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회주의10월혁명 백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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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고 알았다. 그 내용은 지금 러시아에서 마저 기념일을 외면받는 70년만에 처참하게 실패한 혁명작품. - 1992년 초봄 때인가 탈북망명 중(연길) 답답한 나머지 조선족잡지의 연변대학 총장 정판룡 글을 보고 댁으로 찾아갔다. 교직원아파트는 연변대학 답벽 옆에 있었는데 총장이지만 20평 정도의 집이었다. 사모가 한족이었는데 대단한 미인, 역시 동대학 교수였다. 모스크바 유학시절 만난 연인이라고 한다. - 서재에는 의외로 박정희 전기책이 꽂혀있었는데 한 권도 아니고 여러 권 이었다. 글 내용에서도 그랬지만 이것을 보고 더 용기를 내어 탈북망명자 임을 밝혔다. 아직 공산당이 퍼렇게 살아있고 그 자신이 공산당원임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나를 상대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공산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했다. <공산주의의 치명적 결함은 인간 본성을 무시한 것.> - 조선족은 이혼한 남북 부모를 둔 자식같다는 비유가 특이하게 기억남는다. - 헤어질 때 그는 (도와주지는 못하지만)<고발하지는 않을 게!> - 그 해 여름 중국에서 소련 연해주로 내려가는 수분하를 4 흘간 떠내려가 소련 우쑤리스크에 도착, 하바롭스크를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 그때부터 4년째 체류한 공산주의 종주국을 보니 정판룡의 말을 잘 이해가 되었다. - 세상은 넓고도 좁았다.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서 소개한 허진 선생 속에 있었는데 이분도 정판룡선생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동창이었다. 그것도 어문학부 동기 동창. *허진 선생은 왕산로란 서울 거리명이 있을 정도로 독립운동가 허위의 조카, 공산주의를 추종해 월북하여 모스크바 유학하였으나 김일성 우상화를 반대하여 망명한 분. 거의 최초라고 할 수있는 <김일성왕조비사>씀. 허진은 1997년, 정판룡은 2001년 돌아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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