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파괴력(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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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김매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어쩌면 농사는 풀과 병충해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제초제와 비닐을 씌울 여력이 없는 북한은 인력과 축력으로 김매기를 한다. 김매기 하는 인력의 뒤를 조사하여보았다. 얼핏 보면 풀들이 다 쓸어 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장점 밑뿌리까지 꼼꼼하게 잘라야 죽는데 그냥 쉽게 꼭대기만 쳐버리고 나간 것이 상당하다. 그 속에는 옥수수까지 쳐버리고 나간 것도 있다. 생장점이 살아있는 풀은 여러 가지로 확대되어 살아나며 그 위에 뿌려지는 비료를 곡식보다 더 강하게 흡수하여 자란다. <범이 새끼 칠 정도>로 번성하는 이유이다. - 손노동에 의한 김매기 다음으로 축력 즉 소 후치작업이 따른다. 보습으로 고랑을 양쪽으로 파 제켜 풀들을 묻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어린 옥수수까지 묻힌 것을 그냥 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인력과 축력으로 감소된 옥수수는 그 다음 병충해가 덮친다. 결국 평당 30대를 심은 옥수수가 11대 정도 남게 되는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왜 풀은 죽고 옥수수는 살아나도록 작업하지 않을 가?! 왜 이들을 단속하지 않을 가?! 열심히 해보았자 힘들기만 했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또 논과 밭에 후 터져하는 농사일을 일일이 살필 수도 없다. 공산국가들에서 공업은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해도 농업만은 일치하게 문제를 풀 수 없었던 주원인인 것이다. - 어떻게 농사하는 개개인의 마음속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가?! 내 것이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자기가 손해 보기 때문이다. - 차후에 확인한 것이지만 농업문제를 푼 공산국가도 있다. 수정주의라고 1950년대부터 왕따 시켰던 유고슬라비아이다. 왕따 공산국가로서 한 짓이 개인 농이었다. 그 후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실시한 중국과 그 다음 베트남이다. 등소평의 개인농 정책으로 모택동의 합작사에 비해 전 중국적으로 2배 즉 2 억 톤에서 4 억 톤으로 식량이 증산되었다. 베트남은 도이모이정책으로 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었다. 내 것이냐 내 것이 아니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심각한 피해로 또는 비약적인 이익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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