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고국 떠나는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본부 대표 김종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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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국 떠나는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본부 대표 김종선씨 [조선일보 2005-04-23 07:02:53] “나라위해 간 분 홀대하다니 나라가 썩어 6월 희생자 3주기 추모 행사에도 안올것” [조선일보 탁상훈 기자] 2002년 남북한이 해상 충돌한 서해교전 때 남편 한상국(韓相國) 중사를 잃은 김종선(33)씨가 24일 한국을 떠난다.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본부 대표(cafe.daum.net/pkm357)를 맡았던 그녀는 최근 학원을 다니며 손톱을 다듬어주는 네일아트를 배웠다. 미국에서 취업하기가 쉽다고 해서다. 홀로 가는 불안한 미국행(行)이지만, 한국에 남아 있는 고통이 그녀에겐 너무 컸다. 그녀는 출국 직전 기자와 만났다. 처음엔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그녀는 말문을 열자 가슴 속에 묻어둔 얘기들을 하나둘씩 꺼냈다. “나라를 위해 간 분을 홀대하는 것은 (나라가) 썩은 거 아닙니까?” 그녀는 “(전사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는데 영 아니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김씨가 대표를 맡은 추모본부엔 3500여명이 동참했으나 얼마전부터 활동이 수그러들었다. “침몰했던 배(해군 고속정 참수리호)를 전쟁기념관에 옮겨 달라고 했는데 2함대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작년엔 정부 고위 관계자가 (추모본부는) 행동하지 말라고 해 너무 서러웠어요. 2002년 장례식 때는 민간인도 못 들어오게 했으니까요. 영웅인데도 영웅 대접을 못 받은 것은 분명 잘못 아닙니까.” 그녀의 목소리 톤은 높아졌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런 희생이 있는데도 왜 북한에 할 말도 못하고 사과도 못 받고 그럽니까. 군 통수권자가 군인의 말을 믿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정치적인 분위기 때문에 할 말은 다 못하지만?.” 김씨는 그동안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던 남편의 불타다 담은 휴대폰과 샤프, 신분증을 가끔씩 꺼내 봤다. “서러울 때마다 유품들을 보고 울었어요. 울고 나면 그나마 속이 시원했죠.” 결혼반지 커플링은 3년전 이미 국립묘지에 함께 묻었다. “남편이 꿈에 많이 나타났었습니다. 아무 말 안하고 씩 웃기만 하죠. 남편이 불쌍해요. 이제 잊으려는데 잊을 수 있을지?. ” 그녀는 “남편이 40일 동안 바다 밑에 있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늦게 사체를 인양한 정부가) 이해는 되나 용서는 안 됐습니다. 지금은 용서를 하지만 절대 잊을 수는 없어요”라고 했다. 한 중사는 서해교전 40일 만에 바다 속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김씨가 한 중사와 만난 것은 2000년 말이었다. 2002년 가을 결혼식을 앞두고 한 중사가 전사한 것이다. 김씨는 “남편이 적의 포탄을 피하기 위해 배의 조타수를 잡고 있었을 모습을 떠올리며, ‘도대체 나라가 뭐길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개인적인 마음 고생도 심했다고 했다. “조울증과 우울증으로 자살 생각도 여러번 했어요. 함선이 벌집이 되고 포탄이 사방으로 떨어지는 악몽에도 시달렸죠. 한 차례 자살 시도까지 했어요. 저는 이미 밑으로 떨어질 만큼 떨어진 상태입니다. 앞으로는 힘을 내고 싶습니다.” 김씨는 어렸을 때 군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실제로 군대에 지원도 했었다. 김씨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모 종합 병원에서 간호보조사로 근무했다. 그녀는 “이번에 가면 오는 6월에 열릴 예정인 서해교전 희생자 추모 3주기 행사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상훈기자 if@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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