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토론게시판

상세
북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파괴력(2)
Korea, Republic of 이민복 0 713 2017-07-06 13:44:38

 

문제는 김매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어쩌면 농사는 풀과 병충해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제초제와 비닐을 씌울 여력이 없는 북한은

인력과 축력으로 김매기를 한다.

김매기 하는 인력의 뒤를 조사하여보았다.

얼핏 보면 풀들이 다 쓸어 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장점 밑뿌리까지 꼼꼼하게 잘라야 죽는데

그냥 쉽게 꼭대기만 쳐버리고 나간 것이 상당하다.

그 속에는 옥수수까지 쳐버리고 나간 것도 있다.

생장점이 살아있는 풀은 여러 가지로 확대되어 살아나며

그 위에 뿌려지는 비료를 곡식보다 더 강하게 흡수하여 자란다.

<범이 새끼 칠 정도>로 번성하는 이유이다.

-

손노동에 의한 김매기 다음으로 축력 즉 소 후치작업이 따른다.

보습으로 고랑을 양쪽으로 파 제켜 풀들을 묻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어린 옥수수까지 묻힌 것을 그냥 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인력과 축력으로 감소된 옥수수는 그 다음 병충해가 덮친다.

결국 평당 30대를 심은 옥수수가 11대 정도 남게 되는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왜 풀은 죽고 옥수수는 살아나도록 작업하지 않을 가?!

왜 이들을 단속하지 않을 가?!

열심히 해보았자 힘들기만 했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또 논과 밭에 후 터져하는 농사일을 일일이 살필 수도 없다.

공산국가들에서 공업은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해도

농업만은 일치하게 문제를 풀 수 없었던 주원인인 것이다.

-

어떻게 농사하는 개개인의 마음속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가?!

내 것이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자기가 손해 보기 때문이다.

-

차후에 확인한 것이지만 농업문제를 푼 공산국가도 있다.

수정주의라고 1950년대부터 왕따 시켰던 유고슬라비아이다.

왕따 공산국가로서 한 짓이 개인 농이었다.

그 후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실시한 중국과 그 다음 베트남이다.

등소평의 개인농 정책으로 모택동의 합작사에 비해

전 중국적으로 2배 즉 2 억 톤에서 4 억 톤으로 식량이 증산되었다.

베트남은 도이모이정책으로 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었다.

내 것이냐 내 것이 아니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심각한 피해로 또는 비약적인 이익으로 나타난다.

좋아하는 회원 : 0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북한에서 식량과 월급의 가치비교
다음글
&lt;보이지 않는 손&gt;의 파괴력(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