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명철 [마지막 회] |
---|
황장엽과 함께 소련유학을 했던 조명철의 부친 조철준은 공화국에서 내 노라는 건축전문가로서 노동당의 신임을 많이 받았던 충성일군이다. 충청북도 보은 태생인 그는 1933년 만주로 가던 중 청진에 정착했다. 김일성종합대학 개교(1946년) 이듬해에 시험을 봐서 입학했고 다음해 소련 레닌그라드 건설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전후 귀국해서 평양의 웅장한 건축물시공에 땀을 바쳤다. 그 증거물이 개선문 옆의 ‘국가계획위원회청사’와 노동신문사 옆의 ‘평양예술극장’인데 전형적인 유럽형 건축물이다. 북한의 건국초기는 상대적으로 북쪽출신의 인재가 적었던 때이라 출신성분을 중요히 따지지 않았다. 노동당과 김일성의 신임을 받은 조철준은 공화국 건설부문의 최고수장인 정무원 건설부장 자리까지 올랐다. 정치적 충성을 인사정책의 잣대로 삼는 공화국에서 16년이나 그 자리를 지켰으니 그만큼 피타는 노력을 하였다. 그의 아내는 함경북도 회령 태생이며 요즘말로 하면 남남북녀 커플인 셈이다. “총장 선생님! 저는 기회가 되면 경제학을 더 배우고 싶습니다.” “이유가 뭐요? 조명철 학생!”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기에 사상을 가져야 하고 그래서 철학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우리처럼 작은 나라가 위대한 사상을 가져야 한다는 총장 선생님의 좌우명에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것이 주체사상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음!~” “그러나 사람은 동시에 육체적 동물이기도 합니다. 좋은 사상을 갖기 전에 육체적으로 건강치 못하면 아무리 주체사상이라도 무의미합니다. 사람이 경제사회에서 사는 것은 필연입니다. 인류사회보다 더 나은 세계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졸업하면 외국유학이라도 갈 셈이오?” “아닙니다. 우선 대학박사원에서 4년 더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총장선생님께서 힘을 써주시면 대학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교수)이 되고 싶습니다. 외국유학은 그 이후에나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는 황장엽이다. 젊은 세대 학생들이 다르다. 아무리 사상을 중요시하게 강조해도 그들의 마음에서 정치혁명, 사상학습 따위는 이미 떠났다. 구태여 낡아 빠진 혁명사상교육을 대학생들에게 주입시킨다는 것도 시대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인가 싶다. 자기와 조철준의 시대는 달랐다. 어떻게 하나 혁명을 외치면서 수령의 주위에 굳게 뭉쳐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였다. 가족과 개인의 행복도 전부 뒷전이고 오로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혁명1세대와는 너무나 다른 2세들이다.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라 했던가. 황장엽이 화제를 바꾼다. “조명철 학생! 내가 조철준 동무를 잘 알아서 하는 소리이니, 앞으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꼭 주의할 사항이 있어요.” “네?” “남산학교에서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동생들인 김평일, 김영일 동무와 함께 공부했죠? 동무가 인민반 1학년 때 김영일 동무가 3학년, 김평일 동무는 중등반 2학년이었죠?” “맞습니다.” “그들의 개인생활, 취미, 생활수준 등을 잘 알지요?” “그렇습니다.” “재학 중 다른 학생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도 그들과 관련한 어떠한 발언도 절대 하지 마세요. 알겠죠? 적어도 이 땅에서 만큼은 함구하세요. 사회주의혁명에 도움이 안돼요. 보위부 제1부부장 동무한데서 전해들은 당부예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 회고에서 깨어난 조명철이다. 적어도 그가 본 인간 황장엽은 학자이면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식견이 있었다. 참담하고 억울한 시대에 태어난 비극적인 운명과 야만적인 노동당시대에 숙명처럼 살아가야 하는 허무한 오늘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고뇌가 얼굴에 가득 묻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만큼이나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깊은 마음이 있었다. 북한 같이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사회에서 더욱 존경하는 스승이다. 100% 자신의 선택으로 운명을 바꾼 조명철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에게서 황장엽은 지금 자기의 뜻과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스승이고 아버지 같은 분이다. 양심의 학자이고 인간적인 스승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늘 고향 평양에 계시는 사랑하는 부친과 함께 황장엽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그런 고마운 분을 영영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명철은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신중한 표정을 보이는 권영해다. “적어도 인간적인 분이라... 그 소리인가요?” “그렇습니다. 훌륭한 학자이고 정치가입니다.” “음!~” “그런데 황장엽 선생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 “정말입니까?” “네! 오늘 증언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를 받아준 대한민국에 감사합니다. 국민의 안녕을 위한 국가의 일인데 당연히 도와야죠. 앞으로도 도울 일이 있으면 힘껏 돕겠습니다.” “감사해요. 조명철 박사님!”
- 끝 -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주말에 들어와보니, 올려주셨네요.. 잘볼께요..
다음에도 소설식으로 인물소개하면, 딱딱한게시판에서 색다른걸 느낄거 같습니다..^^
조명철은 그냥 4년간 입으로 벌어먹고 사는 직장에 다니는 정치인일뿐이야. 수천만원 공금쓰며 그렇게 일못할 사람이 어디있어. 시키면 다하는거지.
그러니 삐라대장 박상학. 방송대장 김성민 같은 인물로 소설 써. 그게 더 효과적일거야. 그사람들은 10년 20년 변함이 없잔아.
여하튼 그 열성에 대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탈북자들 행동 항상 조심해야 해. 그게 이 사회에 탈북자들 다 그런넘이야 이렇게
인상주거든, 탈북자들 모두 용감하고 큰 일 친 사람들인데 겨우 남에 붙어먹고 사는 기생충처럼 보이게 만든다면 이건 보통 큰 죄악 아니잖아..도명학 같은 소설은 괜잔아..그 정도
쓰면서 소설가라고 해라...림일도 능력은 있는 것 같은데 왜 정신이 그 모양일가?
몽땅 조명철의원을 흔드는 사람만 있으면 어떡합니까. 그래도 림일선생님 같은 분이 있기에 그분이 일을 하는 거라고 봅니다.
잘나도 못나도 우리 2.4천 탈북자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입니다. 사람의 근성은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거여서 빚어진 현상으로 생각합니다.
림일선생님도 욕을 많이 먹는 것은 그만큼 대중에게서 유명하고 관심이 많다는 증거이지요. 언제나 좋은글 쓰시는 림일선생님을 응원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탈북자 중에 가지가지 다 있군. 탈북후배는 뭐하는 시라소니가?
중간에 조명철이 신문배달도 했다고 쓰는 건 그건 좀 3자가 보기에도 좀 너무 한 것 아니요?
신문배달하던 사람이 20억 재산 일구었다 뭐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