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두번 살인할 뻔한 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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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중국기발 단 엄씨때문에 좀 썰렁하네요. - 누구를 향한 글은 아닙니다. 그냥 나그네 단상으로 이해바람니다. - 죽어도 잊혀질 것같지 않은 1990년11월20일, 탈북한지 하루만에 잡힐 줄이야. 생명을 걸고 어떻게 결심하고 떠난 길인데 3일천하도 아니고 하루 천하! 너무도 어이없이 죽음과 같은 닥쳐진 상황에서 혼이 빠져 어안이 벙벙. 정신이 그래도 든 것은 변방대 감옥에서 취조받을 때. - 한마디로 살기 위해 - 족쇄찬 상황에서도 취조하는 감옥장을 발 타격으로 쓰려눕혔지요. 밖에 있던 경비원 청년이 불 쇠갈구리들고 들어 왔다가 벌벌 떨며 쇠갈구리를 떨구고 도망 나갈 정도로 나의 눈에서 나는 살기는 광기. - 감옥장이라고 해야 - 당시는 탈북자가 거의 없는 때여서 장백시 변두리에 철조망 담친 단독집으로 마침 부인과 딸도 있었는데... 그때 여인의 간절한 만류로 인간적인 제정신으로 돌아와. 만약 그 여자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아마도 확인 사살동작으로 이어질 뻔 - 감옥장은 대위, 조선족인지 우리말을 부부가 다해. 총을 안 찼는지 ...이것여부도 살인이냐 아니냐의 조건이었음. 쓰러진 다음에 총은 내것이 되었겠고 그것으로 살인가능성도. 아니면 쓰려졌다 일어난 감옥장이 나를 쏴 죽일 수도 있는 상황. - 다행이도 총은 없었는지 - 그냥 나를 감방에 처넣고 전투경찰을 불러. 좀 있어 짚차로 달려온 전투경찰 7명. - 아무리 학교씨름선수 출신이라고 해도 7명은 고사하고 3명 이상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 어떻게 할 가?! 복수가 만만치 않겠는데 ... 탈북하다 병신되기는 싫고. 궁리해낸 것이 - 감방안에 있는 변기통 바께쯔를 감옥 바닥에 놓고 앉아. 들어오는 첫 놈은 아마도 똥바가지 쓸 걸. - 아닌기 아니라 감옥 문 창을 열어 보던 전투경찰이 으악! 누구도 첫 문을 열고 들어 올 놈이 없어. - 한참 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과 어느때까지 대치할 가?! 차라리 뭇매를 맞고 빨리 북송되는 편이 살 확율이 높아보여 똥바케츠를 치우고 순순히... 첫 놈이 들어오면 해보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이 내가 쓰러져 - 그냥 곤봉이면 한대 맞아도 무방하고 제낄 줄 알았는데 어이구! 그게 전기곤봉 인 줄이야! 난생 처음 전기곤봉세례를 받은 것이지요. 이어 전투경찰 7명이 달려들어 치는데... - 깨어나 보니 장백현 시 병원구급실. 소생주사를 맞고 정신들자 - 다시 중국감옥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북송길인 <친선다리>로 직행- 밤 1시경인 가. 이런 경우는 아주 처음이라고 해. 중국에서 조선인이 죽으면 안되기에 죽기전에 아야 북한으로 넘겼다고 함. - 아마도 그래서 내가 살아난 요인의 하나가 되어. 혜산 정치보위부 감방(집결소)에 가니까 중국군관 때려눕히고 온 <주체조선인>으로 그리 미워하지 않아. 다음날 부터 갇혀있던 4호 감방의 감방장으로 임명. 감옥에서 감방장은 이장 정도가 아니라 면장이상은 된다는 것은 갇혀본 이만 알아. - 사실 감방장이 된 사연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얘기하라면 하겠는데 ...여러분이 지루할 가봐 저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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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원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4-09 11:55:00
고생이 극심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