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인민을 어떻게 길들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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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단의 고발…
중국은 인민을 어떻게 길들였나
왕단의 중국 현대사 왕단 지음, 송인재 옮김 동아시아, 558쪽, 2만2000원 베이징 주재 외신 기자들 사이에 불문율처럼 전해지는 금단의 열매가 있다. 이른바 3T. 대만은 통일 문제라, 티베트는 분리독립 움직임 때문에,
천안문 사태는 워낙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는 것.
‘금기 구역(禁區)’을 넘보다 걸리면 추방, 무겁게는 옥살이를 각오해야 한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의 지도자 왕단(왼쪽)은
천안문 사태 이후 체포, 투옥, 석방, 재투옥, 추방 등을 거쳐 중국을 떠났다.
왕단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설적인 정치적 반대파가 되려 한다”며
“앞으로 중국이 정치 질서를 다시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이 책의 저자 왕단(王丹·44)은 천안문 사태의 주역이다.
1989년 4월 정치개혁을 주장하던 후야오방(胡耀邦)이 사망했다.
베이징대학 역사학도이던 왕단은 학생들을 이끌고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항 시인 베이다오(北島)의 시 ‘대답(回答)’을 노래하며 민주화를 외쳤다.
“비겁함은 비겁한 자들의 통행증이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들의 묘비명이다… 네 발 아래 천 명의 도전자가 있다면 나를 천 한 번째 도전자로 생각하라….”
그러나 정부의 ‘대답’은 탱크를 앞세운 무자비한 진압이었다.
천안문 광장에 얼마나 많은 이의 피가 뿌려졌는지는 지금도 분명치 않다.
그저 수백에서 수천의 목숨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추측될 뿐이다.
89년 6·4 천안문 사태다.
천안문 사태 직후 중국 정부가 발표한 21명의 지명 수배자 명단 맨 꼭대기에 왕단의 이름이 올랐다.
이후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98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중에 맞춰 중국 정부가 병 보석을 허가했고, 이후 미국으로 가 하버드대에서
‘1950년대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의 국가폭력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국가의 폭력이다. 1949년부터 2009년까지 60년에 걸친 중국 현대사를 15개의 강의로 구성했다.
그리고 국가의 폭력이 어떻게 사람의 성품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했다.
왕단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사는 국가 폭력과 사회적 공포가 서로 교차된 역사라고 말한다.
국가는 폭력을 남용한 뒤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데
이게 국가의 폭력이 비호를 받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국가의 폭력을 휘두르는데 앞장 섰던 중국 지도부 인사들에게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다. 왕단은 마오쩌둥의 한국전 참전 배경을 마오의 인명 경시 사상에서 찾는다.
화력의 절대적인 열세로 인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있을줄 알면서도
왜 참전을 결정했을까.
마오가 ‘염려하는 범주에 중국인의 목숨은 없었다.’ 가 왕단의 해석이다.
마오는 집권 기간 내내 통치의 방식으로 군중과 폭력을 결합했다. 대규모 군중을 동원해 구타와 포위 공격, 모욕과 학대로 상대를 떨게 했다.
대기근 동안 4000만이 아사했어도 항거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국가의 폭력과 기만에 눌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1월 중국 당국의 검열에 맞서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 기자들이 파업했을 때
왕단은 ‘언론자유’와 ‘정치개혁’을 촉구하며 파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덩샤오핑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다.
덩은 마오를 도와 지식인을 탄압한 1957년의 반우파(反右派) 투쟁을 주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89년의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특히 89년 당시 총리였던 리펑(李鵬)은 자오쯔양(趙紫陽)을 총서기에서 끌어 내리기 위해
피의 6·4 천안문 사태를 계획적으로 발동시킨 주역이라고 공격한다.
또 ‘인민의 총리’로 불린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독재 제도를 조성한 책임자로, 류사오치(劉少奇)는 마오쩌둥 개인숭배를 앞장 서 조장한 사람이라고 왕단은 말한다.
“역사 속 인재들은 모두 살인의 귀재였다”고 한
청말(淸末)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들이다.
왕단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현재 체류 중인 대만의 대학들에서 강의하면서 대만 청년은 물론 대륙에서 온 학생들
중국 현대사의 실상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자각에 따른 것이다.
학생들이 모를 수 밖에 없는 게 현재 중국 관방에서 말하는
역사 중 70%가 거품(진실 왜곡 및 누락)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왕단의 설명이다.
왕단은 44살이다. 20세 봄에 시작한 민주화 운동 또한 24년을 맞는 셈이다.
그의 피는 아직 뜨겁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각성된 청년이 정부 내 개혁 세력과 손을 잡을 때
민주의 봄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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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시켜라.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6-07 23:08:05
무지한 중국넘들
북한이 무너지려면 먼저 중공이무너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인.
중국은 곧 공중분해될것이고
북한도 부서질것이고
자유민주주의가 동북아에 자리잡힐것이라고 믿는다.
중국에도 지금 자유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지만 중공의 보도관제로하여 알려지지 않을 뿐입니다.
중국이 다당제만 허용이되면,,, 공산당 무너지고 - 민족별로 갈라지는 것은 히루아침에 이루어 지죠.
중요한건 멍청한 중국의 농민계층이 아직도공산당에 설설기는게 문젭죠.
우리한민족은 이 짐승같은자들땜에 분단의 역사가 장구한것을 잊지말아야한다.
모택똥 이 씹S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