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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꼬부랑말 큰 관심
정대식 0 304 2005-05-05 19:05:31
“탈북청소년 꼬부랑말 큰 관심”
[경향신문] 2005-05-02 18:34






고만고만한 상가들이 즐비한 낙성대 지하철역 입구의 한 건물 3층과 4층에 둥지를 튼 탈북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여명학교’(교장 우기섭). 그 둥지에 들어선 키 188㎝에 싱겁게 웃는 영어회화 자원봉사 교사 브렌든 브라운(Brendan Brown·34·호주)은 아이들의 스스럼 없는 인사에 답하느라 바빴다. 하얀 피부에 눈이 파란 외국사람과 ‘꼬부랑 말’로 대화하는 것을 북한에 있을 땐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터라 아이들은 몇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는 모양이다.

“하이, 티처!” “하이, 에브리바디!”

10명 남짓한 반아이들은 모두 지난해 7월 베트남을 거쳐 탈북한 468명 대열에 끼어 한국에 들어왔다. 아직 한국에 온지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브라운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걸고, 때로는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든다.

“애들이 저보고 개고기 먹어봤냐고 물을 때는 정말 난처했어요.”

호주 멜버른이 고향인 브라운은 대학에서 동북아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후, 1996년 한국에 배낭여행을 왔다. 동북아에서 가장 긴장이 감도는 곳이라는 한국의 실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서울대와 이화여대 어학당을 다니면서 한국어를 배웠고, 이후 호주기업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에 계속 머물렀다.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북한관광을 갔을 때 브라운은 남포, 평양, 묘향산을 돌면서 북한 주민들을 만났다. 남한 사람들에 비해 키가 작고 힘들어 보이는 그들을 보고 30만명에 달한다는 탈북자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북한을 둘러보고 온 이후 바로 탈북자를 돕는 외국인들의 단체인 ‘헬핑 핸즈 코리아(Helping Hands Korea)’에 가입하고 자원봉사를 시작했어요.”

2003년 시작된 탈북 청소년들의 야학인 ‘자유터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여명학교까지 이어졌다. 여명학교 우기섭 교장은 “처음에는 호기심에 탈북자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던 외국인들도 두어달 있다가 힘들어서 그만두곤 한다”며 브라운처럼 꾸준히 계속하는 외국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탈북 청소년들은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영어가 많이 쓰이냐’고 놀라워합니다. 스트레스, 아세톤, 텍스트 같은 말이 무슨 뜻인지 아이들이 알 턱이 없지요. 설명해주면 대부분 이해하지만 파인애플이나 키위 같은 것은 아무리 설명해도 실물을 보기 전에는 이해를 못해요. 파인애플은 잣인줄 알고, 키위는 감자라고 생각하더군요.”

남한 학생들하고는 가족이야기가 주된 대화의 소재가 되지만, 탈북 청소년들과는 가족이야기를 섣부르게 할 수 없다. 가족이야기만 나오면 금세 웃음이 가시고, 먼곳을 쳐다보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다가 어머니가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보거나, 북한에서 동생이 굶어죽는 걸 본 아이들은 가족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럴 땐 저도 울고, 아이들도 울고, 교실이 울음바다가 되고 말아요.”

지난 22일 저녁에는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탈북자를 위한 음악회’를 개최한 또다른 탈북자 지원 단체인 ‘링크’를 도와 음악회 준비를 했다. 2002년말 예쁜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15개월된 딸을 둔 그는 “탈북자들이 처음에는 풍족한 남한에 고마워하지만, 곧 탈북자들을 업신여기는 듯한 눈초리에 실망한다”며 “같은 핏줄, 같은 형제들끼리 상처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무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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