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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국민의 근심을 덜어야 합니까? 국민의 근심이 되어야 합니까?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34 2009-02-11 14:49:12
1.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耿耿孤枕(경경고침)이라. 근심에 싸여 있는 외로운 잠자리에서 떨고 있는 인간의 耿耿孤枕(경경고침)에서 몹시 애를 쓰며 근심 걱정을 많이 하는 苦心慘憺(고심참담)함이라. 懼憂(구우) 곧 두려워하며 근심하는 세월이 가득한데, 연평도 인근에서 꽃게잡이 중국어선들이 모두 다 없어졌다고 한다. 그 지역의 주민들이 그야말로 구우에 빠져있는 것이다. 아마도 전쟁을 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기이한 현상에 주목하고 살펴보고 있는데, 國憂(국우)적인 상황 곧 나라의 걱정이나 근심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나라의 근심 걱정인 國患(국환)인 곤궁을 겪는 근심 곧 경제대란인 窮愁(궁추)의 계절인데, 그늘진 서민들과 실업자들에게 치명적 고통을 주려는 김정일 군대의 가증스러움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 雪上加霜(설상가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재미를 보려는 이 가증스러운 군대에 시달린지도 벌써 60여년이다. 이제 이런 근심을 떨쳐버려야 하는데, 지도자들이 과대망상에서 나오는 자아실험의 妄想舌(망상설)에 의해 세상이 혼탁하기 그지없느니.

2. 언제나 그 誇大妄想症(과대망상증)을 버리고, 자기구현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거나? 인간이 무엇인들 하나라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최면을 건 자들이 나서서 국민을 속이고 헛다리짚은 세월이 벌써 1년이 넘었구려. 法治(법치)구현을 한다고 립서비스로 자유세력의 지지를 받아 탄력을 받은 후 법치구현을 이룬 김석기 경찰청장을 괴롭게 하고, 마침내 옷을 벗기는 이 모순적인 행동에 친북세력의 힘을 받으려고 한다. 이 두 세력의 힘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가려는 이 모순의 아픔은 현실적인 中庸(중용)론인가 싶게 권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중용이 아니고 웃기는 짬뽕이라고 하는 것으로 풀어보는 것이 어떨지 싶다. 두 세력의 힘을 청와대로 오게 하는 것으로 喜喜樂樂(희희낙락)하고 있는 이 정신 나간 짬뽕장사가 대통령 곁에서 대통령을 요리조리하는 것 같은데, 嗚呼(오호)통제라. 그도 역시 誇大妄想(과대망상)증후군 환자로구나. 자기 催眠(최면)에 하늘 높고 세상 넓어 廣大無邊(광대무변)하다는 것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가 거기에 있어 그것으로 두 세력을 합해서 가려는 얄팍한 짓을 당당하게 하고 있니? 하나님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과대망상이란 것이여.

3. 과대망상에 걸린 자들은 자기들의 지혜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지혜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들이 國患(국환)에 빠진 전 국민을 雪上加霜(설상가상)의 무게를 가지는 근심을 얹어놓으려는 것인데, 그것은 김정일군대가 전쟁을 도모하면 그 근심을 자기들이 당당하게 짊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의 마음에 짐으로 돌려놓는 짓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교활한 공복들이 노리는 것은 다만 기득권이라. 나라가 무너지면 김정일에게 죽기 싫어하는 국민, 곧 애국국민에게 건지라고 밀어놓고 功(공)은 자기들이 누리면서 이래도 興(흥) 저래도 興(흥)하는 세월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모양 같은데. 이제 국가를 건져 모든 위기에서 헌법을 수호하고 國泰民安(국태민안)을 이룰 代案(대안)정권이 나와야 한다는 필요성이 부각되는 모양인데, 하려면 속히 해야 하는 것인바, 따라서 하나님의 세우신 지도자의 의미를 성경에서 찾아 기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는 국민을 平康(평강)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定義(정의)가 河水(하수) 같은 길로 公平(공평)이 강물같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4. 지도자는 국민의 근심을 대신 짊어지고 해소해야지 오히려 국민에게 근심을 끼치면 안 되는 것인데, 우선 근심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크게 봐서 두 가지로 나누게 된다. 人間(인간)의 근심과 하나님의 근심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근심 곧 성령의 근심을 가지게 되면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아픔이 가득하게 된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印(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의 근심은 하나님의 아픔이고 그런 근심은 인간의 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順服(순복)을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근심이 그 속에 어려 발생하는 煩惱(번뇌)의 아픔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과연 성령의 근심을 덜어드리는 편에 서고자 하는 것인가에 있는 것이다. 번뇌로 번역된 이 말씀은 ‘근심의 무게에 눌려 굽혀진다. 또는 그 근심이 주는 압증에 시달린다(Heaviness in the heart of man maketh it stoop).’라고 하는 말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번뇌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결국 지도자나 각 인간이 인간자아실현의 방향에 난관에 봉착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도달하였을 때에 힘이 벅찬 심신의 피곤에 눌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5. 그런 것의 진행에 위기에 봉착 등을 인하여 막대한 손실이나 명예손실 및 생명의 위기 등등의 문제가 봉착한 것에 대한 괴로움에 짓눌려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것을 避(피)할 수 있는 것이나(인간 생각의 한줄기 희망), 해결의 실마리나 또는 살길이 있다고 한다면(인간 지혜의 선한 말) 곧 희망을 갖게 되고 그런 苦惱(고뇌)의 짐을 곧 훌훌 털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 自我實現(자아실현)의 욕구를 위한 번뇌이고, 하나님의 구현을 위해 받는 고뇌의 의미에 따라 발생하는 근심과 그 압증에 눌려 신음하는 것, 곧 성령이 주는 번뇌의 의미와 극과 극의 의미가 발생하게 된다. 지도자의 번뇌는 이 둘 중에 하나가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자아실현을 위한 번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구현을 위한 번뇌인지? 그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合(합)한자라고 하셨다. [사도행전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 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6.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구현을 이루는 삶으로 다윗의 전체를 하나님께 헌신했다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아구현을 위해 사는 것을 어려서부터 버렸고, 오로지 하나님의 구현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습성화하였다는 말이다. 그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려면 하나님이 임하여 그 마음속에 이러한 말씀대로 공사를 하셔야 한다. [골로새서 1:9-12 에 나오는 말씀의 여러 내용의 연결인데 이런 것이 하나씩 공사가 완료되어야 가능한 것이 된다. 1)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2)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3)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4)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5)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6)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7)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8)감사하게 하시기를. 이런 8개부분의 공사가 완료가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과 한마음이 가능한 것이 인간이라고 하는 무익하고 빈약한 존재이다. 때문에 다윗도 하나님께 그런 것을 구했을 것이고,

7. 그것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과 疏通(소통)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물론 이런 일들은 성령이 주관하시고 하셔서 그 모든 공사를 마치시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또는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으로 삼으신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그것을 그대로 세상에 이루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과 그것이 자기 역작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이 그를 통해 그 일을 하신 것에 대한 정직한 감사가 가능하게 하는 것을 작동되도록 인간 속에 공사를 하셔야 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가는 길이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의미란 바로 그런 저런 공사를 다 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본색을 드러내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사야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8.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에 나오는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that they might be called trees of righteousness, the planting of the LORD, that he might be glorified)’라고 하는 존재를 만드신 것이 곧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모습인 것이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合(합)한자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신 것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그것을 다 읽어내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능력을 공급받아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받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구현하는 나무처럼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지도자의 길이다. 흔히 민주주의에서 공복이란 말은 국민의 마음을 담아서 바른길로 이끌어 헌법의 이상을 이룬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자들을 통해 국민에게 인애정치를 펼치기 원하셨다. 인애는 하나님의 본질의 성품인 것인데 하나님의 인애를 행동으로 현실화시켜 국민을 섬기면 넉넉히 국민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잘못된 모든 욕구를 바로잡을 수 있고, 헌법의 이상을 洽足(흡족)하도록 충족하는 것에 있다고 하신다.

9. 자유민주주의를 지극히 높은 가치로 만들어내는 지혜와 능과 힘은 하나님의 것이 최고라고 하신다. 때문에 하나님의 구현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충족하는 것은 너무나 쉽고 오히려 창일하게 한다. 우선 국민에게 하나님의 구현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로 만들어가는 지도자가 중요하고, 그것이 모아져서 하나의 거대한 지도자 군이 되어 그들이 곧 하나님의 구현을 실현하므로 국내에서 자아실현을 위해 살아가는 지도자들과 善意(선의)의 경쟁을 하게 되고 敵國(적국)의 지도자와는 敵對的(적대적)인 경쟁을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현의 의미가 국제무대에서 브랜드적인 가치를 평가받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이사야 60: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하나님의 구현을 위해 사는 지도자만이 아가페 사랑으로 모든 착취의 손에서 인류를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10. 오늘날 김석기경찰청장의 자진사퇴의 의미를 보면서 우리의 마음은 찹찹하다. 인사권자가 무슨 의도가 있어 그런 무모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도모했는지 이해할 수는 없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다만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우리 마음이다. 이번의 일로 인해 목숨 걸고 대통령을 지켜줄 인간들이 없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고, 대한민국을 지켜줄 애국자들의 意氣銷沈(의기소침)을 의미한다. 지금의 판세가 적을 적으로 인정을 안 하고 화합으로 보려는 의도가 그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인데, 대통령은 누가 무엇을 하든지 어느 정도 누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한다고 하는 측면에서 고려되는 인사행정이라고 한다면 국민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나 할까? 대한민국의 지도부에 보수들의 존재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세심하게 살펴볼 일이라고 본다. 애국자들의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소위 말해 중도실용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그들이 결국 헌법수호를 빙자하여 권력을 얻어 권력유지를 위해 여전하게 기득권수호 세력과 결탁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1. 오늘날 한국의 지도부가 하나님의 구현을 위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를 자기들 멋대로 좌지우지한다면 결코 그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다윗 같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나라를 새롭게 할 때까지 累卵之勢(누란지세)의 고통 속에 던져지는 아픔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때문에 이제는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자들을 찾아내야 한다. 빛 좋은 개살구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와서 대한민국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의 마음만 담아 해결해주는 지도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국민의 짐을 지고 국민을 착취의 경제에서 이웃사랑의 경제로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具現(구현)인 하나님의 仁愛(인애)정치를 펴는 지도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을 브랜드적인 가치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나라였다면 그 길이 곧 대한민국의 길이고, 그 길만이 인류의 羨望(선망)이 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현을 이루는 국가를 위해 또는 그런 지도자가 나오기를 고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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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충성된 애국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권력은 무너진 성벽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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