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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교실1기]성공사례 -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
Korea Republic of 관리자 2862 2009-05-13 02:13:15
안녕하세요. 이수민입니다. 지난주 하나교실 강의내용을 올립니다. 강의 중간에 다른 업무를 보느라 많은 내용이 누락되어 있는점 양해바랍니다.





* 강사 :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
* 일시 : 2009.5.9 10:00~12:30

약력
- 1999년 대한민국 입국, 하나원 2기 수료
- 연세대 편입, 중앙대 대학원 졸업
- 백두한라회 설립
-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회장 역임
- 탈북자동지회 이사(현)
- 자유북한방송 대표(현)


여러분, 반갑습니다. 무슨 말씀을 해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제가 한국에 와서 경험한 점을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와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모두 해보셨을 겁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는데, 예전에 비해 요즘 몇 년 사이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가 급증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해보죠. 탈북자가 탈북자에게 얘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거짓말도 못하지요.(웃음)

저는 며칠 전에 ‘북한자유주간’ 행사 때문에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2004년 이후, 해마다 4월 마지막 주 24~25일이 되면 5~7명의 탈북자와 함께 미국 워싱턴으로 갑니다. 북한의 자유와 인권문제를 호소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의회, 국무부, 백악관에 가서 호소를 하는데, 이 때 미국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와 자유를 위한 활동에 격려를 보냅니다. 북한의 문제는 비단 핵문제뿐만 아니라, 인권문제도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미국의 이런 반응에 북한은 매우 불쾌해하지만요.

올해 2009년에는 한국에서 23명의 탈북자와 미국에 살고 있는 7명의 탈북자, 총 30명이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비록 고생은 많이 했지만 이런 활동으로 인해 미국에서 북한인권문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또한, 곤란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미국의 북한인권 관련 기관들에서 매번 나왔던 말이, 탈북자들을 미국으로 많이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티켓을 포함한 비용이 항상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3~5명 정도의 탈북자들만 미국으로 갔었는데 이번에는 한국 정부(전경련)의 도움을 받아서 23명의 탈북자가 미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6년 4월에 미국에 갔을 때 북한의 핵문제도 중요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가 시급하다며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고 강제로 잡혀가는 것에 대해서 안건을 냈습니다. 이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대통령도 만났고 그를 통해서 일본에 있는 탈북자와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당시 부시대통령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인권문제를 크게 다루면 핵문제에 대해서 논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인권문제에 대해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에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

오바마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중국도 UN가입국이고 체면이 있으니까, 이렇게라도 탈북자들이 미국에서 자꾸 얘기를 하면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울러, 오바마대통령은 북한 문제는 국제사회와 미국을 골치아프게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또한 북한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사기를 치는 상황이라며, 북한 주민들이 북한에서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아니라고 하니까 탈북자들이 미국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어디든지간에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에 남아있는 고향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호소하는 활동을 하거나, 한국 내에서 활동을 하면 북한에 남겨진 가족·친척들에게 해가 가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서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남아있는 가족을 해칠 여력이 없거나 더 큰 반발을 낳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일 수도 있겠죠.
…….

우리들이 여기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북한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된다는 작은 마음을 항상 가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일례로, 몇 년 전에 탈북자 여성 두 명이 북한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갈 때는 미국에 간다는 기쁨에 흥분하면서 좋은 기분으로 갔는데, 막상 가고 보니 그들이 묵는 호텔방 앞에는 이미 북한 대사관, UN 관계자들이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호텔은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로 인산인해였지요.

그래서 이 두 여성은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으로 겁을 먹었습니다. 미국에 오긴 했는데 그냥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이 두 여성은 중국에서 고생했던 사진에 '김정일을 타도해야 됩니다' 라는 문구를 쓴 것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보고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이 상스러운 욕을 남발했지요. 우리가 화나거나 기분 나쁠 때 쓰는 그런 상스러운 욕을 하는 것을 보니, 그들도 틀림없는 북한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웃음)
…….

저는 한국에 와서 지인들을 포함한 3명과 함께 돈 3천만 원을 모아서 대북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단파 라디오로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하루에 30분 하던 것이 지금은 6시간(방송 5시간/설교 1시간)을 하고 있습니다. 전파는 미국에서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구요. 1년 전파사용료가 무려 6억 원이나 됩니다.

3천만 원으로 시작해서 현재의 임대료 6억 원으로 방송하기까지 오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방송을 하다가 북한에서 방송을 저지하라 고해서 대북방송을 중단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 말도 안 통하지만 매우 열심히 노력을 했습니다.

통역하는 사람과 항상 같이 가서 얘기를 했더니, 미국 측에서 본인이 직접 영어로 말 안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면서 의아해하면서 난감해하더군요. 그러다가 2006년도에 처음으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지원을 받은 후로는 요즘엔 가만히 있어도 돈을 주겠다고 들 합니다. 심지어는 유럽 쪽에서는 왜 우리들에게는 지원해달라고 말 안했냐면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줬습니다.
…….

탈북자 중에서는 슈퍼, 음식점, 정육점 같은 가게를 운영하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죽더라도 하나를 파겠다는 집념이 있었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요즘에 없어서는 안 될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을 뜻합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들조차 못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정착하기는 더 어렵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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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초기에 정착금을 1600만원밖에 안주지만, 1999년에는 3700만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셔서 돈을 너무 빨리 써버렸지요.(웃음)

1999년 이전의 선배들은 돈을 더 많이 받았었는데, 그때 선배들 중에 돈을 모아서 주식회사를 만든 분들이 있습니다. 강원도에 공장을 설립하고 '백두식품'이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탈북자들이 생각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백두식품은 운이 좋게도 남한 쪽에서 광고를 많이 해줬습니다. 지금은 강원도에서 김포로 옮겼는데,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순이익만 연매출 5억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백두식품의 주인들처럼 꾸준히 노력한다면 성공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을 것입니다.
…….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식·기술들은 비단 컴퓨터만이 아닙니다. 백두식품의 예를 들면, 음식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트럭을 운전할 수 있는 대형운전면허가 필요하고 각 업무별로 다양한 기술들을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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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아주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한 탈북자가 있었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고 열심히 마셨습니다. 밤새 술을 마시는 일을 밥 먹듯이 했지만, 다음날에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된다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여느 다른 남한의 회사원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본인도 그것에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술 마시고 출근하면서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남한 사람들과 대등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친구는 나중에 대기업인 LG의 부장까지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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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기준은 돈만 많이 번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회사에서 끝까지 버티는 것, 즉 자기 분야에서 끝까지 버티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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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례로 한 탈북한 여성을 둘 수 있겠네요. 이 여성은 보험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나중에 그 돈으로 식당을 차렸는데, 아주 쫄딱 망했습니다.

망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집념을 가지고 다시 시작할 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공부' 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은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까지 통과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탈북 여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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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할 수 있겠는지', ’내 적성이 무엇인지' 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파악하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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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출신 중에서 목사님이 7명 있습니다. 저는 목사라는 분들을 좋게 생각합니다. 처음엔 사기꾼이라고 무시하면서 가볍게 생각했었지만, 신학대학·대학원까지 나와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기도를 한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입니다. 2~3년 대학공부를 하고, 교회에서도 일해야 통과되는 과정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대단하지요. 목사가 되기까지 참고 힘들었던 과정이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정해놓고 지독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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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은 자강도입니다. 한국에 대한 소식은 라디오로만 들었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에는 막연히 한국에서 책을 쓰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한국에서는 탈북자가 책을 쓰면 잘 안 팔리더군요.

그렇지만, 제가 아는 사람은 책을 써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저 뒤에 앉아계신 탈북자동지회의 사무국장님도 잘 아시는 분인데, 그 분은 북한에 있을 때 특별한 경력이 알려지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관심이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270페이지정도 책을 써서 한국에서 판매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책이 나오자, 일본의 출판사에서 판권(인쇄 계약을 하고 책이 팔릴 때마다 한 권당 10%씩 돈을 받는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일본에서는 납북 같은 문제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던 시기였습니다. 시기가 아주 좋았던 거죠. 처음에 2천만 원부터 시작해 경쟁이 붙어서 결국 1억 2천만 원에 계약을 했습니다. 대단한 액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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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 다시 갈까' 란 책의 작가 림일씨도 책으로만 승부를 봤던 분 중의 한 분입니다. 처음에는 비난의 의견이 많았습니다. 책 제목이 왜 평양으로 다시 가냐는 것이었지요. 이 책은 지금 2,3편까지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이분은 행사장에서도 책을 팔정도로 아주 열성적 이였습니다. 모자, 옷, 차에 책 로고를 새기고 홍보를 아주 열심히 하였습니다.

제목이 ‘평양으로 다시 갈까' 라고해서 평양 예찬론의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홍보와 로비의 왕’ 이었지요. 500여명에게 홍보메일을 보낼 정도로 인맥도 상당히 넓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메일로 소식을 확인할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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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회사나 자기사업만이 살아가는 길은 아닙니다. 책을 쓰는 작가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다양합니다. 어떤 영역이든 내가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한다면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만족할 만한 정도의 성과를 이루며, 분명 성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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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살펴보면 탈북자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이나 친척들이 행여나 본인의 방송출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을까봐 그렇겠지요.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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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는 자기PR사회입니다.
개인사업이나 다른 일을 하더라도 언론에 출연하면 홍보가 많이 되어 도움이 됩니다. 저희 자유북한방송이 조선일보에 소개되고 나서 2100만원의 후원금이 들어왔었습니다. 만약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홍보가 잘 안돼서 가게가 잘 안 되는 것보다 여러 매체들을 활용하여 홍보가 잘돼서 영업이 잘 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적지 않은 분들이 취재한다고 하면 피하곤 합니다. 너무 움츠리고 있고 거부반응이 크기 때문이죠.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식당에 손님도 없고 어두컴컴한 것보다는 당당하게 탈북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보이기도 하고 홍보가 잘 되어 손님도 많아지고, 더욱 더 활기찬 장사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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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한에서 북한사람이나 북한에 대한 내용의 방송을 하고 있는데, 남한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에 나와 줄 탈북자들이 없어서 남한 기업이 북한에 가서 하는 일 같은 주제로 내용이 바꾸는 것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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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초보적인 지식·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되고, 계속 발전 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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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목표가 정해져야 합니다.
목표를 위해 집념을 가지고 전진해야 합니다.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살아도 성공할지 못할지를 장담 못하는 마당에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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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잘 못하면 큰일 납니다. 아예 통하지가 않는 것이지요. 일례로, 예전에 한 식당에 갔었는데, 거기에서 젊은이들끼리 싸움이 붙었다가 한 젊은 탈북자 청년이 술 먹고 맥주병으로 상대방 머리를 쳐서 감옥을 간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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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제를 잘 해야 합니다.
한국사회가 물렁해보여도 법적으로 대응하면 벌금내고, 감옥가고 아주 무섭습니다. 반면에 탈북자가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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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회사에 다니면, 국가에서는 규정에 따라 회사에 고용지원금을 줍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이런 법이 잘못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취업을 해서 일하고 싶어도 취업 못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회사 측에서는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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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법을 이용해서 자유북한방송에서는 기사 하나라도 썼던 사람에게까지도 지원금을 지급했었습니다. 통장사본과 서류들을 챙겨서 노동부에 제출해야 되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들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검찰에서 저를 찾더군요. 바쁘다고 매번 피하다가 5번 이상 연락이 계속 와서 결국에는 검찰조사를 받으러 찾아갔습니다.

갔더니,, 고용지원금을 제가 횡령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이때까지 제 신상명세와 기록 및 자료들이 모두 있었습니다. 그 자료들을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서류들을 작은 것까지도 하나하나 다 증명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통일부에서 탈북자들이 사기를 친다고 생각을 하고 검찰에 고소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자유북한방송을 비롯한 6~7개 곳들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다른 단체들은 규모가 작거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터라 경찰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자유북한방송은 직접 검찰에서 여러 번 연락이 와서 제가 찾아갔던 것이지요.
…….
그 때, 저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이런 게 검찰조사구나.’ 라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실제로 진짜 구속된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남 좋은 일 하다가 내가 죽겠구나.' 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습니다. 법적 해석이 안 되면 무조건 구속이었던 것입니다.

국가를 상대로 4200만원을 횡령해서 제가 착복한 것으로 오해를 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자유북한방송에서 일했던 분들에게 지원금을 무려 4200만원씩이나 챙겨줬던 것이었습니다. 큰 액수에 저 또한 놀랐습니다.
…….
비록 고용지원금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지만 그 사건으로 저는 법을 어긴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이 때 사건이 언론에 많이 소개됐었는데 지금까지도 통일부에서 지원금을 받아달라는 연락이 계속 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감옥가기 싫다는 농담으로 거절하곤 합니다.
…….

제가 한국에 온 1999년 당시에는 선배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살아 온 얘기를 해주면 ‘나 사는데 뭐 숟가락 하나라도 보태줬냐.' 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 많이 들었어야 됐는데 후회까지 됩니다.
…….

자신의 삶의 주인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항상 자신을 통제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일기를 쓰는 습관을 추천합니다. 매번 교회를 가서 반성의 기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일기는 자신을 가다듬는 방편이 될 수 있고 자기통제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자신의 하루일과를 되돌아보며 잘못된 점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

살아가면서 만났던 인연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시각을 넓혀보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북쪽에서 와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요.

제 경우에는 예전엔 누가 명함을 줘도 그냥 버리거나 관심 없이 받곤 했는데, 지금은 그랬던 것이 매우 후회가 됩니다. 이제부터 그럴려고 해도 이미 늦은 시기가 되어버렸구요.

일례로, 이명박 대통령을 들 수 있는데요. 예전에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서울시장을 하시던 당시에 저와 매우 편하게 만나서 식사도 같이하면서 친했습니다. 그때 그런 인연을 계속 잘 유지했으면 지금 저는 대통령과 친할 뻔 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또, 박찬숙이라는 국회의원님이 있는데요. 방송 쪽에서 일하다가 알게 된 분인데, 오누이처럼 친하게 지냈습니다. 우리 자유북한방송을 아주 많이 도와줬구요. 나중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셨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방송이 어려울 때 후원금 100만원을 선뜻 내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분들을 주선해주셔서 지금까지 방송이 어려울 때마다 큰 힘이 돼주시고 있습니다.
…….

탈북자들끼리 서로 연계를 잘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탈북자들끼리 친하지 말고, 만나지 말라고 조언한다고 하는데 틀린 말입니다. 작은 인연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동지회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기회가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됩니다.

예를 들면 탈북자 산악회를 운영하는 ‘민주산악회’를 들 수가 있습니다. 이 산악회는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에 북한민주화위원회 배너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탈북자들끼리 정보도 공유하고 뜻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공적인 정착에 있어서 단체 참여는 매우 중요합니다. 고향 사람들끼리 뜻을 나누는 것이지요.
…….

어금니를 꽉 깨물고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서로 도우면서 열심히 살다보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남한 사회입니다.
…….

마지막으로, 자유북한방송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방송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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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사람 2009-06-08 19:33:48
    대표님의 강의 실감있게 잘보았 습니다.성공사례가 한눈에 보이는것 같이 실감있었습니다.그런데 남좋은일 하시다 억울함을 당한 사실을 좀더 구체화하셨다면 다른 회원님들에게도 좋은 귀감이되셨을텐데...조금아쉬웠습니다.아무튼 건강하시고 하시는일 꼭성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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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 ip1 2013-11-03 19:19:47
    대표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열심히 사세요. 대표님의 바램대로 되는 날이 오겠죠.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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