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종자는 어느 것이 더 좋을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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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기적의 볍씨’로 불리는 ‘통일벼’가 탄생했다. ‘통일벼’ 개발은 ‘녹색혁명’으로 불리며 2009년 ‘국가연구개발 반세기의 10대 성과사례’의 최우선으로 꼽힐 정도이다. 이러한 파장은 당연히 북한에도 미쳤다. 공식적으로 <녹색혁명>이란 말이 김일성 입에서 나와 퍼져 나갔다. 왜 <통일벼>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품종이름마저 남북한 모두의 염원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북한사람들은 <통일벼>소식은 모르고 특별한 농업전문가들 속에서만 알고 있었다. - 김일성의 특별지시로 입수한 <통일벼>와 비교시험 명령이 떨어졌다. 비교시험은 농업과학원 보다는 객관적 평가기관인 농업위원회 국가품종비교시험위원회에서 한 것 같다. 필자도 당시는 20대 초반 연구원으로 구체적 사실을 몰랐는데 나의 연구실 실장인 최석균 원로연구원으로부터 직접 들은 정보이다. 최석균 실장은 625전쟁기간 인민군공군부대 러시아어 통역관출신이다. 전쟁기간 참여하였던 미그15기 소련공군성원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 비교시험 결과는 북한농업과학자들에게 긍지를 주었다. 결론적으로 벼 종자는 남북한이 비슷한 수준이고 옥수수종자는 비교할 것도 없을 만큼 북한이 앞서있다는 것이다. *량보다 맛을 따지는 요즘시기에 생산성비교개념은 <살빼기운동>하는 곳에서는 의미가 없지만 북한에서는 갈수록 절대적이다. - <통일벼>와 비교한 북한 벼 종자는 <룡성>계통이다. 룡성이란 명칭은 벼 연구소가 바로 평양시 룡성구역에 있기에 부쳐진 것이다. 차후 <룡성>벼는 <평양>벼로 부쳐져 지금껏 불려오고 있다. <통일벼>의 유전적 구성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통일벼>는 필리핀 형과 조선 형 벼의 교잡 형으로서 소출은 높지만 숙기가 북한에서는 길고 보다 치명적인 것은 도열병(잎마름병 일종)에 약하다는 것이다. 작물의 생산기관인 입이 마르면 끝인 것이다. 북한보다 따뜻한 기후를 가진 남한에서 그리고 농약이 충분한 조건에서는 <통일벼>의 생산성이 우수하겠지만 북한에서는 북한 벼가 현실적으로 더 좋은 것으로 판명됐다. - 당시 옥수수종자는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로 북한이 앞서있었다. 그럼에도 탈북하여 남한에 와보니 엉뚱하게도 <슈퍼옥수수>소리가 유행하면서 낙후한 북에 지원하여 식량난을 해결하고 남은 옥수수는 남한에 가져온다고 하였다. 그 결과는 뻥이라는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이미 증명되었다. 그 <슈퍼옥수수>종자를 따지고 보니 1979년에 발표된 <수원19호>였다. 그 정도의 옥수수 종자는 벌써 1974년 전국에 도입한 상태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갱신4호>이다. <갱신4호>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도입한 것으로서 <에스카 4호>가 본명이다. 옥수수 원종 1톤에 금 2.5톤을 주고 사왔다고 할 만큼 소문나 있었다. 당시 주체사상을 창시했다면서 급격히 선전하던 시기에 국제적으로는 <뿔럭불가담운동>과 성격이 맞닿아 있었는데 그 중심에 유고의 찌또 대통령이 있었다. 한때 수정주의 두목으로 공산권에서 축출할 만큼 욕하던 사이가 하루아침에 동지로 변하여 찌또는 평양에, 김일성은 베오그라드에 방문하던 시기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비사는 식량문제였다. 모든 공산권 중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나라는 유고였는데 그 중요한 요인이 옥수수생산량이 높다는 것이다. *옥수수 생산성도 좋지만 그 보다는 개인농을 도입한 유일한공산국가였다. 알아보니 옥수수종자가 우수하였는데 종자의 중요성을 기하여 옥수수를 섬에서 철저히 보안하며 연구한다는 것이다. 이를 본 따 북한도 옥수수연구소는 무장보초를 세우게 되었다. 이름도 비밀을 기해 <옥수수연구소>가 아니라 <913농장>이란 가명을 썼다. - 옥수수 생산면적이 가장 많고 주식인 북한의 필요성에 유고의 옥수수 종자는 금을 몇 톤 줄 만큼 매력이 있었다. <갱신4호>는 옥수수생산성이 가장 높다는 1대잡종 종자였다. 사실 이러한 1대잡종 종자는 북한에서 처음이 아니다. 북한과학자들이 처음 만들어낸 <속성1호>가 있었다. 유고의 옥수수생산 매력에 빠진 김일성의 주관적 명령이 아니라면 금 몇 톤을 주면서까지 부디 종자를 사오지 않아도 되었다. <갱신4호>는 1974년에 수입하여 재배한 결과 생산성은 좋지만 이삭이 여문 후 줄기가 주저앉는 병에 약한 것이 금방 드러났다. 이 보다 우수한 북한종자 <은천5호>, <평남6호>로 1975년부터 급격히 바뀌어 재배되어 갔다. 이러한 옥수수종자혁명으로 1974-5년 생산량이 130%증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옥수수종자연구의 주역인 강냉이연구소 부소장 이봉휘는 김일성이 <강냉이박사>라고 하여 하루아침에 박사칭호를 받게 되었다. 또한 북한사람에게 드문 선물인 벤츠 선물까지 받았다. 이때 함께 벤츠 받은 이가 벼 연구소 소장 김상련박사이다. 여기 식으로 군, 도지사도 탈 수 없는 벤츠 선물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아무리 뻥치기가 심한 북한사회라고 하지만 이러한 명예와 선물은 아무런 업적이 없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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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11 21:23:10
- 이해사셔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12 10:58:15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11 21:28:07
알고있습니다.
이것도 10년전 자료라 조금 맛이 갓겟지만여..
평지에는 평남7호를 심고, 산밭에는 화성1호를 주로많이 심습니다.
평남7호는 키가큰품종이고 화성1호는 키가작은 고산지대에 적합한 작물입니다.
그리고 동유럽에서는 알바니아가 농사를 제일 앞서지않았는가여?
통일벼는 일반벼보다 맛이 없어서 사실상 실패작이라고 보면됩니다.
70년대 당시에도 통일벼는 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유는 밥맛이 없어서지요.
더 구체적인 것은 모르겠습니다.
북한에서 토지의 사유화가되면 최소한 식량위기는 사라질것이며
토지를 농부들에게 돌려준다면 그땅에 어떤품종을 어떤방법으로 심어서
노력대비 수입을 더 많이 올릴것인가는 그들이 알아서 잘 하리라 봅니다.
북한이 제대로 발전하기위하여서는 최소한도 김씨정권이 무너져야 합니다.
현재 북한정치실패의 원흉인 김씨일가를 정권밖으로 밀어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북한이 변할수있습니다.
통일은 못된다하더라도 최소한 김씨일가만큼은 정권의 권좌에서 몰아내야합니다.
그래야만 북한사람들 웃으면서 행북하게 살날이옵니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11 21:23:45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11 21:23:56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11 21:20:32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11 21:20:38
남과북에서 자기가 경험했거나 아는 것을 댓글로 달아주는게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