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는 사람이 이런질문을 했어요.
지난 10년 정부시절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남쪽에 왔지요?
하니까 어쩐지 분위기가 주눅이 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럴때 적절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지난정부에 그 부분은 감사한다고 대답할수 있어요.그러나 통일을 해야하는 나라가 그 많은 탈북난민이 중국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김대중 정부때 탈북난민 문제가 붉어지고 세계 여러곳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에 압력을 가해 왔어요 또 한나라당에서 한마디로 난리를 처서 탈북자귀국 법안이 통과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모든걸 떠나서 대한민국헌법에 북한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것이 법입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탈북난민을 압박과 야당의 야단법석으로 통과 시켰다는것은 과연 옳바른 통일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볼수 있는지?
그리고 만약 탈북자를 귀국시키는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그게 무슨 통일을 아는 정권입니까? 당연히 해야할 일을 가지고, 그것도 안하면 적화통일 하고 할려고, 그렇지 않으면 퍼주어야만 통일이 되나요?
한국의 군인·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약하였으며 6·25전쟁 때 사단장으로 참전하였다. 이후 외무부장관·주서독대사·주베트남공사 등을 지내다가 1986년 북한으로 부인과 함께 망명하였다
평안북도 의주에서 독립운동가인 최동오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갔으며, 1936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복군에 입대하여 활약하였다. 광복 후 육군사관학교 특별반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포트릴리 육군종합학교와 포트베닝 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
6·25전쟁 때인 1951년 제11사단의 사단장으로 있을 때 그 예하부대인 9연대 3대대에 의해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다. 1956년 육군중장으로 예편하여 외무부장관·주서독대사·주베트남공사 등을 지내가다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최덕신은 북한의 현충원에 묻히었다.
부인은 이산가족상봉때 단장으로 왔고 북한의 행사때 김정일의 뒤쪽에 앉아있는 여자이다.
지금 토론은 누가 침착하게 설득력있게 표현하느냐 결국 말을 누가 잘하느냐가 중요해 보였습니다.....
객석에 이론과 원리원칙만 따지고 현실을 모르는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찬성 반대를 묻는다는 것은...... 김정일이 한테 그냥 100점 줬다..
김태산씨 20점.... 장진성씨 40점...
제 생각에는 무식하게.... 굶어보고... 3대멸족을 들이대며... 토론에 임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 토론이 가볍네요...
여론조사 국민의 67%가 찬성이요. 끝장토론회 논의 꺼리도 아닌걸 가지고
그래야 의견이 있으면 서로 얘기하고 도움을 줄수 있지 않겠어요?
북에서 오신 여성분들 중에서도 토론에 참여할수 있는 분들도 찾았으면 좋겠네요.
지난 10년 정부시절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남쪽에 왔지요?
하니까 어쩐지 분위기가 주눅이 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럴때 적절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지난정부에 그 부분은 감사한다고 대답할수 있어요.그러나 통일을 해야하는 나라가 그 많은 탈북난민이 중국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김대중 정부때 탈북난민 문제가 붉어지고 세계 여러곳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에 압력을 가해 왔어요 또 한나라당에서 한마디로 난리를 처서 탈북자귀국 법안이 통과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모든걸 떠나서 대한민국헌법에 북한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것이 법입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탈북난민을 압박과 야당의 야단법석으로 통과 시켰다는것은 과연 옳바른 통일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볼수 있는지?
그리고 만약 탈북자를 귀국시키는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그게 무슨 통일을 아는 정권입니까? 당연히 해야할 일을 가지고, 그것도 안하면 적화통일 하고 할려고, 그렇지 않으면 퍼주어야만 통일이 되나요?
평안북도 의주에서 독립운동가인 최동오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갔으며, 1936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복군에 입대하여 활약하였다. 광복 후 육군사관학교 특별반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포트릴리 육군종합학교와 포트베닝 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
6·25전쟁 때인 1951년 제11사단의 사단장으로 있을 때 그 예하부대인 9연대 3대대에 의해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다. 1956년 육군중장으로 예편하여 외무부장관·주서독대사·주베트남공사 등을 지내가다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최덕신은 북한의 현충원에 묻히었다.
부인은 이산가족상봉때 단장으로 왔고 북한의 행사때 김정일의 뒤쪽에 앉아있는 여자이다.
말이 너무 빠릅니다.
천천히 말하는 이해할수 있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토론회에 온다는것은 무리입니다.
장신성님은 좀더 당당하고 과감할 필요가 있어요.
미친것들...
북한에 다 보내야해...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10-30 02:4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