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와 지도자가 가른 남북의 차이 (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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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와 지도자가 가른 남북의 차이 (133)by 주성하기자 2011-11-21 1:15 am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에서도 이제는 코흘리개까지도 한국이 잘산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겁니다.
잘사는 그 한국이 올해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금자탑을 세우게 됩니다. 올해가 바로 연간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 해입니다. 1조 달러. 여러분들은 상상이 되지 않으시죠. 북한의 한해 무역액은 고작 30억 달러 정도로 한국의 300분의 1 정도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숫자만 말해서는 여러분들은 한국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이 오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이런 설명은 어떨까요. 무역액이 1조 달러가 넘는 국가는 세계에 불과 9개밖에 없습니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한국입니다.
중국을 빼면 다 수백 년의 경제발전 역사를 가진 서구 선진국들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 1조 달러 달성한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인데,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으니 1조 달러는 당연해 보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1950년대 전쟁이 끝났을 때 북한과 마찬가지로 전국이 폐허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50달러, 세계 100등 안에도 못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무역총액 1조 달러가 넘는 서방 선진국들은 이때도 잘사는 10위권 안에 다 들어있었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4분의 1 정도에 불과한 필리핀도 그땐 한국보다 네 배는 더 잘살았죠. 한국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도 여전히 아프리카 가나 수준으로 가난했습니다. 이때 한국의 주요 수출품이 오징어 철광석 흑연 무연탄 돼지털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의 북한과 거의 똑같지 않습니까. 지금도 북한에선 여름이면 목숨 걸고 바다에 나가 오징어를 잡아 한 마리도 변변히 못 먹어보고 중국과 일본에 다 갖다 팝니다.
석탄 흑연 이런 광물자원 중국에 팔고 있습니다. 고사리 송이 부채마와 같은 산나물 닥치는 대로 채취해 이것도 또 중국에 다 갑니다. 한국도 1960년대에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뒤 한국은 ‘수출로 나라를 일떠세우자’는 구호를 내걸고 전 국민이 일떠섰습니다. 안 해본 짓이 없습니다. 어머니 누이동생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수출했고, 돈 때문에 월남전에 파병됐던 병사들은 몰래 미군이 쏜 포탄 탄피까지 숨겨 들여와 녹여 놋쇠를 만들어 다시 수출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이집트에서 신품종 벼씨를 훔쳐 오기도 했고 심지어 전국에서 쥐잡기 운동을 벌여 쥐털을 수출했고 오줌까지 수출했습니다. 이때를 경험했던 세대는 지금도 눈물을 머금고 회고합니다. 그런 피타는 노력이 결국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후대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한민국이 오늘만큼 발전하는데 벽돌 한 장 쌓지 않은 저는 정말 감동하고 고마워해야겠죠.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욕먹겠지만 아무리 감동하려고 해도 감동이 별로 안 됩니다. 왜냐, 북한을 떠올려보면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되지 않거든요.
북한 주민들은 지금 1960년대 남한주민보다 더 모질음을 씁니다. 저도 그런 곳에서 살다 왔고요. 북한은 쥐 정도겠습니까. 개구리, 뱀, 거머리.. 더 닥치는 대로 잡아 팝니다.
저도 작은 목선을 타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며칠 씩 오징어 잡아도 보았고 고픈 배를 안고 논밭에 가서 벼뿌리도 캐봤습니다. 1960년대 여기 근로자들은 외화를 벌겠다고 독일에 가서 시신을 닦고, 수천 미터 막장에서 석탄도 캤으며 웰남전에 가서 목숨 바쳐 싸우기도 했습니다.
북한도 웰남전에 참전했고, 열대 사막에서 일을 했고, 추운 시베리아 산속에서 얼어 죽고 동상 입으면서 외화를 법니다. 시베리아 산속이 선진국인 독일 광산보다 조건이 더 나은 것도 없습니다. 다 왜 이런 고생을 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서요? 물론 애국심이 없지는 않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잘살아보겠다는 욕망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헌데 똑같은 고생을 하고도 한국은 세계 선진국이 됐고, 북한은 세계 거지가 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가장 큰 차이는 체제와 지도자의 차이었다고 봅니다. 1960년대만 봐도 한국이 수출과 경공업 중심으로 갈 때 북한은 전쟁한다고 중공업 우선주의 정책을 세우고 인민생활이 첫째라던 사람들 다 숙청했습니다. 가는 방향이 틀렸던 거죠. 그리고 나라 안팎에서 열심히 벌면 그 돈의 상당수를 여기는 본인에게 주었고, 북한은 국가가 빼앗았습니다. 이것은 제도의 차이입니다.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회와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잘살자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다 같이 놀고 다 같이 거지가 되는 제도의 차이입니다.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돈 벌기 위해 광부, 간호사로 파견 나와 있던 근로자들과 부둥켜안고 하루 종일 울었다는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뭉클합니다.
대통령과 노동자들이 서로 안고 “우리 대에는 고생을 하지만 후대에겐 꼭 부강한 나라를 물려주자”고 눈물바다가 돼서 맹세했습니다. 여러분 북한에서 이런 일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말로만 그치지 않고 한국은 실제로 전 세계가 경탄해 마지않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박정희 대통령이기에 지금도 한국에서 역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조사를 하면 무조건 1위에 뽑힙니다.
한국이 허허벌판에 제철소를 건설하고, 모래 백사장에 조선소를 지어 세계 최고가 될 때 북한은 전국의 가장 경치 좋은 곳에 빠짐없이 특각과 초대소를 열심히 짓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은 꿈을 가진 젊은이들을 세계무대에 도전하도록 격려하고 있지만, 북한은 탈북하는 주민들에게 총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망조가 든 그 길을 더욱 재촉해 가지 말고 하루 빨리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야 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내용으로 11월 11일 방송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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