 것입니다.
12번 개나댐 앜ㅋㅋㅋㅋㅋ 님아 그거 옛날 tv방송에 있었던 겈ㅋㅋㅋㅋㅋㅋ
네 말대로 3년안에 네가 네 주디로 지껄인 말을 실행못하면 3년후에는 내가 너를 니 말대로 해주마.
네가 누구인가는 이젠 다 추적했거든.
떠 올리기 싫은 추억들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현실들이니 어찌 할 수 없는 가슴아픈 사연들이네요...~^^
박정희는 미국과 서방선진국들로부터 빌려온 돈으로 국가의 근간을 개조햇답니다.
단순히 오늘,내일 먹고살 문제가 아닌 국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10년,100년 앞을 내다 보면서 ,변변한 지하자원 조차 없던 나라에서 그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외국에서 자원을 수입해다가 제품을 만들어 외국에 내대 팔아 이득을 남겨 국민이 먹고살고 ,나라를 부강 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박정희는 집권 십년이 안되어 김일성에게 공개성명을 보냅니다.
"남과북이 싸우지 말고 선의의 체제경쟁을 해보자."
쉽게 말해서..
김일성이 너랑,나 박정희 둘중에서 누가 더 백성들을 잘먹여 살리고 편안하게 해줄수 있는가를 경쟁 하자는 말입니다.
저말은 세상의 국가 지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말이라고 생각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선의의 체제경쟁...
자본주의 국가지도자가 갖춰야할 덕목입니다.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켜 남과북,참전 외국인까지 합해서 300만의 인명사상을 일으킨 악마 입니다.
김정일은 300여만명의 북한 인민을 굶겨죽인 악마의 자식입니다.
아직도 지배력의 유지를 위해 헛소리를 일삼고 있는 정신병자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빨리 그네들의 정권이 끝이 나야 할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낳고, 자라고,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입니다.
자본주의는 자유가 많은 대신 늘 책임이 따릅니다.
내맘대로 뭘하더라도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삶의 기회가 다양하지만 ,정보에 뒤떨어지면 파멸로 가는 일도 참 쉽습니다.
더 많은 탈북난민들이 하루빨리 체제에 적응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거듭나시고 성곡한 삶을 이끌어 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회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여기 계신 탈북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사선을 넘어오신 분들입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물론 탈북자라는 편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탈북인 이라는 사실에 차별을 받더라도 솔직하게 밝히고 그 차별을 담담히 받아 들이다 보면 좋은 사람,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탈북사실을 무조건 감추려 들지말고
용기 잃지 마시고 힘내세요 ..
가끔 힘들게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과 탈북인 여러분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다가 두서없이 몇마디 적어 봤습니다.
여러분들의 앞날에 늘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
백두대간에서 전설,,,
부령군무수노동자구에서온사람들찾습니다.
우연히이곳에들리게됏네요 머리가뭔가짖누르는듯한이충격은무엇으로도표현이않됍니다 행복하세요^^님들모두에게^^
탈북이라는게 어렵다고만 들었지. 실제로 경험담을 상세하게 들으니까
많이 놀랐습니다. 굉장히 와닿네요. 제 인생에 정말 당신의 말이
크게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가슴에 새겨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새삼 다시 느낍니다. 정말 감사해요. 행복하세요
님의 글보면서 공포속에 방황하던 타향의 시절이 생각나네여.
온성 꼽바크에서 탈출하다 체포되여 죽게 두둘려 맞던생각도 나구여.ㅋㅋ
라남의 집결소엔 이가 왜그리도 많은지?ㅋㅋㅋ
급식시간에 줄서서 들어 가다가 옥수수눈 훔쳐먹던친구들, 속도안찬 시라지 김창배추 품에감추고 들어오다가 안전원동무에게 들켜서 기압받던친구들 모두들어떻게들지내는지?
다들 성공해서 남부조국의 품에서 행복하게들살고있는거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성공하신거 추카드립니다.
시련을 격으셧으니 앞으로는 좋은일 기쁜일이 많으실것입니다.
글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여
저는 만강에서 쓩쟝후어 그리고 무송 메하구 사평 통료 백성자 울란허트 알산 이노정을
1년 4개월에 걸쳐 몽골 울란바타르 까지 아~~~~~~평생 잊혀지지않을 소중한 신혼여행기 였습니다. 중강보위부 바로 앞 압록강을 헤염쳐 건넌때가 벌써 10년이 .....
강원도에서 김일성 배움의 천리길 노정도를 따라....무송까지
근데, 여기 댓글들을 읽다보니 실제 북한 사람들도 쓰긴 하나봐요.
한류를 접했을 것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세뇌된 가치관으로 인해...
탈북하여 정착한 분들의 말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여기 댓글 남기시는 북한 사람들 보세요.
가끔 혼자 있을 때,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봐요.
가다보면, 여기 정착하신 분들의 진실된 소리가 들릴겁니다.
그럼, 그 소리를 따라 가세요. 그러다보면 통한의 후회를 하게 될겁니다.
그 후회가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지시길...
- 112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2-11-25 22:39:04
이런 갖은 온갖 고생을 겪고 오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4-01-31 20:48:23
법의 보호?
언젠가 경찰에 찿아갔더니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더 쓰기 싫어서 안쓰니 그리 아시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4-01-31 20:48:37
아무튼 남한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우리 민족들.. 속박에 굴레에서 벗어나 꼭 다시만나 얼싸안고 우는그날을 언제나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제만나러갑니다"라는 프로를 2년전 처음 접하고부터 탈북자들에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많이 울기도 하고 같은 프로를 세번, 네번 보면서 "저렇게 사선을 넘으면서 죽을고비를 넘으면서 자유 대한으로 온 저분들 모두 평화로운 곳에서 자유를 만끽하면서 그동안 북한에서 겪었던 악몽을 모두 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아무쪼록 탈북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