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惑世誣民(혹세무민)의 선전선동은 국민에게서 創造的思考(창조적사고)를 앗아간다.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05 2008-05-11 14:55:32
1.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잠언을 만들어 내거나 또 그런 것을 깊이 공감하는 자들이 많다면 그 세상의 언어는 참으로 오묘한 의미로 행복을 찾아주게 할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총명으로 인간의 삶과 만물의 존재사이의 응용의 맛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재능으로 비유를 만들어 내거나 그것을 알아듣는 자들이 된다면 동시에 많은 의미를 주고받는 communication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직관력이 있어 모든 것에서 각기 고유성의 원리를 궁구해내고 또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면, 특히 현존하는 언어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오묘의 세계를 발견한다면 경이롭다 하겠다. 또한 그것을 표현하고 알아듣게 하는 언어표현의 창조성이 가득하다면 이 또한 福(복)된 일이 아니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창작 세계의 가치는 그런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삶에 각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마다 이를 새롭고 의미 있는 착상을 만들어내는 사고를 創造的思考(창조적사고 creative thinking)라고 한다.

2. ‘창조적사고’가 가득한 대한민국이 된다면 축복의 땅을 들어가는 거다. 축복의 그림자만 밟게 되는 ‘카피적사고’의 문화적인 낙후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창조적사고’에는 과거의 것을 리모델링하는 ‘再生的(재생적)사고’를 갖게 하는 것도 새로운 언어창조를 가능케 한다고 본다. ‘창조적사고’ 속에 들어있는 ‘수렴적(收斂的)사고’와 ‘발산적(發散的)사고’의 의미가 서로 고유영역을 가지고 국민 속에서 자꾸만 번식되어져 간다면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수렴적사고’는 많은 조건에서 하나의 해답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하고 ‘발산적사고’는 각기 다른 조건하에서 많은 해답을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창조적사고’에서 즐겨찾기하고 그곳에서 상주하고 사는 국민으로 지도편달 해야 할 지도자들의 몫이다. 지도자들이 괴담수준의 비과학적인 내용들을 가지고 선동 선전하는 대상으로 국민을 대한다는 것은 큰 죄악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창조문화의 선진국으로부터 카피문화권이라고 하는 문화의 식민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3. 식민지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독창적인 선구선도문화의 ‘창조적사고’가 분명하게 발전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창조적사고’와 ‘언어창조’를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 지도자들의 해야 할 일이다. 국민에게 과거역사를 배우게 하는 것에 비단 정치역사만을 배우게 하는 偏食(편식)은 삼가야 한다. 모든 문명의 발전사를 배우게 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無(무)에서 有(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사고’와 기존의 것을 새롭게 하는 ‘재생적사고’를 통해 보다 더 좋은 오묘의 세계로 진입하자는 것이다.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이웨이를 만들어가자는 의도이다. 거기서 언어창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지도자들의 기본지식이다. 하지만 어떤 지도자들은 본문을 망각하고 ‘좁혀진思考(사고)’ ‘닫힌思考(사고)’ ‘갇힌思考(사고)’ 곧 김정일의 思考(사고)의 세계에 갇혀 지내고 있다. 그런 자들은 ‘좁혀진思考(사고)’에서 나오는 규격화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언어인프라를 하드웨어처럼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은 그들에게 벗어나게 할 수 없는 監獄(감옥)이기도 하다.

4. 그런 감옥은 ‘창조적사고’와는 전혀 연결될 수 없는 間隙(간극)을 가지고 있다. 살펴보면 그런 思考(사고)는 그 존재와 분리될 수 없는 본질로 이미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아니라 할 수가 없다. 국민들의 ‘창조적思考(사고)’와 ‘언어창조’로 가는 길을 완전히 막아서는 것은 사악한 봉쇄이다. 이런 의미는 결국 김정일의 思考(사고) 밖으로 한 치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헌법적이며 창조적인 것에 대한 반역이다. 또는 창조언어문화를 危害(위해)하며 남한赤化(적화)와 수령숭배목적을 달성하려는 인질적인 테러리즘이라고 본다. 김정일의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어 이런 테러를 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창조적사고’와 ‘언어창조’세계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어를 자유롭게 하려면 모든 거짓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거짓은 결국 ‘창조적사고’를 망쳐 먹게 하는 수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에 빠진 자들은 결단코 지혜와는 담을 쌓고 살게 된다. 그런 것은 김정일의 언어에 應(응)하는 것은 가능하다.

5. 하지만 결코 하나님의 지혜의 진실에 應(응)하는 것에는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김정일의 세계는 언어의 기능을 사상교환의 수단, 혁명·건설의 중요한 무기로 보는 유물론적 언어관, 언어도구관의 관점에 서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거짓말의 유용과 그 기술의 선전선동에 있다. 능수능란한 혹세무민의 기술개발이란 뜻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이미 세계화될 수 없는 수많은 약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모든 언어는 이미 저마다 연결고리가 있고, 그런 연결고리가 제대로 연결되어야 만이 소통이 가능한 것인데, 그들은 그런 연결고리를 모두 다 끊어 버렸으니, 미래의 창조세계와 기존세계의 간격을 건너게 하는 다리의 고리가 없게 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새로운 창조세계가 나와도 그것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허락지 않는 것이 김정일 공산수령세습독재의 蠻行(만행)이다. 이미 저들이 모든 살인적 폭행으로 모든 고리를 끊어 놓았다는 것이 문제다. 排他的(배타적)민족주의와 기만적 위선정치와 폭정의 극치가 더욱 거짓과 기만으로 담겨진 흉악하게 강포한 언어들,

6. 곧 진리파괴, 인간파괴, 인권파괴, 환경파괴, 인성파괴 등으로 치달리게 하는 언어들로 가득 차게 하였다. 그것들은 다만 개혁개방으로 함께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갇힌언어’라고 하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 닫히고 폐쇄된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인권유린을 당하는 언어들을 가지고는 ‘창조적사고’의 ‘재생적사고’나 ‘수렴적사고’나 ‘발산적사고’를 생성할 수도 없고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북한 인권을 위해 소리치는 것은 잔혹한 박해에서 고통 받고 있는 진리의 언어들을 해방시키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명의 언어로 담아 주어지는 것이고 사망은 사망의 언어로 담아 주어지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의 언어에서 집을 짓고 살고 거기 기거하며 거기서 늘 사랑의 꽃을 향기를 내어 희생의 품을 내어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착취 속에 기거하는 언어는 폭력이고 기만이고 탐욕이고 정욕이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사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것은 창조의 반대인 파괴를 위한 파괴에 해당된다.

7. 그런 언어들로 아이들에게 세뇌하고 그것으로 아이들을 선동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망하게 도구를 삼으려는 것이 참으로 가증스럽고 참으로 고약스러운 악마의 짓임을 직시하게 된다. 세상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언어의 기능을 파괴하고 도리어 사상교환의 수단, 혁명·건설의 중요한 무기로 보는 유물론적 언어관, 언어도구관의 관점에서 사용하는 자들의 사악함을 고발 제거해야 한다. 그들을 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 의해 잠식되어져 가는 언어파괴테러는 결국 ‘창조적사고’를 파괴시키고 마침내 김정일의 ‘노예언어’에 익숙한 앵무새가 되게 한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적, 반인간적, 반인권적, 반인도적, 반문명적, 반사회적, 반역적 언어 파괴이다. 이들의 행동은 참으로 반문명적이고 반사회적인 만행임을 알아야 한다. 국민을 보다 깊고 오묘한 ‘창조적사고’속으로 이끌어 들인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저들의 만행은 악마적인 행동임을 알게 한다. 저들은 혹세무민을 무기로 삼아 남한적화를 하려고 한다.

8. 이는 참으로 법적인 철퇴를 맞아야 할 것이다. ‘바라’라고 하는 창조의 세계는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바라’의 ‘창조적사고’와 ‘언어창조’ 세계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잠언서를 읽어야 한다고 성경은 이정표하고 있다. ‘아사’라고 하는 창조는 가공하는 창조인데, ‘가공창조’는 언어의 가공도 가능하고 그런 지평 속에는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그런 언어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이 된다면 진정한 가공창조문화의 의미가 넘치게 된다. ‘야찰’의 언어들은 곧 창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데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해야 한다. 그런 지혜만이 인간을 구원하고 구제하는 ‘창조적사고’로 이끌어 들여 ‘재생적사고’ ‘수렴적사고’ ‘발산적사고’의 의미를 깊이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진리로 국민을 모든 혹세무민의 김정일악마의 땅에서 건져내고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축복의 땅 '창조적사고'로 살게 하는 지도자들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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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말하우트 2008-05-15 12:21:57
    이글은 포말하우트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8-05-15 1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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