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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북한! 우리들의 인생이 녹아있고/우리의 넋/ 그리고 무엇과도 바꾸기 힘는 귀중한 모든것! 그땅에 지금도 존재하는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자유없는 그땅! 인권없는 그땅을 다시한번/ 이 사진 한장/한장에서 돌아보고/자신이 있다면/ 가야한다면/그래도 가야한다면 가십시오~
자유를 찾아 올때는 목숨건 결단의 길이였지만 외로움의 만족을 얻고자 가는길은 당신이 맘먹으면 당장 열려있습니다.~
아래 모든 글과 사진들은 중국인이 작성하고 정성들인 사진들입니다.
북한의 중요한 동맥과 같은 도로입니다. 북한은 이 도로를 이용하여 중국과 대규모의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도로의 상태는 매우 나쁩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북한 국내에서는 쓸모없는 고속도로를 위해 막대한 건설 지출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북한정권은 이 주요 도로와 바깥 세상과의 연결을 고의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 도로에 대한 투자는 국가의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었다는 것을 뜻하게 될 것입니다. 사진들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제가 평양과 단둥을 왔다 가면서 촬영한 것들입니다. 대다수가 운전하면서 찍은 것들입니다. 나(Kernbeisser)의 사진들은 신안주부터 신의주까지를 여행하면서 촬영한 것으로 이것들을 공개하겠습니다. ![]() 평양으로 가는 길 신의주-신안주 도로에 있는 표지와 운전자를 위한 몇개의 유용한 설명입니다. ![]() 신안주청년역입니다. 평의선(평양-신의주)에 있어서 중요한 역이지요. ![]() 신안주의 건물 벽면입니다. 일반적으로 허름한 북한의 집들은 그저 기분을 우중충하게 만듭니다. ![]() 신안주 근방의 청천강을 가교로 건넙니다. 청천강은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행정구역을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 청천강 철교입니다. 한국 전쟁당시 파괴된 다리의 교곽이 새 철교 바로 옆에 있습니다. ![]() FAW 트럭입니다.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 두대의 ZIS 트럭입니다. 박천군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 박천군의 모델하우스 입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도 한다!'라는 대중 구호가 눈에 띄는군요. ![]() 박천군의 태룡강에 정박중인 배들입니다. ![]() 박천군 태룡강 누런 논에 정박중인 배들입니다. ![]() 평북 운전군의 겨울 풍치입니다. ![]() 운전군의 마을입니다. ![]() 운전군의 오래된 농가입니다. ![]() 운전군 가산리 입니다. ![]() 운전군 가산리의 농가입니다. ![]() 운전군입니다. 길에는 단지 더러운 트럭이 한대 있을 뿐입니다. ![]() 운전군 룡봉리의 현대적인 농가들입니다. ![]() 운전군의 전통농가입니다. ![]() 운전군 청정리 부근의 도로 광경입니다.이 길은 혁명적인 장소, 기념물, 선전보드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과 나란히 있습니다. ![]() 소수레금지 소수레는 이러한 혁명적인 곳을 통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소의 배설물을 방지하기 위하여 소수레를 위한 작은 우회로가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아주 영웅적이고 위대한 지도자의 행위를 찬양하기 위한 기념물이 있습니다. ![]() 이러한 교통 표지는 유일하게 북한에만 있을 것입니다. ![]() 평북 정주시 오성리의 협동농장 탈곡장입니다. ![]() 평북 정주시 오성리1 ![]() 정주시의 선전 벽입니다. 김정일의 불멸의 교시를 알리는 책 한부를 소지하고 있는 노동자를 그린 그림입니다. "우리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더욱 발양시키자" 이 남자의 바보같은 웃음은 이러한 교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보여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정주시의 빈 들판입니다. 경작지를 최대한 사용하기 위하여 농가들은 꼭 언덕 아래에 지어집니다. ![]() "강성대국건설에서 기본" 정주시 부근의 선전 보드입니다. ![]() 정주시에서 승객을 태운 트랙터 시골에서는 종종 트랙터가 버스의 역할을 제공합니다. ![]() 정주시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개인 차량은 사실상 볼 수 없었고 대중교통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북한주민들은 긴 거리의 여행은 걸어서 해야 합니다. 심지어 자전거 조차도 호화스러운 물품입니다. ![]() 정주시의 거리 풍경입니다. 쌀이 가득 찬 포대들은 조달본부에서 처리됩니다. ![]() 정주시의 국수집입니다. 이 신축건물은 북한의 전통적인 방식의 건물입니다. ![]() 정주시 입니다. 오른쪽의 구호는 "자력갱생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입니다. 소수레는 이런 엉망인 이념의 결과로서 합당한 결과물입니다. ![]() 정주시의 철도 건널목입니다. ![]() 평북 곽산군의 평양-신의주 도로입니다. 길가 정류장 바로 옆에는 혁명적인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휴식을 취할수 있고 내가 왔었던 것 처럼 교통량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 곽산군의 여성 여행자들입니다.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매일 음식에 대한 탐색입니다. 여성들은 그들의 가족과 그들자신을 위한 조금의 식량을 위하여 긴 거리를 걸어서 이동합니다. ![]() 여행자를 태운 트럭입니다. 여행자들에게 행운이 따른다면 트럭을 탈 수 있을 것입니다. 평북 곽산군에서 촬영하였습니다. ![]() 옥수수 짚으로 가득찬 소수레입니다. 곽산군의 혁명적인 기념물을 지나고 있습니다. ![]() 곽산군의 과일매대입니다. 페인트 칠해진 과일말고는 어떠한 과일도 없기때문에 과일매대라고 언급하는 것이 불필요합니다. 여행자들은 그들 자신이 직접 먹거리를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 곽산군 부근의 공중화장실입니다. ![]() 소년들이 얼어붙은 논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습니다. 평북 곽산군의 마을입니다. 소년들은 나무 블럭으로 자신들의 스케이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즐기고 있습니다. 내(촬영자)가 2008년 11월에 이곳을 다시 방문했을때, 이 마을은 납작하게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 곽산군의 노변풍경입니다. ![]() 곽산군의 마을입니다. ![]() 곽산군의 시골 풍경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나쁜 도로를 더 부각시킵니다. ![]() 곽산군의 중심가 도로입니다. ![]() 곽산군의 새해 기념장식입니다. 놓여있는 중앙의 저급한 그림은 백두산 봉우리입니다. 백두산은 김정일이 태어난 곳으로 주장되어지고 있습니다. 두 어린 소녀들은 전시된 사진에 경탄하고 있습니다. ![]() 곽산군의 거리광경입니다. ![]() 곽산군입니다. "군대가 우선(선군정치)" 새해 주체 98년(2009) ![]() 곽산군의 선전구호입니다. ![]() 곽산군의 노변 광경입니다. ![]() 곽산군의 사천강제방수축공적기념탑입니다. 이 기념물은 보이는 것 만큼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뒤의 글귀에 따르면 이것은 북한 인민군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 콘크리트 조각으로 만들어진 평북 곽산군의 거대한 구호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사상을 빛나게 실현하자!" ![]() 선천군역 광장입니다. 역의 광장에는 이른바 "군대가 먼저,여덟개의 경치 (선군팔경)"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 선천역입니다. ![]() 신천군의 네모 반듯한 건물입니다. 북한의 지도자를 찬양하는 선전벽은 다소 크게 건물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 선천군의 영생탑입니다. ![]() 선천군의 골목입니다.거리에서 목재 가스를 전력으로 이용하는 트럭이 연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 선천군의 설연휴 기념축하입니다. ![]() 하나는 부지런 하고 나머지 둘은 게으르군요. 선천군의 주요 도로에서의 이런 장식은 잘 알려진 우화를 이용합니다. ![]() 평북 동림군의 청강초소입니다. ![]() 평북 선천군의 평의선 철도입니다. ![]() 신안주-신의주 도로에 있는 평북 동림군의 마을입니다. ![]() "공화국 창건 60돐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빛내이자!" 북한의 거리에는 언급한대로 선전 보드가 줄서있습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칙칙한 색상을 풍경으로 끼얹는걸 추가합니다. ![]() 저 구호들을 번역하면 "군대가 우선(선군정치)" (좌) "한마음으로 통합(일심단결)"(우) ![]() 동림군의 벌거벗은 산입니다. 철도는 과거 경의선(서울-신의주)의 일부이기도 했던 평의선입니다. 경의선은 현재 휴전선에 의하여 가로막혀 있습니다. ![]() 동림군의 오래된 바위에 새겨진 명문입니다. 신안주에서 부터 신의주에 이르기까지의 도로에 있는 몇개의 바위들에는 중국문자(한문)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마도 이씨 왕조대의 것 같습니다. 바위 바로 옆에서 얘기를 나누던 두 여성은 내 카메라를 보는 순간 달아났습니다. 뒤에서 현대적인 구호가 있습니다.("우리 당의...") ![]() 동림군의 읍내입니다. 뒷배경의 언덕에는 소련군을 볼 수 있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이 곳은 접근불가 장소입니다. 중앙의 마을은 교통흐름을 위해 2년전에 폐쇄되었습니다. 러시아 외교관리들은 가끔 그 기념물을 방문하며 근처에 배치된 KPA 부대로부터 잘 영접받는다고 러시아 외교관이 나에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 동림군의 공장입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있었을 법 하군요. ![]() 동림군의 선전 벽입니다.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자" 이 문구를 인민들에게 강력하게 장려하고 있습니다. ![]() 동림군 북방의 철도 건널목입니다. ![]() 평북 염주군 소울령입니다. 소달구지가 방금 지나갔습니다. ![]() 버스로 변신한 트랙터. 염주군에서 촬영했습니다. ![]() 평북 염주군에서 ![]() 염주군에서의 교통측정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나라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면 통행증이 필요합니다. 경찰(인민보안원)은 통행증 없는 주민들의 이동을 막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통행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 염주군의 철도건널목에 있는 소달구지입니다. ![]() 염주군의 선전벽입니다. ![]() 염주군의 군인식당입니다. 이 아름답고 전통적인 건물은 2008년에 철거되었습니다. 북한인들은 아직도 이런 전통적인 건축물의 가치를 모르나 봅니다. ![]() 염주군에서 본 승리 58호 트럭입니다. 이 트럭은 1958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연유로 하여 승리 58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염주군에서 촬영하였습니다. ![]() 염주군의 중앙광장입니다. 건물 외벽이 모자이크 같군요. ![]() 염주군의 대형 모자이크입니다. 백두산에 서 있는 김정일과 김일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 염주군 부근에 있는 트랙터입니다. ![]() "우리 사는 마을을 오곡백과 무르익는 사회주의 선경으로!" 염주군의 선전벽입니다. ![]() 시장에 돼지를 가지고 가는 여자들입니다. 배경에는, 바람 빠진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습니다. 북한인들은 도로 한 가운데에서 차량을 수리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염주군에서 본 광경입니다. ![]() 소달구지 평북 룡천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4년이 지난 룡천군 마을입니다. 2004년 4월 22일에 철도역에서의 거대한 폭발로 룡천의 작은 마을은 일부 파괴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김정일이 이 마을을 지난 지 9시간 후에 발생하였습니다. 추측하건데 이 폭발은 암살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 마을은 한국과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로 빠르게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건물은 단지 4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낡아 보입니다. ![]() 룡천군에서의 비료 생산 경쟁입니다. 북한은 필요한 만큼의 화학 비료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부엌쓰레기와 인간의 배설물까지도 모으도록 강력하게 장려됩니다. 비료 생산을 올리기 위하여 인근 주민들끼리 시합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사진은 룡천군의 13지구 퇴비생산경쟁도표와 이런 독특한 형태의 "사회주의 경쟁"의 인상적인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이 사진은 운행중인 차에서 찍었기 때문에 꽤 흐릿합니다. ![]() 얼어붙은 삼교천입니다. 보이는 삼교다리는 룡천군과 신의주의 경계를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 "고난을 이겨내며 더 좋은 락원을 꾸리자!" 거대한 선전 보드는 신의주 부근의 낮은 산에 있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구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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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그런실제장면을 내 눈앞에서 보는 느낌
그사진들을 찍느라고 고생많이했겠네요
그동안어디갓었디야
반깁네예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3-29 20:27:32
1958년경 생산되었다면 50년 이상되었다는 말인데..
쿠바가 그렇다죠. 미국의 대쿠바 봉쇄로 인해 쿠바에는 5~60년된 승용차가 아직도 택시로 이용된다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