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원이 대낮에 국회에서 테러를 당한 것은 김정일과 그 주구들의 난동으로... |
---|
제목:전여옥의원이 대낮에 국회에서 테러를 당한 것은 김정일과 그 주구들의 난동으로 국가통제가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을 웅변한다. 1.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27일 국회 본청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들에게 폭행을 당해 치료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과 전 의원 측에 따르면 전 의원은 이날 정오쯤 본청 1층에서 출입구로 향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20∼30대 여성 2명에게 안면을 가격당했다. 이 여성들은 전 의원의 머리채를 잡은 채 신체 여러 군데를 폭행한 뒤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의원측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소속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는 조선닷컴의 보도이다. 이 나라가 위기의 시점에서 김형오 의장의 束手無策(속수무책)이 자기인기관리만 염두에 둔 어리석은 위인임을 드러나게 하여 기분이 잡쳐있을 때 우리는 테러의 소식을 듣게 된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詭辯(궤변)은 민주당의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에 분통을 터지게 한다. 참으로 이 나라의 위기를 불러들이는 자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하려는 자들의 여러 방책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명박 정부는 그런 것을 事前(사전)에 認知(인지) 制壓(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 이는 국가 통제기술의 허점이 발생한 것이고, 그런 것을 어서 속히 치료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제는 빗발쳐야 한다고 믿고 있다. 憲法的(헌법적)인 요구를 충족하는 국가통제기술(Staatskunst)은 무엇일까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반국가단체가 북에서 똬리를 틀고 대한민국을 대적하고 있는 60년의 세월에 수많은 間諜(간첩)과 附逆者(부역자)가 남한사회에 가득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유지 존속에 필요한 기술상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그것의 기능이 顯著(현저)하게 약화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를 認知(인지)하는 시스템의 痲痹(마비)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보게 한다. 이런 마비를 가지고는 국가통제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한다. 국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망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病(병)든 상태, 병든 또는 마비상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다면 우리의 모습과 정체성의 혼란으로 우리 얼굴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그런 저런 것을 치료를 받는 길에 이왕이면 보다 더 효과적인 통제기술에 눈을 떠야 한다. 3.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가통제기술에 대한 혼란의 존재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한 상태에 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탄식적인 警告(경고)가 없다고나 할까? 애써 모르는 척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그들이 살아있는 권력인 김정일 집단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 우리도 스트러토크라시(stratocracy)인 군사독재나 수령절대주의인 오토크라시(Autocracy)의 통제기술에 대한 것이 곧 대단히 低質(저질)스럽고 극도로 사악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歷史(역사)를 거쳐 오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 나라 현대사적인 역사실험에서 不得不(부득불) 보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국가통제기술이 하나님의 통제기술에 椄木(접목)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의 통제미학을 가져오는 津液(진액)을 함께 받는 대한민국으로 가자는 말이다. 거기서 오는 진액을 받으면 주기도문의 기도가 이 땅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이 천국을 통제하는 기술을 대한민국 속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4. 그것으로 우리 憲法(헌법)의 요구를 충족하자는 것이다. 이런 말은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주는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아가페 사랑으로 헌법의 요구를 충족하자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손길 곧 창조주의 통제의 美學(미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조물주가 가지고 계신 통제미학의 결과물이 곧 萬物(만물)인데, 神(신)의 영역과 人間(인간)의 영역의 차이점을 구분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성의 의미가 明明白白(명명백백)하다. 함에도 인간은 자기들의 통제기술을 더 信賴(신뢰)하는 말과 행동으로 一貫(일관)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크나 큰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통제美學(미학)의 의미는 헌법의 충족이다. 곧 자유민주주의 세상을 가장 이상적인 문명국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다. 그런 가치에서 시작되는 통제미학의 종류가 있을 것이고, 그 중에서 가장 최선의 것이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최선 중에 최선의 통제미학은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과 사랑으로 우리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만물을 알아내고 그것을 운영하는 통제기술을 알아내는 것처럼, 5. 우리의 헌법에 충족되고도 남은 보다 더 최선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의 의미를 요구하는 것인데, 모든 최고의 工産品(공산품)의 디자인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서 따온다고 한다. 그처럼 하나님의 만물통제기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충족하고도 남는다고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통제미학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神(신)이 감당하는 것이고, 다른 말로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그리스도의 割禮(할례)라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곧 성경말씀을 따라 사는데 하나님의 통제미학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각자의 信仰(신앙)의 자유도 있고, 또는 현재 진행 중인 無神論者(무신론자)들의 蔑視(멸시)와 嘲弄(조롱)이 있어 성경에서 제시한 가장 이상적인 기술을 전이받는 훈련을 고집하는 분위기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택의 自由(자유)이기도하다. 인간의 自由(자유)는 인간의 통제를 누가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물론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데, 최종책임은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책임질 수 있으려면 마땅히 결과를 미리 알아내는 能力(능력)이 필요하다. 6. 인간의 행동이라고 하는 씨는 그것이 심겨져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것이 因果應報(인과응보)의 원리이다. 이미 씨는 정해져 있고 그 씨가 그 열매를 맺는 것이 그 미래이기 때문에 좋은 씨를 심는 통제를 마땅히 받아야 한다. 하지만 技術(기술)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인간기술의 不確實性(불확실성)의 의미가 있고, 그것을 통찰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주는 능력이 없다면 그것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다 읽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필요하고, 그런 지혜와 총명으로 선택해야 할 행동의 씨의 내용을 구분하고 그것을 심은 결과를 미리 내다보게 된다. 그런 것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어떤 것을 秋收(추수)할 것인가를 미리 알게 되기 때문에 선한 씨를 구별해내고 그것으로 씨를 삼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느 밭에 뿌릴 것인가를 생각한다. 어느 밭에 무엇을 뿌릴 것인가를 두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의 통찰력이 정확하게 구별해낸다. 沃土(옥토)를 찾아내어 그곳에 善(선)한 씨를 뿌리게 된다. 그 다음에는 마인드이다. 7. 어떻게 그 씨를 耕作(경작)할 것인가에 대한 마인드의 내용은 기술의 행동을 활용하는 기술적인 것도 포함한다. 활용의 다양성의 의미를 다 읽어내려면 그것도 역시 力不足(역부족)인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만이 그 모든 것을 다 통찰해낸다. 土壤(토양)의 의미는 각기 신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만의 영광스러운 마인드가 있으시다. 그 마인드로 한다면 최고의 소출을 내게 한다. 최고의 소출을 내게 하는 하나님의 마인드는 분명하게 찾아내야 한다. [창세기 26:12-15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百倍(백배)를 얻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농사의 생산성 增大(증대)를 위한 또는 提高(제고)를 위한 통제기술의 의미라고 한다면, 그처럼 국가통제의 좋은 씨와 좋은 밭과 좋은 마인드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 속에서 나온다고 확신하게 된다. 8.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찾아낸 국가통제技術(기술)의 씨와 그 밭과 그 마인드를 통해 생산성의 提高(제고) 또는 增大(증대)를 가히 革命的(혁명적)으로 만들어내야 하고 그것의 恒久性(항구성)을 가능케 하는 길도 찾아가게 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은 領土(영토)와 작은 數(수)의 사람이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에서 나오는 빛으로 국가통제기술의 씨를 찾아내고 沃土(옥토)를 찾아내고 경작기술의 다양한 마인드를 찾아내어 심고거두는 일을 하게 된다면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理想(이상)이 흡족하게 달성되고, 그런 정치는 최고급브랜드가 되어 거기에 인간의 선택의 자유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게 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듯이 여러 독재의 통제기술은 체제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뷰로크라트(bureaucrat)의 생존적인 아첨아부로 인해 테크노라트(technocrat)들의 종말을 갖게 되고, 결국 지독한 가난으로 몰아간다. 그것은 곧 그들의 기득권이 되고 그런 것을 통해서 체제유지만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결국 모든 인민은 처절한 고통으로 몰려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목격하고 있다. 9.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찾아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국가통제기술은 인간의 모든 부요와 건강과 더불어 자유와 행복을 모든 인류에게 供與(공여)하며 누리게 한다. 그것이 곧 위대한 장점이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깊이 있게 담아내셨다. 국가통제기술의 다른 면은 곧 국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자유와 생명과 행복과 부요와 학문과 利器的(이기적)인 기술 등등의 結果(결과)물들을 증산에 또는 혁명적인 증산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선 사람의 통제는 그 사람의 知性(지성)인가 아니면 성품인가의 의미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여기서 지성이라는 말은 성품과 분리가 가능한 지식의 축적을 구축하는 이성의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 인간을 통제하는 것은 성품인가 아니면 理性(이성)인가에 대한 考察(고찰)이 필요하고 區分(구분)이 필요하다. 통제를 받고 아니 받고는 자유선택이고, 그것은 이성보다는 성품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성품이 그 사람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順應(순응)하는 성품으로 간다는 것이 중요하고, 10. 국가통제기술을 자유선택으로 즐겁게 受容(수용)하는 것과 기술을 잘 따라주는 옥토 곧 선한 성품의 의미가 있어야 가능하다. 대개 사람이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의 세 가지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無知(무지)이고 또 하나는 無能(무능)이고 또 하나는 不順從(불순종)이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알아야 순종한다. 알아도 그것을 할 수 없는 무능이 있다면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명령을 잘 이해하고 그 명령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하기 싫어하는 여러 이유가 있어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불순종이라고 하는 거역은 성품을 의미한다. 무지를 벗어도 무능을 벗어도 하기 싫어하는 것은 성품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1:9-11---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하나님께 拒逆(거역)하는 성품이 변화가 되지 않는 한, 11.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缺點(결점)이다. 때문에 불순종하는데 이 세 가지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 한다. 인간은 그런 불순종의 세 가지 조건을 제거함을 받는 手術(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 명령을 따라 順應(순응)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순종을 이루게 한다. 이런 말씀의 의미는 지극히 奧妙(오묘)하고 精巧(정교)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손발이 맞도록 움직이는 통제미학의 합당한 조건을 갖춘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은 곧 파괴된 것이라고 하는 등식은 언제든지 성립이 가능하다. 모든 만물은 각기 하나님의 통제를 받을 때만이 그것이 존재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에서 하나님의 통제를 拒否(거부)하는 것은 없다. 있다면 불순종하는 인간일 뿐이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통제를 받으라고 하시는 것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道(도)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살라는 말씀도 같은 脈絡(맥락)이다. 때문에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잘 섬기는 공복이 되도록 기도하자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http://onlyjesusnara.com http://www.korea318 부제목: 국가통제의 기술상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고민하는 전문가들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신고 0명
게시물신고
|