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자유게시판

상세
핸드폰에 대한 생각 (1)
Korea, Republic o 해운대 1 453 2008-07-04 15:45:32
어제 4년 만에 핸드폰을 새로 바꾸었습니다.

영상통화도 되고, TV채널도 볼 수 있는 최신 폰을 구입하니 낯선 기능에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더군요~

안내 책자를 뒤져서 이것저것 옵션이며 추가 기능들을 살피는데 전화번호 메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생활 4년 ...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제 핸드폰에 입력되어 있더군요.

사회에서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PC방 김 사장님 성함이며 기말고사 점수 때문에 전전긍긍 매일과 같이 연락하며 지냈던 전공수업의 예쁘장한 조교누나의 연락처까지 200개가 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전화번호를 하나 둘 검색하다 보니 지난 4년도 결코 쉽지 않았다는 생각에 절로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술 한 잔에 시비 붙었던 사람들과 경찰서 행을 했던 3년 전 어느 날, 사건을 맡았던 담당형사가 나에게 한국의 길라잡이가, 그리고 형이 되어주겠다면서 손수 입력해 넣었던 경찰 형님의 연락처도 보이고 대학 신입생 시절 잠깐 만났다 헤어진 남한 여자 친구의 집전화번호도 보입니다.

군대에 나가면서 해제를 했거나 정지를 시킨 친구들의 연락처, 멀리 외국으로 이민 떠난 탈북자 동료들의 연락처도 나는 긴 시간들 들여 하나 둘 삭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삭제해야만 하여도 할 수 가없는 연락처가, 지워버릴수록 핸드폰이 아닌 가슴속 깊이 파고든 이름들 앞에서 나는 오열을 참지 못하였습니다. 탈북자 정착 기관인 하나원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자의 연약한 몸으로 두 번의 북송과 세 개 나라를 거쳐 한국으로 홀로 입국한 그녀는 2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단 한 줄의 가십기사 거리도 안 된 채 그녀는 여기에 올 때처럼 조용히 북한이 보이는 파주 땅에 묻혔습니다.

무엇으로 하여금 그녀를 자살로 떠나게 하였는지는 아직까지도 절친했던 저 조차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가 고향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밥한 술에, 물 한 모금에도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는지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대학교 선배인 탈북자 형님이죠.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는 고통 속에서도 편안하게 눈을 감던 형님을 생각하면 형님의 의지와 함께 결코 헛되지 않은 강직한 그의 삶을 알 수 있습니다. 가끔 그들이 그리울 때마다 없어진 번호 키를 눌러 연결되지 않는 통화음을 귀에 대고 오랫동안 듣습니다.

이십대 초, 중반의 나이들에 일생을 보내도 겪지 못할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찾았던 한조각의 자유조차 그들은 제대로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꿈을 희망의 언저리에 묻고 다음 생을 기약하며 떠나갔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편히 가라고 나는 핸드폰에서 그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삭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떠난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 곁에서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향 길을 함께 걷습니다.

언제나 언제나 우리모두와 함께요~


백두한라회 회원인 고향의 들국화가-

[출처] '핸드폰에 대한 생각 (1)' |작성자 - [백두한라회:

http://www.baikhan.net]
좋아하는 회원 : 1
encl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복돼지 2008-07-04 17:49:48
    글 잘보았습니다.
    정말로 뒤도 돌아볼새가 없이 세월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네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여도 2008-07-04 19:45:48
    참! 너무도 심금을 울리는 글이네요....
    이 홈피에거의매일 올라오는 의비방과 증상으로 얼룩진 글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네요,,,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위대한동이 2008-07-04 20:17:27
    정말 눈물이 핑 돕니다.. 과연 어떤 남한사람이 이들의 아픔을 진정 알수 있을까요? 제가 10여년전 캐나다로 공부를 하러 갔던때가 있었는데 고향이 그리워, 부모 형제 친구들이 그리워 얼마나 속으로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경험도 글 쓴 분을 포함한 새터민 여러분의 경험에 비추면 조족지혈이죠. 글쓴님 힘내시고 남한 사람중에는 당신들을 우리의 형제 자매처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통일이 되면 여러분들의 아픔을 훌훌 털으시고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추풍 2008-07-05 15:35:49
    님의 세월 속에서 슬픔과 그리움이 깊게 느껴진 좋은 글입니다. 진심으로 행복하시기를 바라며...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풀나무 2008-07-05 16:04:51
    내 가슴도 아리네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北대남공작 ‘현지본부’ 서울에 있다는데...
다음글
내일 청계천광장에서 3만 노노데모회원들이 북한인권 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